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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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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7.01 18:57

노사정위 흑역사, 

이제는 종식시켜야 한다


김혁┃노조사업특별위원장



왜 노사정위 역사를 흑역사라 부르는가?


1995년 민주노총의 출범과 함께 민주노총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참가를 둘러싼 논쟁과 파장이다. 1기 노사정위는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구성됐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주장한 김대중 정권의 요구에 민주노총은 노사정위 참가를 결정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한국 노동자계급에게 공포의 대명사가 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를 이 노사정위에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후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대우자동차 등에서 정리해고에 맞선 처절한 투쟁이 전개된 바 있다. 결국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를 개최해 교원노조 합법화 불이행 및 구조조정 강행 등에 항의하며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이수호 집행부(2004~2006년) 시절 노사정위 참여를 저지하기 위해 조합원과 활동가들이 대의원대회 단상 점거까지 감행했던(2005년) 내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이후에도 노사정위 참여와 탈퇴를 반복했다. 물론 노사정위를 통한 노동개악도 계속됐다. 가령 2006년 노무현 정권은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라는 미명하에 “노사관계 로드맵”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필수공익사업(필공)’을 확대하고, 쟁의행위 기간 중 필공 사업장의 필수 유지 업무 수행 의무를 부과하며 대체 근로까지 허용하는 등, 공공부문 사업장에서 쟁의행위를 거의 금지하다시피 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민주노총이 불참한 가운데 한국노총이 야합해 통과시킨 것이다.


이런 대표적인 결정 외에도 2011년에는 노사정위 산하 기구인 “노동시장 선진화 위원회”가 비정규직 확대와 연동한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 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당시 비정규직 투쟁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렇듯 민주노총은 절실히 투쟁해야 할 시기에 노사정위 참여를 둘러싸고 내부의 홍역을 치렀다. 그뿐만 아니라 노사정위는 그렇지 않아도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노사관계를 더욱 자본 편으로 기울게 하는 결정을 해왔다. 그렇기에 노사정위의 역사를 흑역사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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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합의한 1기 노사정위원회. [사진: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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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3월 15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단상점거. [사진: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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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공공부문 사업장 쟁의행위를 금지하다시피 한 내용을 합의한 노사정위원회. [사진: 참세상]



김명환 집행부와 ‘사회적 대화’


지난 2017년 말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곧바로 문재인 정권과 함께 노사정 대화 채널을 가동했다. “노사정 대표자회의”라는 회의체로부터 시작한 대화 채널은 이후 각종 의제별‧업종별 위원회까지 포괄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로 확대 재편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노동개악을 멈추지 않았다. 주 52시간제 전면 시행을 유보하고 휴일임금을 삭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악안 처리에 이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까지 포함함으로써 사실상 최저임금을 삭감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악까지 단행했다.


이 와중에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경사노위 참여를 결정하기 위해 2018년 정책대의원대회를 개최했으나, 성원 미달로 안건 상정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이어 2019년 정기 대의원대회에는 공식안건으로 상정했고 이에 대한 3가지의 수정동의안이 제출됐으나, 어떤 안도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서 자동폐기됐다.



코로나19 핑계로 되살아난 ‘노사정 대표자회의’


이렇듯 대의원대회까지 거치며 폐기된 노사정위원회를 다시 되살려놓는 핑계가 된 게 ‘코로나19’다. 민주노총은 4월 16일 5차 중앙집행위원회(중집) 회의를 개최해 ‘노정, 노사정 교섭 등 코로나 위기 돌파를 위한 비상교섭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김명환 집행부는 4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원포인트 노사정 비상협의’를 공식 제안했으며, 4월 18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만나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긴급한 노사정 대화를 추동해 나갈 것’을 약속받는다.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노사정 간 세 차례에 걸친 실무예비모임에 이어 5월 20일 1차 대표자회의가 열렸으며,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경총‧대한상의 등 자본가단체 대표들과 나란히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후 11차례에 걸친 실무회의와 몇 차례의 부대표급 회의, 2차 대표자회의 등을 거치며 ‘6월 말까지 최대한 합의안을 도출한다’는 전제 속에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경영계는 이번 기회에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 한다. 정부에 대해서는 기업에 대한 예산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으며, 노동계에 대해서는 ‘해고의 자유’와 임금동결을 포함한 노동유연화 확대를 내밀었다. 그렇기에 지난 5월 27일 개최된 경제단체협의회(경총 등 자본가단체의 연합체) 총회에서 이들은 건의문을 통해 “노사정 대표자회의의 의미가 크다”며 “노동계가 임금과 고용에서 상당 부분의 고통분담에 대승적으로 협조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영계의 이런 주장은 부대표급 회의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6월 16일 열린 부대표급 회의에서 이들은 “기업 살리기가 고용유지”이며 “탄력근로 확대가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시간 유연화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며, “현장은 위기로 인해 이미 노사협조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정부는 외관상 중재역할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본가 편향적이다. 이미 경영계로부터 ‘기업살리기, 고통분담, 임금절감, 유연화 등의 내용이 들어가지 않으면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경고를 듣기도 했거니와, 지난 2차 대표자회의에서 드러난바 정부는 노골적으로 경영계 편을 들고 있다. 가령 정세균 국무총리는 모두발언 등을 통해 임금 반납과 무급휴직이 진행된 금호고속, 연봉을 스스로 삭감한 김연경 선수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노사와 노노가 양보와 배려를 한다면 코로나19 위기를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놓고 임금삭감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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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18일, 삼청동 국무총리 서울공관에서 2차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사진: 국무총리비서실]



‘한국판 뉴딜’, 경제위기 고통전가가 핵심


한편 문재인 정부는 6월 초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가운데 단기 대책으로는 확장 재정 지속과 함께, 노동계에 대해 ‘사업장별 고용유지 협약 체결’을 주문했다. 그 전제는 ‘노동자들이 임금삭감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럴 경우 6개월간 임금 감소분의 일부를 지원한다는 당근을 내밀었다. 장기 대책으로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겠다는 개악과 함께,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직무급제 도입 확대까지 예고했다.


정부는 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이라는 이름을 붙여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휴먼 뉴딜’을 주요 정책으로 제출했다. 주로 기업 지원에 집중하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은 세부 내용이 나오고 있지만, ‘휴먼 뉴딜’에 관해서는 ‘2022년까지 전 국민 고용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9천억 원을 지원한다’는 수준에 그쳤다. 이에 대해 보수진영은 ‘뉴딜의 핵심인 사회 협약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사회 협약’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들의 양보안을 가져오라는 뜻이다. 정부는 이를 충실히 받아들여 7월 중 발표할 예정인 ‘뉴딜 종합판’에 담으려고 할 것이며, 그 내용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의 합의안이 될 공산이 크다. 이 합의안을 기초로 단위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임금삭감과 함께, 탄력근로제를 비롯한 노동개악까지 더욱더 강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농후한 시점이다.


이렇듯 ‘한국판 뉴딜’은 노동자에 대한 경제위기 고통전가를 전제로 할 뿐만 아니라,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기울게 만드는 반노동 정책으로 귀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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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1일 아침, 노사정 합의를 강행하려는 김명환 집행부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이 민주노총에 집결해 항의하고 있다. 



양보가 아닌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고용안정과 전 국민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려면 노동계도 양보해야 한다’는 정부와 자본, 그리고 언론의 압력에 밀려 지난 6월 18일 2차 대표자회의에서 이미 양보안을 제출했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대표자회의 전날 열린 중집 결정사항을 인용하며 “사회 연대를 위해 올해 임금 상승분의 일부를 공동근로복지기금으로 조성해 취약계층의 노동 조건 개선에 쓰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하며 “민주노총은 모든 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의 재원 마련을 위해 고용보험료 인상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은 한술 더 떠서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사업장에서 연대임금 교섭을 진행하고 상생연대기금을 조성하겠다”고 제안한 데 이어 “이렇게 조성된 기금은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를 위해 직접 지원하겠다”며 “코로나19로 고용위기에 몰린 사업장은 해고금지와 총고용유지를 위해 임금인상 자제 노력도 병행하겠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노동 존중’을 거론하며 그나마 ‘소득주도 성장’이라도 주장하던 정권 초창기 정책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고, 오직 노동자에 대한 고통전가를 전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포장해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양보가 취약층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비정규적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시혜적인 연대가 아니라 공동연대투쟁을 통한 총노동전선의 강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 어느 비정규직 대표자의 발언을 다시 돌이켜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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