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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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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1.16 20:14

시장주의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나?


홍미희┃충북



2019년 9월부터 시작된 호주 남동부 산불은 해가 바뀔 때까지 석 달 이상 지속하며 수많은 피해를 만들어냈다. 이번 산불로 남한 면적의 절반에 가까운 4만 9,000여㎢가 불탔다. 화재로 인한 사망자도 소방관 10명을 포함해 24명으로 늘어났다. 야생동물 5억 마리가 불에 타죽었다. 피해는 가뭄과 강풍, 여름 폭염 등이 겹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뉴사우스웨일스와 빅토리아주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호주는 산불의 영향권이 아니더라도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이 대형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하면서 호주 사회는 논쟁에 휩싸였다. 호주는 세계 최대 석탄 및 액화천연가스 수출국으로 전 세계 석탄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나라 중 하나다. 그동안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을 지적하며 석탄 산업을 감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지만, 호주 정부는 이를 거부하며 이산화탄소 저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켜지지 않는 ‘국가 간 약속’


1992년 리우 지구환경 선언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됐고, 1994년 3월 50개국이 조인하며 발효됐다. 1997년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 이행방안을 담은 교토의정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2% 감축하는 것에 동의하며 체결됐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은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기후변화협약은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 국가 간 약속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교토의정서는 각국 이해관계와 산업계 요구에 따른 탈퇴와 비준 거부로 인해 협약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기도 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가장 많은 미국은 경제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탈퇴했고, 호주도 비준을 거부했다. 교토의정서 협상 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중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3% 증가했고, 같은 기간 인도 역시 60% 늘었다.


교토의정서는 시장주의적 온실가스 감축 메커니즘인 공동이행제도, 청정개발체제, 배출권거래제도가 가능하도록 했다. 온실가스 규제보다 시장을 통한 해결에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를 감축한 만큼 ‘배출할 권리’를 되팔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은 기존 협약보다 후퇴했고 구속력은 더욱 약화했다.



배출권 거래: 실패한 방법


2006년부터 유럽연합이 주도적으로 시행한 배출권 거래제는 실패한 정책으로 비판받고 있다. 자국 기업에서 필요한 배출권보다 더 많은 배출권을 지급한 탓에 친환경 재생에너지나 저탄소 기술에 대한 투자를 어렵게 했다. 교토 메커니즘(교토의정서에 따른 시장주의적 온실가스 대응 체제)은 산업 활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숫자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에 불과했다. 실제로 기업에 탄소 배출량을 줄이도록 강제할 방법은 없다. 가격 보상을 통한 감축 방법도 실패했다. 배출권 공급 과잉은 배출권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고, 그에 따라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유인도 저하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이산화탄소 감축량을 줄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탄소배출을 극적으로 줄여야 하지만 국가별로 감축 목표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게 만든다. 한국도 2015년부터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했다. 배출권 거래제는 산업계의 반발로 시행 시기가 한차례 연기됐다. 시행 직전에는 산업계 요구를 적극 수용해 온실가스 감축 허용량을 10% 늘려주며 배출권 거래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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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의는 틀렸다


교토 메커니즘의 하나인 ‘청정개발체제’는 기업이 가난한 나라에 투자하면 탄소 배출량 감축 의무를 면제해 준다. 또 탄소상쇄(탄소를 배출한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탄소 배출을 감축하는 것) 상품에 투자하면 배출량을 줄이지 않아도 ‘친환경’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기업이 얻은 친환경 이미지는 탄소 배출로 환경파괴에 앞장섰던 사실을 숨기고 책임과 규제를 피하게 만든다.


한편 최근 ‘에너지 시장 자유화 덕분에 유럽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성공했다’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 1990년대부터 시작된 전력시장 자유화는 전력망과 발전 부문을 분리하고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을 도입해 경쟁을 강화했다.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면 기업 간 경쟁을 통해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도매시장 전력가격은 낮아졌지만, 소매시장 전력가격은 2008년 이후 연 3% 증가했다. 또한 전력회사가 합병으로 대형화하면서 시장집중 현상이 일어났다. 많은 소매기업이 시장에 진출했지만 결국 지역별로 3대 전력공급업체 집중률이 80%에 달하게 됐다. 특히 유럽에서 재생에너지 증가가 두드러진 것은 발전 차액 제도(FIT: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에 대해 시장가격과의 차액을 지원하는 제도)가 기여했기 때문이지, 시장 자유화 때문에 재생에너지 발전이 증가했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고 기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에너지 공공성 확대를 통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배출의 주범인 자본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기존의 시장주의 방식으로는 절대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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