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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전교조 법외노조 6년

지배자들의 편향성을 거부하는 싸움


장인하┃서울



얼마 전 교장이 잠깐 할 얘기가 있다며 교장실로 불렀다. 교장이 할 얘기가 있다고 한 건 처음이어서(2년 만에!),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궁금증을 안고 교장실에 갔다. 얘기인즉슨, 그 전날과 당일 아침 학부모로부터 민원전화를 받았는데, 얼마 전 발송한 체험학습 가정통신문에 대한 항의가 들어왔단다. 나는 일주일에 2시간씩 인권을 주제로 하는 자유 학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학생들과 나가기로 한 체험학습 장소를 문제 삼은 것이다. 학생들과 가기로 한 곳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개조한 민주인권기념관, 청계천에 만들어진 전태일기념관,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총 세 군데였다.


교장에 따르면, 학부모는 점잖은 말투로 ‘체험학습 장소가 편향돼 있으며, 아직 어린 중학생들이 가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교장은 ‘전화를 한 통만 받았으면 이야기를 안 했겠지만 전화를 두 통 받아서 이야기하는 것이며, 4월에 학교에서 나눠준 세월호 리본에 대해서도 문제 삼는 학부모가 있었지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교장의 배려심이란.


이런 일을 겪으면서 체험학습 장소들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 생각해봤다. 항의 전화를 한 학부모는 특히나 전태일기념관을 문제 삼았다던데, 전태일은, 전태일을 기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편향적인가? 중학생들에게 전태일은 너무나 편향적인 역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 빤하지만, 무엇이 편향인지는 결국 ‘어디를 딛고 서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어딘가를 딛고 서 있는 학부모에게 전태일기념관은 정말 걱정이 되고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딛고 선 곳


오는 10월 24일은 전교조가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지 6년이 되는 날이다. 전교조를 ‘한 마리 해충’에 비유했던 박근혜가 어디를 딛고 서 있었는지는 굳이 더 설명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박근혜가 ‘편향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문재인 정부가 딛고 서 있는 곳 역시 이미 많은 일들을 통해 숱하게 확인되었지만, 지난 10월 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노조법‧교원노조법‧공무원노조법 정부 입법 개정안은 이를 다시금 보여줬다. 문재인 정부에게 지금의 노동-자본 간 관계는 한쪽으로 편향된 ‘기울어진 운동장’이며, 그 운동장이 ‘노동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자본의 편에 서서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하고 노동자 쟁의권을 제한해 ‘편향’을 바로잡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반발이 예상되고 ILO도 자꾸 핵심협약을 거론하며 번거롭게 하니, 전교조에 최소한의 단결권 보장을 떡고물로 던져주었다. 물론 거기까지다. 권력자들에게 전교조는 ‘편향된’ 집단이기에 단체행동권과 정치기본권을 박탈해야 하며, 해고자의 노조 활동을 제한하고 교섭 창구를 단일화해 손발을 완전히 묶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는 명확하게 자본의 편에 서 있다. ‘사용자 대항권’, 직무급제, 탄력근로제 등 박근혜 정부도 쉽사리 손대지 못했던 사안들을 이 정부는 모종의 ‘사명감’까지 풍기면서 수행해내고 있다. 누군가는 ‘그래도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도 꽤 올렸고, 노동시간도 단축했으며, 어쨌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어느 정도 해내지 않았느냐’며 문재인 정부가 서 있는 곳을 단정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주장은 틀렸다. 최저임금 인상을, 노동시간 단축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가능케 한 것은 이 정권이 아니라 현실에 신음하며 투쟁한 노동자들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이후 터져 나온 노동자들의 요구를 희석하고 완화하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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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누구를 위한 ‘편향’인가


다시, 전태일기념관의 ‘편향성’을 걱정했던 학부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 학부모에게 ‘전태일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전태일기념관은 정부와 서울시 지원을 받아 설립된 곳’이라고 읍소해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 학부모가 딛고 서 있는 곳에서는 전태일이 편향적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신이 의결한 입법안은 노동개악안이며,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은 취소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아무리 설명해봐야 별 효과는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태일이 편향적이라는 사람들과 같은 곳을 딛고 서 있으며, 그곳에서는 ILO 핵심협약이, 노동기본권이, 전교조가 편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학부모의 민원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이번 민원을 계기로 ‘체험학습 사전점검위원회’를 만들자는 교장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계획한 체험학습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전교조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편향에 맞서 싸워왔던 덕분이다. 전교조 덕분에 나는 권력이 요구하는 편향에 따르지 않으면서 교사 생활을 할 수 있다.


그 전교조가 법외노조 처분을 받은 지 이제 6년이 지나간다. 전교조는 10월 21일 해고자 집중 투쟁을 시작으로 24일 노동개악 저지‧법외노조 취소 결의대회, 11월 9일 교사대회를 진행한다. 전교조가 노동개악의 거래대상이 되는 비극의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노동개악 저지를 위한 연대 전선에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힘차게 투쟁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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