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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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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9.30 13:44

도쿄대 69학번,

한국의 20학번


조형우┃학생위원회



일본 도쿄대에는 69학번이 없다고 한다. 당시 전공투(전학공투회의: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 연합조직)의 투쟁으로 학사일정이 마비되다시피 했던 도쿄대는 1969학년도 입시를 치르지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올해 한국의 20학번 대학생을 도쿄대 69학번에 비교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학생회 회의에서는 내년(2021학년도) 새내기 맞이 행사에 20학번도 ‘새내기’로 참가해야 하는지 의논하곤 한다. 분명 존재하지만 사이버상에서만 만날 수 있는 ‘유령 학번’에게, 모든 것은 일반적이지 않고 예외인 듯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고액의 등록금’만큼은 예외가 아니었다.


712만 6천 원. 올해 대학에 입학한 내가 입시 이후로는 가본 적도 없는 학교에 납부한 등록금이다. 학교나 학과에 따라 이보다 더 많은 등록금을 납부한 신입생도 많다. 올 한해 모두가 코로나19로 당혹스러웠겠지만, 그중 가장 황당함을 느낀 집단 중 하나가 대학 신입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내기들은 학교에 가볼 수도 없고, 공식적으로 학우들을 만나볼 수도 없었지만, 등록금은 그대로 내야 했다.


등록금은 왜 내야 하는 걸까? 평소였으면 주변에서 엉뚱하게 생각했을 질문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모두가 던지는 질문이 됐다. 코로나가 초래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아마도 등록금에 집착하는 대학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것 아닐까? 대학 스스로 만들어놓은 등록금의 근거가 사라졌지만, 어떻게든 반환을 해주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지금이야말로 ‘등록금 없는 세상’을 외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학을 ‘학문의 공동체’나 ‘지성의 상아탑’ 같은 고상한 말로 포장하곤 한다. 그러나 어떤 포장을 하든, 자본주의에서 대학교육은 ‘상품’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졸업에 이르기까지 수천만 원의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고가품이다. 또 많은 이들에게는 학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생필품이자 보험이다. 어떤 면에서는 학생들을 강제로 대출받게 만드는 일종의 금융상품이기도 하다.


만일 사회주의 세상이 와서 등록금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사회주의자를 자임하면서도 사회주의 세상을 상상하는 일이 항상 쉽지는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적어도 지금처럼 대학생들이 등록금 부담 때문에 시간을 쪼개 알바를 해야 하거나 대출을 받아야 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점이다. 사회주의에서의 대학은 대출의 상아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하는 일도, 졸업하면서 빚 때문에 마음 한편이 무거울 일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본 적도 없는 학교에 수백만 원의 등록금을 내야 하는 황당한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자본주의의 여러 모순을 드러냈고, 대학 등록금 문제는 그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대학이 같아서는 안 된다. 등록금의 근거가 사라진 지금, 대학생들이 앞장서서 등록금 없는 사회주의 세상을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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