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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6.15 18:09

하마터면 워홀러 될 뻔

 

 

목소리┃인천

 

 

 

지난 3월 초, 호주로 워킹홀리데이(통칭 ‘워홀’)를 떠났다. 아직 코로나가 중국과 한국 등 몇 나라에서만 기승을 부리던 때다. 2020년 한해를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공장노동 경험, 해외여행, 독립 자금 1천만 원 저금 등등. 이 모두를 이룰 꿈(!)을 안고 3월 5일 호주 브리즈번으로 떠났다. 코로나로 항공편이 끊기기 하루 전이었다.

 

 

그러나 2월 말부터 호주에도 코로나가 퍼지면서, 호주 정부는 나날이 셧다운 강도를 높였다. 안 그래도 불황에 들어섰던 호주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워홀러들은 1차 해고 대상이었다. 매일 구인‧구직 사이트 4개를 돌아다니며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특별 실업수당이나 고용주에게 주는 ‘일자리 지키기 보조금’, 임차인 퇴거 6개월 유예 등 호주 정부의 대책은 ‘비시민권자’인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얘기였다. 세계 경제 위기의 피해를 직접 받은 느낌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4월 10일, 호주를 탈출할 수 있었다. 귀국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전세기가 뜬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비용은 평소의 3배 정도, 150만 원이었다. 도합 빚 500만 원을 안고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을 쫓아낸 집에서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했다. 쌀, 라면, 고구마, 3분 카레 등을 보내온 서울시 자가격리 키트에 만감이 교차했다.

 

 

자가격리 해제 후 인천 남동공단의 손 세정제 공장에 취직했다. 빚 때문에 공장노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도 코로나 시기 몇 안 되는 ‘호황 산업’에 취직했으니 운이 좋았다. 매일 10.5시간 노동과 주말 근무까지 강제로 해야 하는 파견노동자 신세지만. 실업과 장시간 노동이 공존하는 자본주의의 병폐가 이렇게나 극대화된 시기에 내가 ‘강제된 장시간 노동’ 쪽에 서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는데 말이다.

 

 

만약 사회주의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애초에 워킹홀리데이가 아닌 ‘국가 보장 홀리데이’(?)를 떠나지 않았을까? 호주에서 실업 상태에 있던 내게, 사회주의 정부라면 무료로 호주를 탈출할 비행기표나 생존을 위한 충분한 재난지원금을 보내주지 않았을까? 귀국 후에도 무료로 자가격리 공간과 함께, 계획 경제의 미덕을 살려 정기성‧풍성함을 갖춘 키트를 보내지 않았을까? 500만 원의 빚을 갚기 위해 손 세정제 공장에서 주 70시간 이상 노동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한국의 이주노동자들 역시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로 실업과 사회안전망 부재에 시달리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부천의 ‘쿠팡 발’ 코로나 확산으로 인천 지역이 비상이다. 하루에 몇 번씩 신규 확진자 거주지와 동선이 문자로 온다. 우리 공장 노동자들은 코로나가 건재함에 은근히 감사하는 눈치다. 일감이 줄지 않으니 해고될 걱정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참 너무한 자본주의다. 그러다 누구 한 명이라도 코로나에 걸리면 모두 해고될 수밖에 없는 파견노동자 신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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