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82_특집_노동기본권과 노조파괴권의 거래.jpg



노조 활동 금지법, 

파업 파괴법

문재인 정부의 목적은 

노조 말살인가


김석┃서울



사상 초유의 노동개악이 다가온다. 노동권 보장을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거꾸로 노조의 쟁의 활동 전반을 옥죄는 노동법 개악을 추진하는 것이다.


작년부터 이 논의를 시작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가 이제 마지막 수순만을 남기고 있다. 온전한 노동3권 보장을 위한 논의는 이뤄지지도 않았다. 오직 ILO 협약 비준을 핑계로 끼워 넣을 자본과 사용자들의 요구로 점철된 채 최종적 순간을 향해 달려간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정부가 미뤄놓았던 과제, 즉 결사의 자유 보장을 위한 ILO 핵심협약 비준은 앙상한 껍데기만 남았다. 황당하게도, 정부가 약속한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조 활동 전반을 무력화하는 파업 파괴법 통과로 둔갑했다.


애초 지난해 경사노위를 예비하는 기구로 출범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산하 소위원회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쟁점과 법‧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하기로 했었다. 이렇게 꾸려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곧 경사노위로 이어졌다. 그리고 작년 11월 하순, 경사노위에 참여한 공익위원들이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합의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교사‧공무원, 특수고용 노동자 등 그간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조차 제약받았던 노동자들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먼 방안이었다. 단결권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게 하는 조항들을 요소요소에 깔아둬, 보편적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ILO 협약의 정신과 완전히 상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수언론을 비롯한 자본과 사용자 측은 이마저도 ‘노동 측 요구를 다 들어준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공익위원 합의안을 토대로 했다며 민주당 국회의원 한정애(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가 제출한 노동법 개정안은 여기에서 더 후퇴했다. 초기업 단위 노조 활동을(산별노조, 민주노총을 비롯한 상급단체 등) 제약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는 아예 포함하지도 않았다. 경제부총리는 ‘ILO 핵심협약 비준과 탄력근로제 확대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에 ‘끼워 팔 물건’이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물론 탄력근로제 확대는 이미 자본이 정부여당에게 미리 확약을 받아뒀기 때문에 그것이 ‘딜’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탄력근로제 확대는 민주당 당론이었고, 정부여당은 지난 11월 보수 야당들과 함께 여‧야‧정 협의체에서 이를 합의했으며, 민주당 원내대표 홍영표는 경사노위 합의와 관계없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ILO 핵심협약을 대가로 정부와 자본이 끼워 넣고자 한 것은, 바로 그 ILO 협약을 넘어 기존 노동권 자체의 전면적 붕괴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올해 1월 말, 사용자 측이 추천한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이 경악할 ‘물건’을 들고나왔다. ILO 협약 비준의 대가로 끼워 팔고자 했던 것, 바로 이 나라 자본의 숙원을 총망라한 것이었다. 이들의 요구를 추려보면 △사용자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 삭제 △노조 부당노동행위 개념 신설 △파업 시 대체 근로 전면 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파업 찬반투표 유효기간(2개월) 신설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등이다.


요약하면, 노조파괴를 합법화하고 파업과 쟁의를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그간 민주노조 운동은 사용자 측의 악랄한 노조파괴(부당노동행위)에 맞서 싸우며 노동조합을 지켜왔다. 이조차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는 제대로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바로 뒤의 기사인 유성기업 사례를 보자). 그런데 이제 노조파괴에 대한 처벌을 없애고, 오히려 이에 맞서는 노동조합의 저항을 ‘노조 부당노동행위’라는 어처구니없는 딱지를 붙여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을 사장과 관리자들의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파업권은 완전히 틀어막겠단다. 지금도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사측은 대체 근로를 활용해 생산을 지속하면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무력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전면 허용하라는 것은 파업하지 말라는 얘기다.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금지한다는 것은 ‘파업하려면 사업장 밖 저 멀리 나가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파업과 쟁의 없는, 완전한 무권리 상태의 일터를 만들려는 자본의 숙원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쯤 되면 그냥 막 가자는 것이다. 껍데기만 남은 ILO 핵심협약에 동의해줄 테니, 결사의 자유는 물론이고 단체행동권과 교섭권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노동법 개악을 받아들이라며 ‘거래’하자고 한다. 전교조 합법화와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을 두고 정리해고제, 파견제와 맞바꿨던 김대중 정부 노사정위원회가 떠오른다. 그러나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 상태고, 과거 민주당 정권에서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에 나섰다가 해고당한 공무원 노동자들은 사실상 ‘정당한 해고였음을 인정하는’ 대폭 후퇴한 복직 안을 강요받고 있다.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고, 정리해고제는 노동자의 일상을 위협한다. 그 시절, 그 합의를 반복하게 내버려 둘 것인가?



‘사회적 합의’라는 자기기만

최근 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개악 합의가 보여주듯이, 아니 지금까지의 모든 야합에서 한국노총은 언제든 노동자계급을 배반하고 상층 노조 관료들의 이익을 위해 정권과 자본의 품으로 뛰어들 준비가 돼 있다. 어쩌면 이번 파업 파괴법 역시 한국노총 지도부의 숙원 몇 가지를 건네받고 또다시 ‘합의’를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언제까지 경사노위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스스로 발목을 꺾일 셈인가? 경사노위의 이번 탄력근로제 개악 합의에서 여성‧청년‧비정규직 위원 3인이 참여를 거부하며 본회의를 무산시키자, 민주노총 일각에서는 ‘이번 경사노위는 개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이전의 노사정위원회와 다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틀렸다. 경사노위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면 국회에서 바로 처리하겠다는 여‧야‧정 합의가 시퍼렇게 살아있다.


정부는 이번 경사노위 본회의 참여를 거부한 3인의 위원에게 엄정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스스로 끌어들인 저 3인의 위원도 반대하는 탄력근로제 개악을 ‘노동자를 위한 선택’이라 강변하고, 이 악법에 대한 야합을 거부하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노동자의 뜻을 저버린 무책임한 행태’라 비난하는 게 지금의 정부와 한국노총이다. 민주노총이 참여했으면 달랐을 것이라는 강변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이제 ‘ILO 핵심협약 비준’ 투쟁은 ‘노동개악 저지’ ‘노조파괴법 저지’ 투쟁이 됐다. 사회적 합의로 ILO 핵심협약을 따낼 수 있다는 환상의 말로다. 경사노위의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는 결국 정부와 자본의 압박 속에 노동이 무엇을 양보할 것인가를 선택(이것을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하는 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20년의 피눈물, 다시 쏟을 것인가

노동조합의 문이라도 두드릴 수 있는 노동자가 전체의 10%에 불과하고, 법전에 쓰인 노동권조차 국가와 자본의 지배 권력 앞에 너무나도 간단히 짓밟히는 이 나라에서, 노동기본권을 ‘노조파괴권’과 거래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부터 잘못됐다. 애초 문재인 정부 공약이자, 오랜 세월 한국 정부가 미룬 책무였던 ‘결사의 자유 보장 ILO 핵심협약 비준’이 양보와 타협의 산물이 될 수는 없다.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도, 노조파괴를 비롯해 노동자들을 옭아맨 자본의 불법행위를 바로잡는 것도, 결코 제 스스로 나서지 못했던 게 이 정부다. 게다가 틈만 나면 ‘두 손에 떡 들고 가난뱅이 등치는 데’ 익숙한 자본과 예의 그 사회적 합의로 ‘개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으라니, 순진한 신앙인가 아니면 확신범인가?


작년 2월 휴일 노동 임금을 삭감한 근로기준법 개악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개악까지, 그리고 새해 벽두부터 탄력근로제 개악과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악, 마침내 ILO 핵심협약 비준의 외피를 두른 노동법 개악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개악 패키지가 완성되려 한다. 여기에 조직된 노동운동에 대한 압박과 민주노총 때리기는 덤이다.


민주노조 운동의 오랜 요구였던 결사의 자유 ILO 핵심협약 비준이 바야흐로 궤도에 오르려 한다. 그런데, 어떤 ILO 협약 비준이고 어떤 노동법 개정이 될 것인가?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로 결사의 자유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 치적’으로 올해 ILO 100주년 총회에 직접 가서 연설할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눈치가 있다면, 끼워 판 물건은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다.


싸워서 막을 것인가, 앉아서 죽을 것인가? 노동자계급은 다시 한번 오랜 선택지 앞에 섰다. ‘정리해고제, 파견제 끼워 팔기’ 합의로 그 수많은 피눈물을 흘렸다. 그 세월을, 이제 노조파괴법 끼워 팔기로 되풀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