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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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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선 갓쥐! 안에선 헬쥐!


우영욱┃충북(LG화학 노동조합 청주지부 수석 부지부장)



최근 LG그룹 계열사인 한국음료* 노동자들이 노조할 권리를 요구하며 전면파업 184일‧단식농성 28일 끝에 사측과 잠정 합의를 마쳤다. 헌법도 보장하는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했지만, 이 사태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반면, 같은 시기에 LG가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공기청정기 1만 대를 기부했다는 소식은 전 국민이 다 알고 있을 정도다. 그것도 언론이 아닌 국무총리 개인 SNS를 통해서. 사실 LG는 예전부터 이런 여론사업에 탁월했다. 언론에 직접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게 아니라, 그룹의 ‘선행’을 만화나 이야기로 만들어 SNS에 은근히 흘려보냈다. 그러면서 ‘LG는 이렇게 선행을 하고서도 홍보를 안 해서 국민들이 모른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나갔다.


LG는 유례를 찾기 힘든 ‘4대 경영세습’을 완성한 그룹이다. 이때도 대대적인 언론 선전보다는 SNS나 소형 언론사를 통해 ‘승계 과정에서 모든 세금을 납부했다’고 은근히 홍보했다. 그런데 LG그룹 승계는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다른 재벌에 비하면 사실 그다지 어렵지 않다. 선대의 ‘선견지명’ 덕분인지 이미 1997년쯤부터 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 지주사인 “주식회사 LG”만 장악하면 자동으로 그룹 산하 모든 기업을 손에 거머쥘 수 있다.


1997년 당시 LG는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면서 대외적으로 ‘깨끗하고 투명한 그룹’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더 중요한 것은, 지주회사 하나로 거대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착한 기업’


그러나 이런 ‘착한 기업’ 이미지 뒤에는 늘 어둠이 드리웠다. 특히 1997년 IMF 위기를 기점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LG는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지속적으로 실행했다.


먼저 이해를 위해 덧붙이자면, 지금의 LG그룹을 구성한 두 축은 과거 “금성사”와 “럭키”였다. 이 가운데 금성사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기업들은(LG전자,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등) 대부분 한국노총 사업장이고, 럭키의 후예들은(LG화학, LG하우시스, LG생활건강 등)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곳들이다.


이 가운데 금성사의 뒤를 이은 기업들의 경우, 현장에 막상 ‘LG 직원’이 거의 없다. 작업반장 정도만 LG 소속이고, 모든 일은 하청노동자의 몫이다. 한국노총 산하 현장은 막을 새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생산설비는 공장 밖으로 빼버렸고, 공장 안에 남은 설비도 외주화했다. 정규직에게는 비정규직에 대한 지휘권을 주는 방식으로 불만을 가라앉히면서 비정규직화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럭키 계열 사업장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택했다. “노동조합 민주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피를 흘리며 싸웠다. 금성사 계열 사업장들이 무너져내릴 때, 민주노조를 택한 럭키 계열 노동자들은 그나마 저항할 수 있었다. LG가 탄압과 회유로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 해도, 민주노조라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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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음료지회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LG 본사 앞에서 항의하는 엘지화학 조합원들.



불법 도청, 일터 괴롭힘, 성폭력, 손배 가압류 협박까지


한국노총 사업장을 평정한 LG 자본은 칼날을 돌려 어떻게든 민주노총의 뿌리를 뽑으려 했다.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파괴하려는 LG의 시도는 치밀하고 잔악했다. 가령 재작년에 LG화학 사측은 교섭 와중에 노조를 불법 도청하다 들통나기도 했다. 겉으로는 ‘협력적 노사관계’ 운운했지만, 실상 노동조합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한 것이다. 다른 사업장은 더 가혹했다. LG하우시스에서는 관리자가 조합원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급기야 자살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졌고, LG생활건강에서는 관리자가 퇴근 후 판매직 조합원을 따로 불러내 바이어들의 술 시중을 들게 하는 성폭력이 발생했다. 아니, ‘발생한 것’이라기보다는 ‘밝혀진 것’이라고 해야 정확할지도 모른다. ‘착한 기업’이라는 가면 뒤에 뿌리내리고 있던 적폐가 드러나는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들에 대한 대응에서 LG는 스스로 ‘착한 기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LG생활건강 노동자들의 총파업에는 각종 고소‧고발과 손배 가압류를 예고했고, LG하우시스 총파업에서는 해당 관리자를 중국으로 도피시키는 등 각종 공작을 일삼았다. LG화학에서도 투쟁의 바람이 불자, 사측은 업무방해 가처분과 손배 가압류 협박을 들이밀었다.


자본의 본성은 위기가 닥쳤을 때 드러난다. 그리고 LG 민주노조가 확인한 것은 ‘착한 자본은 없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LG 사측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다시 착한 척 가면을 쓰며 ‘잘 지내보자’고 ‘협력적 노사관계’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미 경험을 해본 자는 속지 않는다. 저들이 경영이념이라고 내세운 ‘정도경영’과 ‘인화 사상’은, 민주노조 앞에서 LG 자본 스스로 산산이 박살 냈다.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다. 학습할지언정, 결코 답습하지 않는다. 착한 가면으로 가리고 있는 추악한 실체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 시중에 널리 알려진 코카콜라, 씨그램, 토레타 등의 음료를 만드는 회사. “LG생활건강”의 손자회사다(LG생활건강 → 코카콜라음료 → 한국음료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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