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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뉴딜? 기본소득? 그들의 대책이 가리는 것들


‘한국형 뉴딜’

뉴딜도 아니지만, 뉴딜이라고 한들


장혜경┃정책위원장



6월 1일, 문재인 정부가 ‘한국형 뉴딜’ 청사진을 발표했다. 골자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추진하며, 그 바탕에 사람 우선 가치와 포용국가 건설을 위한 휴먼 뉴딜(고용안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총 76조 원을 투입하고,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31조 3천억 원, 하반기에만 5조 1천억 원을 써서 총 5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7월 중 구체적인 세부계획을 제출한다고 했지만, 이로써 대통령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국가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는 ‘한국형 뉴딜’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제 ‘한국형 뉴딜’이 과연 ‘휴먼’에 기초한 것인지, 재벌이 지배하는 한국경제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인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대안인지, 새로운 일자리는 제대로 된 일자리인지, 그 베일을 벗겨보자.



‘디지털 뉴딜’ = 재벌을 위한 뉴딜


‘디지털 뉴딜’부터 살펴보자. ‘디지털 뉴딜’의 핵심 내용은 ‘디지털 경제 육성을 위해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의료‧교육 등 분야에서 비대면 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주장한 ‘디지털 경제’는 심각한 반인권‧반노동적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우선, 정부는 ‘디지털 경제 육성’을 명목으로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에 대한 규제완화를 추진한다. 이미 지난 20대 국회에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데이터 3법’이란 기업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가명으로 처리된)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개인정보(인권) 침해법이다. ‘디지털 뉴딜’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금융‧환경‧문화‧교통‧헬스케어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15개 분야의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데이터를 개방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데이터를 사고팔아야 경제가 도약한다’며 “데이터 거래소” 설치 입법화를 주장하고,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정부 데이터청” 설립을 제안하고 있다. 결국 ‘디지털 경제’란 자본의 돈벌이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거래‧활용토록 하는 것으로, 21대 국회는 데이터 규제완화 2탄을 여야합의로 통과시킬 것이다.


‘의료‧교육 등 비대면 산업 육성’은 어떤가? 코로나19를 기회로 정부는 이전부터 추진하려던 원격의료를 ‘비대면 의료’라고 이름만 바꿔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데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라던 비대면 의료의 실상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책’이자, 의료민영화로 연결되는 핵심고리다. 정부는 코로나19로 그 필요성이 절실히 제기된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가 아니라, 보건의료 영역을 민간자본의 새로운 먹거리로 넘겨주려는 것이다. 비대면 교육 산업(이른바 ‘에듀테크’) 육성도,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수업이 시사했듯 교육 불평등을 키우는 한편 공교육을 붕괴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디지털 뉴딜’의 최대 수혜자는 재벌이 될 수밖에 없다. ‘5G 국가망 확산’은 SK 등 통신재벌의 이윤을 늘려줄 것이고, 데이터 정보를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은 삼성의 숙원사업이다. 결국 ‘디지털 뉴딜’은 규제 완화로 가득한 4차 산업혁명 프로젝트에 돈을 대겠다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론 대신 2018년부터 강력 추진한 친재벌 혁신성장론의 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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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청와대]



‘그린 뉴딜’ = 회색 뉴딜


코로나19 바이러스 같은 인수공통 감염병의 창궐과 기후위기는 동전의 양면인 만큼,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넷 제로’)를 실현하고 2030년까지 절반으로 감축하는 것은 절박한 과제다. 더욱이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4%에 불과할 정도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기후악당국가”로 비판받는 실정이어서, 정부의 ‘그린 뉴딜’이 넷 제로를 실현할 수 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그린 뉴딜’은 넷 제로를 실현할 철학도, 의지도 없다. 우선,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를 달성한다는 목표와 실행계획조차 명시되지 않았다. 그저 기존 목표치(2030년까지 2017년 대비 24.4% 감축)를 그대로 유지했을 뿐이다. 탈탄소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매우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하지만, 2년 동안 고작 13조 원의 예산만 투자할 계획이다. 재벌대기업 지원을 위해서는 금융안정기금 135조 원에다 기간산업안정자금 40조 원을 쏟아붓는 것과 비교해 보면, 정부가 탈탄소 에너지 전환에 얼마나 의지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기업에 대한 규제도 없다. 넷 제로를 실현하려면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여나가야 하며, 항공‧조선‧자동차‧석유화학‧시멘트 등 온실가스 과다 배출산업에 대해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기간산업을 지원하면서도 온실가스 감축을 조건으로 걸지 않았다.


오히려 ‘그린 뉴딜’은 재벌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은 한국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집단 중 하나이지만, 온실가스 감축계획도 없이 ‘그린 뉴딜을 위해 정부가 친환경차(수소‧전기차) 등 자동차업계에 막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실정이다. 정부 역시 이미 작년에 현대차의 수소차 전환을 혁신성장의 핵심내용으로 포함시킨 만큼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이 MB의 녹색성장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전환에 대한 목표와 실행계획도 없이 기존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형 그린 뉴딜’은 ‘그린’의 외피를 쓴 경기부양책이자 자본 지원책이며, 청와대 관계자의 표현 그대로 ‘MB 정부가 추진한 녹색성장의 업그레이드 버전’일 뿐이다.



고용안정을 위한 ‘휴먼 뉴딜’이라더니, 

‘휴먼’은 액세서리


이제 ‘휴먼 뉴딜’을 살펴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은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라며 “사람 우선 가치와 포용국가 건설을 위한 고용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디지털 뉴딜로 33만 개 △그린 뉴딜로 15.4만 개 △직업훈련‧고용시장 신규진입‧전환 지원으로 9.2만 개 등, 총 55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2022년까지 △전 국민 대상 고용안전망 구축 △고용보험 사각지대 생활‧고용안정 지원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형 뉴딜’로 만들겠다는 일자리는 생활임금에 기초한 안정적 일자리로 보기 힘들다.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디지털 뉴딜’만 보더라도, 사업 초기에 데이터 입력을 위한 단기 저임금 일자리는 만들어지겠지만, 현재 정부와 자본이 추진하는 ‘디지털 경제’는 일부 최첨단기술 전문직과 저임금 불안정노동으로 노동을 양극화하고 노동의 유연화를 더욱 촉진하며, 노동자성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무권리의 플랫폼 일자리를 양산할 것이다. 고용시장 신규진입과 전환 지원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가령 “청년 입직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 단기채용 기업에 최대 6개월간 80만 원 수준의 인건비를 지원하겠다는데, 이는 저임금‧단기 청년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고용안전망 사업으로 추진한다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는 이름과 실체의 괴리가 크다. 게다가 2022년까지 단계별로 도입하는 것이라,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가 방치되고 있다. 당초 정부가 고용보험 적용을 약속했던 특수고용직(특고)의 경우에도, 230만 전체 특고노동자 가운데 9개 직종 77만 명만이 대상으로 선정됐다. 게다가 지난 20대 국회가 통과시킨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과 마찬가지로, 끝내 노동자성만은 인정하지 않은 채 ‘특례’ 형식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정부는 영세자영업자로의 확대 역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당장 생계위기에 처한 사람들(특고‧프리랜서‧영세자영업자‧무급휴직자)에 대한 대책이라곤 고작 생계안정자금 총 150만 원(3개월간) 지급뿐이다. 고용안전망 구축에 들어가는 재원도 총 5조 원에 불과하니, 결국 일자리 창출도 고용안전망도 기대할 게 없다.



‘한국형 뉴딜’은 뉴딜이 아니다


결국 ‘한국형 뉴딜’은 대통령이 떠들썩하게 얘기했던 것과 달리, 그린 뉴딜이라 할 수 없다. 이름만 ‘그린 뉴딜’일 뿐, 해외에서 제기된 급진적인 그린 뉴딜의 문제의식은 없다. 해외 좌파가 요구한 그린 뉴딜은 기후위기와 경제적 양극화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라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한다는 인식 하에 ‘탄소배출 제로’와 ‘불평등 해소’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형 그린 뉴딜’에는 이 두 가지 모두 없다.


1930년대 미국의 루즈벨트 정부가 대공황에 대응해 추진했던 ‘뉴딜’에도 미치지 못한다. 당시 미국의 뉴딜은 공공투자를 통한 실업 해소 정책과 더불어 노동입법과 사회보장입법, 반독점‧금융개혁입법 등을 포함했다. 뉴딜은 기본적으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구하려는 대책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지만, 공황을 불러온 자본을 일정하게 규제하는 한편 미국에서 최초로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면서 노동조합을 합법화하기도 했다. 최저임금과 최고노동시간 규정을 도입하고, 실업보험 등 사회보장제도도 도입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노조할 권리를 인정하기는커녕,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직장점거 파업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등 반노동 개악안을 결정하는 한편, 특고-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은 개정안에서 빼버렸다. 자본 규제는 고사하고, 자본(특히 재벌) 지원책 강화로 현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 즉 노동권 강화가 빠진 사이비 뉴딜인 것이다.



‘제대로 된 뉴딜’을 넘어, 

반자본주의‧체제 전환으로!


‘한국형 뉴딜’이 사이비 뉴딜이라면, ‘제대로 된 뉴딜’이 노동자민중의 대안일까? 널리 알려진 인식과는 달리, 사실 미국에서도 뉴딜은 실업 해소에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당시 루즈벨트 정부의 가장 큰 정책과제였던 실업 해소에 대해서는 뉴딜정책의 성과를 둘러싸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를테면 1933년에 25%로 정점에 달했던 실업률은 이후 14%까지 떨어졌지만 다시 1937~38년에 불황이 찾아오면서 20%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상승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1941년부터 본격적인 군수공업화에 나서기 전까지 실업 해소는 어려운 과제였다. 이와 같이 경기부양책으로서의 뉴딜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후대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평가에서 알 수 있듯, 1929년 대공황은 뉴딜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야 ‘극복’됐다. 따라서 노동자민중의 대안은 노동권 강화와 복지망 구축 등 이른바 ‘제대로 된 뉴딜’을 넘어서야 한다. 코로나19가 인류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생태위기를 낳고 노동자민중을 생존의 벼랑으로 내모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변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을 위한 경제를 노동자민중을 위한 경제로 바꾸고, 생태파괴적 경제를 생태적 경제로 전환하는 반자본주의적 대안이 요구된다. 변혁당이 당면 요구로 ‘공적 자금 투입기업 국유화와 재벌 이윤(사내유보금) 환수, 민중을 위한 재정확대와 국가책임 일자리 확대, 기업과 경제운영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통제’ 즉 반자본-사회화를 내건 것은, 이렇듯 지금의 민생 위기와 자본주의 극복 전망을 결합하는 투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나원준,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 비판적 검토와 대안”,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주최 좌담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어떤 뉴딜이 필요한가?” 자료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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