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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1.04 18:22

노뉴단의 길, 

내 생의 봄날


세연┃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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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노동자뉴스제작단(노뉴단)을 알게 된 게 언제였더라? 90년대 중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생 운동을 하며 살겠다’던 철없는 결심은 20대 중반도 안 되어 좌절됐고, 어찌하다 보니 방송일을 업으로 삼고 있던 시기였다. 매일매일 ‘내가 지금 뭘 하고 사는 거지?’ 탄식하다가, 어처구니없게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제작을 공부하면서 노뉴단을 알게 되었는데, 당시 노뉴단은 독립영화를 막 시작한 내게는 전설 같은 존재였다. 다른 영상집단과 비교하면 노뉴단은 영상 운동 그 자체보다는 ‘영상을 통한 노동운동에의 복무’에 방점을 찍고 있었고, 그게 바로 내가 하려던 활동이었다.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것이었는지는 바로 깨달았지만, 영상을 무기로 세상을 바꾸는 데 함께 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노뉴단 활동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다시 운동에 온전히 복귀했다는 뿌듯함으로 행복했다.


내가 노뉴단에서 활동했던 2000년대 초중반, 노뉴단은 정말 많은 활동을 했다(물론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 그랬다).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정리해고 투쟁과 비정규직 투쟁을 일상적으로 기록했고, 투쟁 속보를 만들고, 개인 장편 작품을 제작하고, 노동조합에서 필요로 하는 영상을 만들었다. 그에 더해 해마다 노동영화제를 진행했고, 현장의 노동자 영상패를 조직해 교육도 했다. 노동운동에 필요한 모든 영역의 영상 활동을 노뉴단이 책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투쟁 현장에서 영화제까지, 영상을 무기로


1989년 노뉴단이 처음 만들어지면서부터 투쟁 현장의 기록과 속보 제작은 가장 중요한 활동이었다. 노동운동의 역사를 담은 영상 가운데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중 상당 부분은 노뉴단이 촬영한 결과물이다. 투쟁의 현장을 기록하고 영상으로 제작해 대중에게 선전 선동하면서 투쟁을 확산시키는 것. 이것은 노뉴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2000년대 후반까지 중요한 투쟁 현장 대부분을 노뉴단의 카메라가 오롯이 담아냈다.


일상적인 촬영과 편집은 물론이고, 노동영화제 시즌이 다가오면 노뉴단은 거의 전시체제에 돌입했다. 물론 영화제 준비는 연초부터 시작했지만, 영화를 선정하고 배급사와 협의를 마쳐 번역이 끝나면 자막 등의 후반 작업은 노뉴단 작업자들이 맡았다. 11월 전국노동자대회를 즈음한 노동영화제 직전 두 달 정도는 영화제 준비를 위해 거의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곤 했다. 그렇게 해서 켄 로치나 마이클 무어 등 좌파 거장 감독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노동영화제가 아니었다면 절대 볼 수 없었을 사회주의적 지향을 담은 여러 영화를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노뉴단의 성과 중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노동자 영상교육과 영상패 조직이었다. 현장의 노동자가 직접 영상을 자신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자기 역할로 삼았다. 현대차, 기아차, 사회보험 노조 등 대규모 사업장의 영상패 조직과 활동 지원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 소규모 사업장이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영상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도록 자체 교육을 진행했다. 이렇게 제작된 현장 노동자들의 영상작품은 각각의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노동영화제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노뉴단의 그날들


이제 노뉴단은 일상적인 촬영이나 정기적인 노동자 영상교육은 하지 않는다. 노동영화제도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노뉴단의 역할이 작아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뉴단이 그 역할을 하던 때에는 운동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었고, 이제 그 임무는 마쳤기 때문이다. 노뉴단은 지금 해야 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여러 역사물, 정세 교육물, 선동물 등을 제작하는 일이 그것이다. 계급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현재 정세에 맞춰 운동에 필요한 영상물을 노뉴단보다 더 잘 만드는 곳을 나는 알지 못한다.


노뉴단을 그만두고 한동안 개인 작업을 하다가 지금은 당 운동에 집중하고 있지만, 노뉴단 식구들을 만나면 부채감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여전히 어렵고 고단한 길을 걷고 있는 동지들이 짠하기도 하다. 벌써 30년, 치열하고 또 치열하게 잘 살아내고 있다고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나의 노뉴단 시절을 떠올리면 참 반짝반짝 빛나던 한 시절이었다 싶다.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투쟁 당시 부평역에서 대우자동차 정문까지 꽃병(화염병)을 내리꽂으며 한달음에 달려가던 노동자들을 쫓아 카메라를 들고 뛰어가던 그 날, 517일간의 투쟁 끝에 노조 깃발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한국통신 계약직 동지들과 함께 울던 그 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은 박일수 열사의 영안실에 쳐들어와 깽판을 치던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를 보며 치를 떨던 그 날, 3일 밤을 새우며 편집한 선전물을 노동자대회 전야제에서 상영하던 그 날, 그 숱한 그 날들…. 노뉴단에서의 그날들은 내 생에 다시 오지 않을 봄날이었다. 하지만 노뉴단의 누군가에게 봄날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그러니 노뉴단 동지들, 건강하게 오래, 운동이 원하는 그 역할을 다해주시라. 노뉴단의 30년 다시 한번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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