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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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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1.04 19:17

촛불항쟁 이후 3년, 

요즘 운동권 뭐하니?


김태연┃대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1개월쯤 지난 2017년 6월 초순에 모 대학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항쟁을 주제로 강연을 했었다. 그 학교 새내기인 아들도 참석했는지라, 아닌 척 하면서도 긴장해서 더 열강했다. 그런데 아들은 기억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때 얘기한 정세 전망이 오판으로 드러나고 있어서 내심 부끄럽다. 당시 ‘새누리당을 비롯한 국정농단 세력은 정치적 뿌리가 깊어 일거에 몰락하진 않겠지만, 이제부터는 퇴조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촛불항쟁 3주년이 되는 지금 태극기부대가 광화문을 장악한 채, 한국의 정치 구도는 국정농단사태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대개의 예측가가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두듯, 그때 나도 단서를 하나 달아두긴 했다. “단, 문재인 정권 실정의 반사이익으로 국정농단 세력이 기사회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그렇지만 지금 상황으로 볼 때 이 단서를 내세워 면피하기는 낯간지러울 지경이다. 촛불항쟁 이후 정세 향배에서 문재인 정권 실정은 단서가 아니라 본체임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촛불 정권의 총체적 실정


단지 조국 사태 하나로 판이 엎어진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은 지속적이고 총체적이다. 촛불항쟁 덕분에 손쉽게 집권한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을 내세웠으나, 오히려 적폐를 옹호하는 정치로 회귀했다. ‘교사‧공무원 노동3권 보장’은 한국 사회에서 민주적 기본권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상징을 달랑 행정지침서 한 장으로 짓밟은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문재인 정권도 옹호했다.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와 탄력근로제 개악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극단적 착취제도인 저임금‧장시간 노동 적폐를 옹호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는 대법원판결을 거부함으로써 비정규직 양산 적폐를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범죄자인 삼성재벌 총수를 대놓고 비호하고, 공적 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 재벌에게 특혜매각하는 등 재벌체제를 옹호하고 있다.


이쯤 되면 자유한국당이나 문재인 정권이나 적폐 옹호에서는 ‘도긴개긴’이 되어 버렸고, 적폐세력으로 몰락의 위기에 처한 자유한국당 세력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 됐다. 그동안 한국 사회 기득권층 권력집단이 저질러온 도덕적‧법적 범죄가 백일하에 드러난 조국을 검찰개혁의 기수로 내세워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최후의 일격이었다.



촛불광장 무대에서 밀려난 운동권


강남의 검찰개혁 촛불집회가 절정에 달할 무렵, 옛날에 함께 운동했던 몇몇 지인들로부터 ‘요즘 운동권 뭐하니? 운동권은 왜 강남 촛불집회에 안가냐’는 질문을 받았다. 조국 수호가 아니라 진심으로 검찰개혁을 위해 강남으로 간 사람도 있겠지만, 강남 촛불은 적폐 옹호에서 자유한국당 세력과 별 대차 없는 민주당 문재인 정권 사수 집회였다. 어쨌든 국정농단 촛불항쟁 당시 강남대로는 운동권이 주도한 재벌총수 구속 투쟁의 주 무대였는데, 이제는 운동권이 별로 없는 조국 수호 촛불집회의 장으로 바뀌었다.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는 처음부터 운동권이 중심에 있었다. 촛불항쟁 직전의 박근혜 정권 퇴진 민중총궐기 투쟁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촛불항쟁 3년 후 지금 광화문은 태극기부대가 장악하고 있다.



운동권은 어디로?


정부가 태도를 분명히 하는데도 지난 3년 동안 운동권은 혼란에 빠져 주춤거렸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공격하고 탄력근로제를 밀어붙이는 상황에서도 민주노총을 비롯한 운동권은 기만적인 노사정 합의 구도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촛불항쟁 이후 분출하는 기층 대중의 개혁요구를 중심으로 큰 투쟁을 만들 좋은 기회를 놓쳤다.


화려한 무대에서 밀려나고 혼란스러운 와중에서도 노동자들은 이곳저곳에서 매우 원초적인 요구를 걸고 싸움을 시작했다. 발전소 비정규직 청년노동자의 죽음에 맞선 투쟁,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쟁취 투쟁, 전교조‧유성기업‧영남대병원 노동자들의 노조파괴 분쇄 투쟁, 조선산업 노동자들의 재벌특혜매각 저지 투쟁, 그리고 법원이 석방해 버린 삼성재벌총수 재구속 투쟁 등을 이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기대를 접고 기존 정치 세력과 자본에 맞서 ‘운동권’으로 거듭나고 있다.


조국 장관 사퇴 발표 후 모 신문사 기자가 전화로 물어왔다. 조국 사태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가 높은데, 광화문 태극기집회와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집회 양쪽 모두에 청년층 참여가 저조한 이유가 무엇일까? 광화문은 자유한국당 집회, 서초동은 민주당 집회로 인식되는데, 두 세력 모두 청년층의 동의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기자가 질문했다. 그러면 진보정당을 비롯한 운동권을 대안으로 인식하나?


원내 진보정당도 더불어 여권으로 분류되는 가운데 그다지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기존 방식, 기존 정치, 기존 세력에 대한 총체적 불신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정세다. 근본적인 문제를 과감하게 제기하고, 새로운 정치를 대중적으로 제안하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 운동권 전체가 이 변화의 길로 들어서기 어렵다면, 변혁당이라도 이름값에 걸맞게 치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10월 25일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집회 3주년을 맞이하며 반자본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을 다시 곱씹어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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