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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의사 파업, ‘공공재’ 논란까지…

이래서 공공의료기관이 

필요합니다


안종호┃강원(내과 전문의)


* 분명 '공공서비스'인데, 이미 민영화됐다고? 우리 생활 곳곳에는 이런 게 널려 있다. '공공부문'은 선험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다. 그 모든 게 상품으로 판매될 수도 있고, 국가와 공동체가 직접 책임지고 공급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결국 힘과 힘의 대결이다. <생활 속 공공 두기>는 일상에 스며든 민영화-사유화를 파헤치고, 공영화로 우리 삶과 이 사회를 재편하자고 주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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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공공의료의 민낯


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졌다. 먼저, 코로나19 감염환자의 대부분을 담당한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줬다. 이와 동시에,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열악한 현실도 드러났다. 감염병 예방에 핵심적인 검역관이나 역학조사관, 치료를 위한 공공인력과 시설 모두 턱없이 부족했다. 공공병상이 없어 많은 환자가 입원하지 못한 채 기다렸고, 사망자의 1/4은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숨졌다.


한국의 전체 병상 수는 OECD 평균의 3배에 달하며, 일본에 이어 세계 최다 수준이다. 하지만 정작 공공병상 비율은 10%, 공공의료기관 비율은 6%에 불과해, OECD 평균(약 70%)의 1/7 수준으로 멕시코에 이어 꼴찌다. 그나마 있는 공공의료기관도 인력, 장비, 시설이 부실해 민간의료기관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고사 직전 상태다.



공공의료 부실의 원인

: 의료민영화‧산업화


이렇게 공공의료가 열악한 원인은 정부의 투자 부족과 더불어 1990년대 이후 보건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인 의료민영화‧산업화 때문이다. 한국의 보건의료는 미국식 자유방임적 의료체계를 이식하면서 치료 중심, 민간 주도의 체계로 구축됐다(이와 달리 예방 중심, 공공 주도 체계도 얼마든 가능하다).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민간의료는 1977년 “직장의료보험”을 시작으로 한 국민건강보험의 도입으로 더욱 급속하게 팽창했지만, 공공의료는 정부의 미미한 투자로 거의 답보 상태에 머물면서 민간의료와의 격차가 급격히 커졌다. 1990년대부터 자본의 의료시장 진출이 본격화하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재편도 거세지면서 민간의료는 팽창을 지속했으나, 공공의료는 거의 몰락하다시피 했다. 2000년대부터 역대 정부가 진행한 의료민영화‧산업화 과정에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국공립 의료기관은 민영화됐고, 많은 지방 거점 공공병원이 없어지거나 민간위탁됐다.



문재인 정부의 대응

: 대체 어딜 봐서 ‘공공의료’ 대책인가?


코로나19 대유행이 언제 끝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공공의료 확충과 인프라 구축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간 ‘K-방역’ 홍보에만 열을 올렸을 뿐, 감염병 대응체계 정비나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7월 14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서 발표한 보건의료영역 정책은 의료산업화 일색이었다. 스마트병원, 원격의료, AI 진단, 디지털 돌봄 등 아직 안전성이나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은 의료기술을 재벌기업과 대형병원이 마음껏 활용하도록 규제를 풀어주면서, 정작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9월 1일 확정된 “2021년 보건복지부 예산안”에 따르면 거점 병원 공공성 강화 예산은 고작 73억 원 증액에 그쳤고, 공공의료기관 확충에는 아예 예산조차 배정하지 않았다. 반면 치료제‧백신 개발과 방역물품 성능 개선, 바이오헬스 등을 위한 연구개발 예산은 7,912억 원이나 배정하는 등, 산업체 요청 사안에 막대한 예산을 배정했다.


이 와중에 지난 7월 23일 정부여당은 당정협의회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공공의료인력 확충과 지역 간 의료불균등 및 부족한 의사 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간 400명씩 의대 정원을 확대해 10년 동안 4,000명의 의사를 증원하고 △10년간의 지역 의무복무제를 시행하며 △50명 정원의 공공의과대학을 설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공의료 인력 확충과 지역 간 의료 뷸균등 해소라는 취지를 달성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방안이다.


우선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그 인원을 ‘현행 정원 50명 이하의 의과대학’에 배정하겠다고 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곳은 대부분 사립대학이다. 결국 사립 의대 정원 확대로 귀결하는 것이다. ‘지역 의무복무제’도 공공병원에 한정한 게 아니라서, 지역 민간병원 위주의 복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마저도 수련기간을 제외하면 의무복무기간 자체가 짧아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 공공의료인력 확충이라기보다, 사립대학과 지역 민간병원 혜택 몰아주기에 가깝다.


또한, 늘리는 정원 가운데 연간 50명을 ‘의과학자로 양성’한다고 하는데, 실제 내용을 보니 기초의학 연구자나 공익적 연구학자가 아니라, 화장품‧의료기기 산업체 의과학자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공공의료인력 확충과는 상극인 의료산업화 인력양성책인 것이다.


‘50명 정원의 공공의대 설립’은 공공의료인력 확충으로는 터무니없이 작은 규모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공공의료기관이나 시설 확충에 대한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근무할 공공의료기관이 없는데, 인력 확충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편, 민간 중심의 한국 의료체계에서 지방의 의료 취약성 문제는 지역 의사 수를 증원한다고 해결할 수 없다. 지방의 의료 수요와 수익 창출이 획기적으로 증대하지 않는 한, 민간의료기관이 들어갈 리 만무하다. 결국 지역 간 의료 불균등 해소 역시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공공의료기관 확충 없이는 불가능하다.



의사 파업의 근본 원인

: 민간 중심 의료공급체계와 

경쟁적 시장질서


정부여당의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에 대해 의사들은 격렬하게 반대하며 파업에 나섰다. 의사단체들은 ‘세계 최고의 의료접근성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의사 수는 절대 부족하지 않으며, 지역 간 심각한 의료 불균등은 저(低)수가 때문이니 수가 인상으로 해결해야지, 의사 증원은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사단체들의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게 아니다. 실제로 의사 수 부족은 OECD 통계1뿐만 아니라 적정의료인력에 관한 많은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의 의료접근성 역시 관련 지표를 보면 결코 높지 않다. 2019년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최종 가구소비 중 본인부담의료비 비중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고, 의료비에 대한 공적 보장 수준도 OECD 평균인 73%에 훨씬 못 미치는 약 59% 정도다. 이 때문에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의료비로 쓰는 “재난적 의료비 지출가구”가 (민간‧영리 중심 의료체계로 악명 높은) 미국보다도 많다. 이는 결국 의료비 부담으로 병원에 가지 못하는 “미충족 의료”를 낳는다. 한국의 미충족 의료 경험률은 15~2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의료접근성이 높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왜 객관적 사실을 호도하면서까지 의사 수 증원에 반대하는가? 그 원인은 바로 90%가 넘는 민간 중심 의료공급체계와 의료의 시장질서가 불러온 과도한 경쟁에 있다. 1990년대 이후 자본의 의료시장 진출과 의료산업화 정책으로 의료기관 사이의 경쟁이 격화했다. 병상 수 경쟁과 고가장비 구입경쟁, 이와 더불어 과잉서비스 경쟁이 일어났다. 대형병원 중심의 이러한 경쟁은 블랙홀처럼 환자를 흡입하면서 중소병원과 동네의원을 위태롭게 만들고, 모든 의료기관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었다.


경쟁은 생존의 위기를 불러온다. 실제로 개업 대비 폐업 비율이 65.2~79.4%로 나타나, 생존의 위기는 현실이 됐다. 2018년 동네의원 경영 상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73%가 ‘작년보다 경영상황이 나빠졌다’고 답했고 82%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등, 동네의원의 위기감은 매우 높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자’가 될 미래의 의사 수 증원은 위기감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결국 이번 의사 파업은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로 나타나고 있지만, 시장적‧경쟁적인 민간 중심 의료공급체계에 그 근원이 있다. 따라서 이 사태의 근본적인 해법은 지금의 의료공급체계를 공공의료체계로 재편해나가는 것이다.



보건의료는 ‘공공재’다


의사들은 파업 와중에 어떤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의사는 공공재’라는 발언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사람을 재화로 표현한 게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은 사실 본질이 아니다. 의사들은 ‘비싼 돈 들여 교육받고, 빛을 내서 개업하고, 경쟁 속에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을 때 정부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공공재 운운하느냐’는 것이다. 이 반발은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 때문에 보건의료의 공공성이 천박한 수준인 지금의 한국 의료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보건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거부를 함축한 것으로서, 보건의료에 대한 의사들의 근원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처럼 감염병이나 재난 대응에 공공의료의 역할은 절대적이며, 감염병 예방처럼 수익 창출이 힘든 예방적 의료를 민간의료에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공공의료가 중요한 이유는 이런 현실적 경험에만 근거한 게 아니다. 현재 한국의 보건의료는 △이윤 추구와 경쟁에 의한 과잉진료‧비급여 진료의 만연 △의료 수요와 수익 차이에 따른 지역 및 의료직역 간 심각한 의료 불균등 △과도한 경쟁이 불러온 의료전달체계의 왜곡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는 민간 중심 보건의료체계 때문이며, 공적인 체계로 재편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좀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건강과 보건의료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가치다. 시장의 기능으로는 이 가치를 충족할 수 없다. 보건의료에서 공공성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때문에 보건의료는 공공재여야 하는 것이다.


한편, 의료‘기관’의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갈 필요도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공공의료의 중요성과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마스크 대란이 ‘공적 마스크’ 공급으로 안정을 찾았듯,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에 대한 공적 통제가 시장시스템보다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현재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위해 세계 각국은 엄청난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한국 역시 지난 7월 3일 관련 추경 예산으로 1,936억 원을 투입하기로 하는 등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적극 나섰다.


문제는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민간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셀트리온, GC녹십자, 제넥신, SK바이오사이언스, 이뮨메드, 엔지켐생명과학, SCM생명과학, 셀리버리 등 수많은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 중심의 이러한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은 공급에서의 불평등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이윤 확보를 위해 고가의 가격을 책정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이윤에 따라 공급 차질을 가져오거나, 생산 자체가 안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윤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는 공적인 의약품 및 의료기기 생산‧공급체계가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처럼 공중 보건에 필요하거나 국민 건강에 필수적인 의약품 및 의료기기는 공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해야 할 것이다.



1 2019년 OECD 보건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2017년 기준 2.3명(한의사 포함)으로, OECD 평균인 3.5명에 비해 약 65.7% 수준이다. 10만 명당 의대 졸업자도 7.6명으로, OECD 평균 13.1명의 58% 정도다. 즉, 지금도 의사 수가 부족하고 갈수록 더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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