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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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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2.14 15:24

n번방

: 아주 평범한 남성사회


지현┃여성사업팀



‘n번방’은 텔레그램이라는 매체를 이용한 성폭력, 특히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이 자행된 디지털 공간이다. n번방 이용자들은 피해자들에게 직접 스너프 필름(snuff film: 실제 살인‧폭행‧성폭력 등을 담은 영상)을 찍을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 방에서 생산된 스너프 필름들은 활발히 거래되어, 한 달에 2억 원 정도의 수입을 번 이용자도 있다고 한다.


“저는 사이코패스가 아닙니다. PD님은 얼마를 주면 사람을 쏘겠습니까? 저는 원하는 금액만 들어오면 쏩니다. 저는 사업가입니다.”


지난 1월 17일 방영된 SBS 시사프로그램 <궁금한 이야기 Y>에서 일명 ‘n번방’ 가해자인 ‘박사’가 인터뷰해 충격을 준 발언이다. 그는 “방송 이후 자살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건 제작진의 탓”이라며 뻔뻔하게 책임 전가를 하기까지 했다.


방영 이후 많은 사람이 그의 악랄함에 경악했다. n번방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트윗은 몇백, 몇천을 넘어 1만 리트윗까지 도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국회 청원은 마감일인 2월 14일을 앞둔 지금 10만 명의 청원자를 모았다. 형식적인 대답만 돌아오는 청와대 청원과는 달리, 국회 청원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자동 회부되어 실효성 있는 법을 제정할 확률이 높기에 페미니스트들은 이 청원을 독려했다.


n번방 이용자들은 여성이 아닌 남성사회 편입을 욕망한다. n번방은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n번방에 참여한 남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여성의 신체를 잔인하게 정복할 수 있는지를 뽐내고, 그 폭력을 다른 남성에게 공유한다. 다른 이용자들은 그 영상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그 남성의 능력을 인정하고 남성 카르텔을 강화한다.


n번방 이용자들이 특별히 악랄한 남성들이기에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남성들이 성관계를 흉내 내며 여성과 동성애자 남성들을 조롱하고, 어제 본 음란물에 대해 떠벌리는 교실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 음란물은 주로 ‘국산 야동’, ‘일본 야동’ 등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성적 접촉을 과장하여 보여주는 영상이다. 자신이 폭력적인 성을 추구한다는 걸 과시할수록 또래집단에 소속감이 강해지고, ‘강한 남자’로 인정받기 때문에 굳이 영상의 출처까지 밝혀가며 큰 소리로 얘기를 나눈다. 그 인습을 용기 내어 고발해도, 한국 사회는 ‘남자들은 다 저런다’라는 이유로 용인한다. 왜곡된 성 관념에 대한 반박을 받지 않는 남성들은 그대로 성장하여 n번방 가해자가 된다. 폭력성을 과장하여 전시하면서 남성들의 찬양을 받는 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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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방송화면 캡쳐]



더욱 착잡한 점은, 소름 끼치는 ‘박사’의 인터뷰가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진실을 폭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딱히 불법 촬영이나 성폭력을 통해 생산되는 음란물이 아니더라도, 여성의 몸을 성 상품화하는 포르노 산업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일본 포르노 산업은 한국 사회를 휩쓴 일본 불매 운동 물결에서도 살아남았다. “바디존”이라는 이름의 포르노 회사는 최근 남성이 여성의 배를 짓밟고 뛰는, 소위 ‘배빵’이라고 불리는 행위를 찍은 영상을 판매했다. 하지만 여성에게 공공연하게 상해를 입히는 현장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업 아이템’일 뿐이다. 반항하지 않고 남성의 폭력을 받아들이는,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여성상을 판매하는 이 ‘합법적인’ 산업은, n번방에서 판매되는 영상들과 큰 차이가 없다.


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SNS에 ‘n번방’을 검색해보았다. 평소 성 착취 영상을 판매하거나 구매하는 계정은 신고하고 차단하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n번방'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성 착취 영상을 구매하려는 계정은 폭로 이전보다 오히려 더 많아 보였다. 자신들의 실상이 세상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개의치 않는다. 이 사실은 한국 사회에 수많은 ‘박사’가 존재함을 증명한다.


혹시 자신의 주변에 ‘박사’가 있는지 돌아보자. 아마 자기 삶에서 수많은 잠재적 ‘박사’ 혹은 ‘박사’를 마주했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몫은 n번방 사건을 접하고 남성사회의 평범한 광경이 수면 위로 드러났음에 놀라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박사’에 대항해 싸우고, 남성폭력을 제거하는 것에 앞장서는 것이다. 여성의 성 상품화를 당연시하고 이를 통해 돈을 버는 구조를 용인하면서, 바로 그 ‘박사’를 만들어내고 ‘박사’의 존재를 용인해온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대항하는 투쟁에 함께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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