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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9.30 14:15

청년, 

공정성이 대체 뭐길래


<입만 열면 청년>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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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완: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창준: 저는 공주교육대학교에 재학 중인 변혁당 학생 당원 안창준입니다.


성실: 저는 지금은 백수고요. 허성실이라고 합니다.


건수: 저는 변혁당 학생위원회 김건수입니다.



지완: 지난 몇 년간 공정성이 큰 화두입니다. 최근 상황을 보자면 추미애 장관 논란도 있고, 지난 ‘조국 사태’부터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의사 파업까지 사회 갈등이 대두할 때마다 공정성 논란이 일었는데요.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창준: 공정성이 화두가 된 사건들을 보면서 ‘공정성이 뭘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일단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의 계급성, 교육과 계급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죠. 그런데 당시 소위 ‘조국 반대 청년’들은 모든 청년이 아니라 서울 상위권 대학생 중심으로 주목받았어요. 사실 그 사람들은 계급적인 측면에서는 조국 일가와 다를 게 없잖아요. 인국공과 의사 파업 역시 비정규직 당사자나 공공의료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공정성만 화두가 됐죠. ‘공정성’이라는 단어가 키워드로 떠올랐지만, 정작 공론장에서의 발언권은 공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국, 인국공, 의사 파업 모두 계급, 비정규직, 공공의료 등 사회의 문제점을 수면 위로 드러냈지만, 이걸 계기로 관련 논의들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는 아쉬움이 있어요.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점은 사라지고, 공정성이라는 키워드 하나로만 논의가 국한됐죠. 그래서 이제는 공정성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넌덜머리가 나요.


성실: 공정성 문제에 대해 답변을 제대로 못 했던 것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 주제에 대해 답변을 제대로 못 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저는 사범대 출신이어서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교대에서 인원 감축 문제로 동맹휴업했을 때, 사람들이 ‘특권주의’라고 손가락질하는 걸 보며 처음으로 이런 문제가 직접 다가왔던 것 같아요. 사범대는 기간제교사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고요. 그때 공정성 담론이라는 게 많이 논의가 안 됐구나 싶었죠. 최근 의사협회가 만든 선전물을 보면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A)’와 ‘성적이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B)’ 중에 누구에게 진료를 받고 싶으냐는 식으로 얘기하잖아요. 의사들이 정해놓은 답은 A인데, 저는 오히려 B한테 진료받고 싶더라고요. 공부를 잘하지 못했더라도,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곧 생명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론을 얘기하자면, 이게 ‘몇 등까지 뽑을 거냐’는 숫자의 문제잖아요. 100등이랑 110등이랑 전문성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가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웃긴 거죠. 사실 우리 사회가 많이 바뀌어서 차별을 대놓고 하진 않잖아요. 그래서 드는 생각이 ‘교묘해졌구나. 뒷문에서 하는 차별이구나’ 싶어요.


건수: 조국 사태 당시 저는 총학생회 할 때인데, 우연히 학보사에서 ‘조국 사태 안 다루느냐’고 물어봤어요. 준비된 입장도 없던 터라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학보사에서 ‘맞아요. 우리 얘기는 아니잖아요’라고 하더라고요. 공정성 담론 자체가 많이 거론되지만, 실은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이와 할 수 없는 이가 정해져 있는 싸움인 거죠. 그래서 서울대생 안에서 공정하게 경쟁했는지는 가릴 수 있겠지만, 한신대생들 같은 경우에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정치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가 사회적 이슈를 올바르게 해결할 능력을 잃게 한 것 같아요. 어찌 됐든 ‘공정’이라는 단어가 키워드가 됐는데, 그에 대한 집권여당의 대응이 ‘조민은 공정한 경쟁을 했다’고 편을 들어주잖아요. 이건 정치가 아니죠. 정치라면 그 상황에서 사회적인 모순과 교육 격차 등을 해결할 생각을 해야죠. 윤미향 건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결국, 한국 사회 엘리트층의 무능과 정치의 무능이 확인된 것 같아요. 그 속에서 한신대 출신으로 엘리트가 아니고, 좌파로서 정치에서는 비주류인 내가 ‘애초에 공정성 논란과 무슨 상관이고 뭘 해야 하지’ 싶은 거죠.



지완: 공정성 담론의 핵심을 꼽아본다면 어떤 특정 집단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일 텐데요. 이토록 청년들이 자격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창준: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먼저 시험만능주의가 대표하는 경쟁주의가 철저히 내면화됐죠. 지금 청년 세대가 나고 자란 시기가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전면화한 때다 보니, 이런 질서를 일종의 자연법칙처럼 받아들인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가진 ‘자격’이 계급적 하락을 막아준다고 믿는 것 같아요. 일단 계급적 불평등을 상수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진 걸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죠. 그러다 보니 비정규직 정규직화처럼 자격의 벽을 허물려는 시도가 계속되면 ‘내 것도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특히 한국 사회는 경쟁에서 한번 낙오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특성이 있어서, 이런 위기의식이 더 강하게 발현되는 것 같아요.


성실: 쉽게 말하면 ‘잘 살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 ‘잘’이라는 게 이 사회가 가르쳐준 수준인 거고요. 그걸 수치로 말하면 임금일 것이고, 사회적 개념으로 말하면 권위겠죠. 오히려 경쟁심리보다는, 한국 사회가 노동에 대한 관점이 잘못됐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태어나면 누구나 노동을 하는데, 그 노동이라는 가치 실현이 무엇인지는 고민하지 않죠. 딱 임금 그 수준이고, 노동에 대한 가치관은 없는 거죠. 그리고 교육적 차원이 크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중요하잖아요. 다 개천인데 모두 용이 되고 싶으니까요. 학벌과 스펙을 통해서 가능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등수 매기기로 평가에 매달리죠. 그런데 평가라는 게 경영학적 개념에서 보든 교육학적 개념에서 보든, 그렇지 않은 거잖아요. 자기를 발전시키기 위한 거죠. 하지만 현실은 등수를 위한 연습에서 살아남은 사람만이 사회적 권위와 높은 임금을 얻을 수 있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자격을 얘기하는 거죠. 저는 사실 교대나 사범대 문제를 보면서 마음이 더 아팠어요. 오히려 이런 경쟁과 차별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주체들이 자기 문제에서는 저렇게 나오는구나. 과연 저런 사람들이 교실에 가서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건수: 결국 모든 문제는 ‘좋은 삶’이라는 게 명문대 나와서 사는 걸로 정해져 있다는 거죠. 그 외에 삶의 희망이라는 게 우리 사회에 있나요? 외국의 경우를 말하는 이유가 ‘용접공, 일용직이 돈 많이 버는 나라’ 이런 걸 소위 선진국들이 말해서잖아요? 반면 우리는 무조건 명문대 나와야만 행복한 삶이고, 대중매체에서도 그렇게 재생산하죠. 이걸 바꾸지 않으면 뭐가 바뀌겠나 싶어요. 청년들이 공정성을 얘기하는 것도 정말 ‘공정’이 아니라 본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삶의 규칙이어서 따라가는 것이니까요.



지완: ‘자격’은 줄곧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곤 합니다. 구체적인 경험이나 관련해 느낀 점을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창준: 제가 지금 교대에 재학 중이어서 교대생 집단 안에서의 차별을 많이 봐요. 교대생들이 정치‧사회적 관심도가 높은 집단은 아닌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의제에 대해서는 적대적으로 반응해요. ‘우리는 고생하고 시험 통과해서 학교에서 일하는 건데, 왜 저 사람들은 아무 노력도 없이 대접받으려 하느냐’는 식이죠. ‘저 사람들 때문에 교육예산이 갈라져서 교사 처우가 열악하다’는 식으로도 말하고요. 시험 안 치르고 들어온 사람들은 제대로 대우해달라는 말조차 못 하는 걸 당연시하는 상황이에요. 저는 놀랐던 게, 사실 사범대생은 곧 비정규직 교사가 될 확률이 높잖아요. 그런데도 사범대에서도 기간제교사 정규직화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예상 밖의 일이었어요. 작년쯤에 ‘블랙독’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드라마 캐릭터가 기간제교사였어요. 학교 비정규직, 기간제교사에 적대적이던 교대생들이 의외로 이 드라마가 재밌다고 SNS에 올리더라고요. 그런데 주인공이 안쓰럽다고만 말하고,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얘기는 절대 안 해요. 개인적 연민만 있고, 구조적 해결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거죠.


성실: 근로기준법에 보면 차별금지 조항이 있잖아요. 그런데 거기에서 학력에 의한 차별은 정당하게 여겨요. 성별 등에 의한 차별은 불합리해서 금지하지만, 학력에 의한 차별은 ‘합리적’이어서 인정한다는 거죠. 법에서조차 실력이나 능력, 학벌에 대한 차이를 정당하게 여기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 수 있고 우리가 설득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건수: 좌파들은 흔히 사람들이 자본주의로 인한 분노를 차별로 표출하는 것이지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곤 하죠. 근데 저는 요즘 진짜 나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너무한 것 같고요. 창준 동지 말씀처럼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 이입을 하잖아요. 그런데도 결국 차별은 옳다고 말하죠.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한 학습만 받아온 건 아니잖아요. 촛불로 사회를 바꿔본 경험이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왜 우리는 계속 악으로만 빠질까? 이런 생각이 계속 드네요.



지완: 이 시대와 우리 세대를 한마디로 표현해보자면?


창준: 대안이 부재하다고 믿는 세대인 것 같아요.


성실: 잘 살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책에서 배운 세대 같아요. 그런데 책에서 경쟁을 배운 거죠.


건수: 한마디로 나쁜 놈들 전성시대죠. (웃음)



지완: 앞으로 어떤 사회적 움직임, 경험이 필요할까요? 당장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창준: 공정성을 넘는 대안이 존재함을 알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만연한 경쟁 구조를 바꾸지 않고선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그리고 승리의 경험을 많이 쌓아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톨게이트 투쟁처럼요. 경쟁에 목매달지 않아도 인간답게 살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걸 투쟁 승리의 경험을 통해 남겨야 할 것 같아요.


성실: 기본적으로 교육 현장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기간제교사 정규직화가 중요하죠. 학생, 교사 모두에게서 차별을 대놓고 재생산하고 있잖아요. 기간제교사 정규직화 투쟁을 통해 공정 담론에 대한 문제제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건수: 저는 창준 동지랑 조금 다르게, ‘져도 되는 싸움’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져도 되는 싸움을 하고, 지더라도 감동을 주고 뿌듯할 수 있는 투쟁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완: 마지막으로 소감 부탁드립니다.


건수: 저번에 <워커스>와 비슷한 주제로 대담했는데, 좀 더 풍부한 논의를 위해 좀 삐딱하게 해봤어요. (웃음)


창준: 이거 관련해서 다들 쌓아둔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공정성 관련 주제에 각자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성실: Zoom이라서 못한 이야기가 많아서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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