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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오천억, 죄짓고 천오백억

‘경제 어렵다’더니… 재벌 일가 배당금 풍년


이승철┃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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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富者)는 부자(父子)다


또 1위다. 2위와의 차이도 3배가 넘는다. 1년 동안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1위란다. 하긴, 11년이나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으니, 이제는 뉴스거리도 안 된다. 2위도 만만치 않다. 안타깝게 은메달에 그쳤지만, 1위와 같은 팀 소속이다. 투병 중인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 씨와, 재판 중인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씨 이야기다.


이들에게 부자富者는 곧 부자父子다. 2020년 이건희 회장이 챙긴 배당금(2019년 회계연도 기준)은 4,748억 원이다. 이 회장은 2009년 ‘배당금 1위’에 오른 뒤 11년 연속 배당수익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2위인 이재용 부회장은 1,426억 원을 받았다. 배당금으로 1천억 원 이상을 챙긴 사람은 5천만 국민 중 이건희-이재용 둘뿐이다.


하긴 이들이 누군가. ‘삼성 패밀리’ 아닌가. 1~2위에 만족할 리 없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이자 이재용 부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 씨도 766억 원을 배당받으며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건희 회장의 두 딸인 이부진(호텔신라 사장) 씨와 이서현(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씨도 각각 218억 원을 배당으로 챙기며 사이좋게 공동 11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삼성 일가 5명이 챙긴 배당금 총액만 7,503억 원이다. 개인 배당금 상위 20명의 배당총액인 1조 3,586억 원의 55%에 이르는 금액이다.



‘질세라’ 현대-LG


개인 배당금 총액 3위는 933억 원을 기록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다. 현대 일가도 외롭지 않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777억, 4위)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608억, 7위)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 일가의 배당금 총액은 2,378억 원이다. 그래 봐야 이건희 한 명 배당수익의 절반 수준이지만, 나름 ‘가문 총액’으로 2위를 차지하며 스스로 위안할 거리는 찾았다.


이쯤 되면 3위를 예상하긴 어렵지 않다. 구광모 LG그룹 회장(569억 원)과 구본준 LG그룹 고문(292억 원)이 각각 8위와 10위를 마크하며 삼촌-조카 합계 861억 원으로 세 번째 가문에 이름을 올렸다. 구광모 회장은 TOP 10 중에서 최연소 메달리스트(1978년생)의 영광으로 위무를 얻었다.


삼성-현대-LG를 제외한 배당금 TOP 10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649억 원, 6위),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544억 원, 9위)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역시 SK와 한진그룹 집안이다.



‘그들의 말’로 보는 아전인수


“최근 수년간,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미래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준비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2019년 8월 29일,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직후 삼성이 이례적으로 발표한 호소문 내용이다. 삼성의 입을 빌자면, 이재용 회장은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 ‘미래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준비에도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부자를 합쳐 6천2백억 원 가까이 배당을 챙겨갔다. 그들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방식은 바로 자신의 배당금을 불리는 것이었다.


이 재판의 시작이 된 사연을 보면 더 기가 막힌다. 대법 판결에 따르면 이재용의 뇌물 공여액은 총 86억 8,081만 원이다. 이 뇌물액은 모두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의 횡령액이기도 하다. 대법은 이재용이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뇌물을 건네며 ‘승계 작업’에 도움을 받겠다는 부정한 청탁이 있었던 점도 모두 인정했다. 횡령으로 뇌물을 마련해 경영권 승계라는 범죄를 저지르고, 이 범죄로 얻은 주식과 자리로 거액의 배당금을 챙긴 셈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자동차 수요 감소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불확실성 확산 등 대내외 경영환경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


2019년 8월 28일, 현대자동차가 임금단체협상 노사합의 후 발표한 입장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대내외 경영환경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정몽구 회장은 933억 원을, 정의선 부회장은 608억 원을 챙겼다. 당시 현대차는 위기를 부풀리며 ‘8년 만의 무분규 노사합의’를 이뤘다면서 한껏 자랑에 나섰다. 노조가 요구했던 정년연장과 해고자 복직은 ‘경영환경 리스크’를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에서 ‘조선업 침체’ 등을 이유로 지난 4년 동안 해고된 노동자는 무려 3만5,000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지주의 25.8% 지분을 손에 쥐고 있는 정몽준 회장은 이들 노동자를 해고하는 동시에 배당금으로 777억 원을 가져갔다.



비정규직과 범죄수익으로 쌓은 재벌의 탑 허물어야


천문학적 배당금이 상징하는 재벌체제의 두 기둥은 ‘저임금-장시간-비정규노동으로 대표되는 착취구조’와 ‘범죄로 얻은 경영권과 수익’이다. 경영 세습을 위해 불법으로 차지한 금액이 삼성 이재용만 해도 9조 원, 현대차 정의선은 3조 원에 이른다. 재벌 일가는 탈법과 불법으로 손에 쥔 경영권을 바탕으로 독점이윤을 쌓고 있다.


이 구조를 깰 수 있는 것은 재벌의 사회화다. 거대한 기업집단을 사기업 상태로 두고, 그 이윤을 주주가 사적으로 독점하는 구조를 둔 상태로는,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를 해고하고 구조조정을 하면서 높은 배당금 잔치를 벌이는 일이 다반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벌의 사회화가 왜 필요한지, 오늘 이건희와 이재용, 정몽구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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