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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료?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


의사들의 집단행동, 

한국 사회의 ‘병리적 현상’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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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 의사 파업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지만, ‘공공의료’, ‘공정성’, ‘전교 1등 의사’ 등등 여러 쟁점과 논란은 해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았다. 과연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던 것은 진정 ‘공공의료’를 위한 것이었을까? ‘공정성’을 소환한 의사들의 격렬한 집단행동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운동진영에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이 고민들을 풀어가기 위해,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정책위원장을 <변혁정치>가 만났다.



Q: 이번 의사 파업의 주요 쟁점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이었다. 특히 ‘의사 인원이 부족한지’ 여부를 두고 팩트체크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실태를 말씀해주신다면?


일단 의사 숫자의 문제는 의료 인프라 수준과 관련된다. 건강보험체계가 잘 돼 있고 의료접근성도 좋아지고 지역별로 거점 공공의료기관도 갖추는 등 인프라가 확충되면 그에 맞춰 의사 수도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그런 필수의료 인프라가 확충되지 않으면, 의사가 늘어나도 대개 피부미용 등으로 쏠린다. 이번 사태에선 ‘의사 수’ 중심으로 쟁점이 형성됐지만, 사실 의사 수 자체가 핵심은 아니다.


그렇지만 객관적 측면에서 의사 수를 따져봐야 하는데, OECD 국가 중 한국의 인구 대비 의사 수는 1천 명당 2.3명으로 최하위권이다. OECD 평균이 3.5명 정도인데, 한국이 상당히 적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지역불균형과 종별불균형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은 의료기관의 95% 정도가 민간이다 보니, 인구가 부족하든가 수익성이 없으면 민간의료기관이 들어가질 않아서 분만이나 의료 취약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종별불균형도 마찬가지다. 가령 필수의료 분야인 외상외과 쪽은 인력이 부족한 반면, 피부성형 쪽은 사람이 많다. 수익성이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거다.


한편, 흉부외과 같은 경우 사실 한국이 인구 대비 의사 수는 많은 축에 속한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흉부외과 선생님들이 일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주로 대형병원에서 적은 전문의와 많은 전공의로 돌린다. 흉부외과 특성상 의사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고가 장비를 갖춘 수술실 등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만약 지역에서 한 달에 그런 수술을 한두 번 한다고 하면, 수익성이 없으니 민간에서 할 리가 없다. 결국 수익성이 아니라 필요에 따르는 시스템으로 개편해야 흉부외과 의사들이 일할 수 있다. 이렇듯 하드웨어와 인적 시스템을 함께 갖춰야 하고, 그에 따라 의사 수가 많은지 적은지를 얘기할 수 하는데, 한국은 절대적인 숫자도 적고 인프라 문제도 있다.



Q: 한편, 정부 정책에 대해 공공의료 관점에서의 비판도 제기됐는데.


이번 정부 정책은 사실 전적으로 사립병원자본과 바이오헬스산업자본을 위한 거였다. 7월 23일 정부여당이 “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이라고 이름을 붙여 발표했는데, 슬로건과 실제 내용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


골자는 1년에 의대 정원을 400명씩 늘린다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그 인원이 어떻게 배치되느냐다. 가장 황당했던 건 이 400명 중 50명을 의료기기 회사나 제약회사 등에서 일할 산업체 의사로 배치한다는 거다. 민간 사기업 종사 인력을 국가에서 별도로 양성하는 경우가 세계 어디에 있나. 제가 볼 땐 효과도 없다. 제대로 된 의료기기나 혁신적인 약품을 만들려면 축적된 임상 경험을 활용해야 하는데, 의대 졸업하자마자 이 50명이 가서 대체 무슨 일을 할까. 아마 의사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임상시험이나, 허가를 얻어내는 로비 등에 동원될 거라고 본다. 이것만으로도 기가 막힌 일이다. 이름은 ‘공공의료’인데, 내용은 바이오의료산업계 로비스트 양성인 거다.


지역의사로 300명을 배치한다는 것도 내용을 뜯어보면 문제가 있다. 정부가 발표한 ‘의무복무기간 10년’은 수련기간까지 포함시킨 거다. 인턴‧레지던트‧펠로우까지 7년가량이 수련기간인데, 이 말인즉슨 그 이후에는 3년만 지역에서 일하면 된다는 거다.


이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국가가 장학금을 주고 양성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국공립대 정원을 늘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이 인원을 기존 정원이 40~49명 정도로 적은 의대에 우선 배정하겠다는 거였다. 현재 정원이 40~49명인 의대 중 국립대는 강원대와 제주대밖에 없다. 그런데 아산병원의 울산대 의대, 삼성서울병원의 성균관대 의대, 이런 곳이 다 정원 50명 이하다. 그 외에 길병원, 차병원, 을지병원 등 영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곳들까지. 결국 이 계획은 민간 사립병원, 특히 자본조달능력이 큰 곳을 위한 것이다.


이렇듯 공공의료와는 하등의 관련도 없는 철저한 친자본정책이니, 이 안을 발표한 바로 다음 날 저희가 ‘전면 철회하라’는 입장을 냈다. 그런데 이런 입장이 부각되지 못했다. 의사협회에서 아예 의사 증원 자체를 반대하니, ‘모든 의사가 반대한다’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공공의대 신설도 실제 내용은 황당했다. 과거 서남대가 사학비리 문제로 폐교되면서 의과대학도 같이 없어졌는데, 그 정원이 49명이었다. 딱 그 정원을 받아서 공공의대를 만들겠다는 건데, 정부가 앞서 50명 이하 정원의 사립 의대에는 ‘규모의 경제가 안 된다’고 증원까지 해주면서, 정작 공공의대는 49명으로 만든다는 건 이율배반 아닌가.


또한, 의대 교육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교육병원이다. 대학부속병원을 생각하면 되는데, 임상이 중요하니 실습도 나가고 환자도 봐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병원이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하는데, 공공의대 교육병원으로 국립중앙의료원이나 지방의료원을 이용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현재 지방의료원이 교육병원이 되기엔 너무나 열악하다는 점이다. 공공의료 인프라에는 투자하지 않으면서 그런 기관을 교육병원으로 두는 의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사상누각으로, 진정성이 전혀 없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얘기다. 진정 이 프로그램을 돌리려면 지금 당장 국립중앙의료원부터 현대식 기기와 장비를 갖추고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해서 국가가 운영하는 핵심 의료기관으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지방의료원 역시 300병상 이상으로 전부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능력주의’라는 병리적 현상


Q: 얼마 전, 독일에서는 의대 입학 정원을 50% 늘리겠다는 정책이 발표되고 의료계도 환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단 의료 체계의 차이가 크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의료 공급의 50% 정도를 공공이 담당한다. 민간 공급자도 비영리 종교재단 같은 곳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의료가 공공재라는 인식이 명확하고, 교육 부문도 대부분 무상이다. 의사 양성 자체가 거의 무상으로 이뤄지고, 수련하면 돈을 더 주기도 한다.


독일은 올 3월 코로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중환자실을 1달 만에 1만 2천 개 늘렸다. 그 다음엔 숙련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해서 숙련 간호사 보장 트레이닝을 2달간 돌렸다. 신규 간호사도 포함시키고, 외국에서도 데려오고, 자국에서 쉬는 간호사들도 끌어들여서 인센티브도 주며 확충했다. 벤틸레이터 같은 의료물자도 3월부터 다 비축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환자실 의사가 부족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의사 수도 더 늘리겠다고 한 거다. 앞으로 신종 감염병이 또 발생할 수 있으니, 인프라를 충분히 다 갖춰놓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로 쑥대밭이 될 때 독일의 치명률이 가장 낮았고, 환자가 많아도 의료붕괴가 없었던 거다. 한국은 초기에 대구에서 확산할 때 확진자 벤틸레이터도 못 끼웠다. 신천지가 주로 젊은 사람들이어서 착시효과가 있던 거지, 유럽처럼 노인들이 주로 감염됐다면 한국도 쑥대밭이 됐을 거다. 독일은 하루에 환자 1만 명까지 감당했지만, 한국은 당장 500명씩 발생하면 2주 만에 병상이 포화된다.



Q. 이번 의사 파업에서 또다시 ‘공정성’ 담론이 이슈로 떠올랐다. 의사협회 측이 게시한 홍보물 중 ‘성적 좋은 의사’와 ‘(성적은 좋지 않은) 공공의대 의사’라는 프레임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그 홍보물은 좁게 보면 의사 사회가 가진 능력주의에 대한 신봉을 보여준 거다. 그 ‘능력’이라는 게 시험문제 잘 푸는 능력이었던 거고. 그게 ‘환자를 잘 진료하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이상한 결론이다. 더 넓게 보면, 전공의협의회가 ‘인국공 사태’까지 거론했는데,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본다. ‘시험’이라는 게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표라는 환상이 존재한다. 그런 환상을 부추긴 건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불평등이다.


의사 사회가 더 두드러지는 건, 정말 성적순으로 1등부터 3천 등까지 들어온 곳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 의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우리 사회가 질문해야 한다. 의사가 능력주의 모델의 최상층으로 결정돼 있는 게 문제다. 특히 IMF 이후 한국에서 비정규‧불안정노동이 확산하면서, 의사라는 직업이 ‘내가 학창시절에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의사처럼 사람을 상대하고 치료하고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 그런 표상이 된 것 자체가 대단히 끔찍한 일이다.


교육의 문제도 크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을 비롯해 온통 능력주의로 물들고, ‘너 서울대 가야 돼, 의대 가야 돼’ 라고 주입하고, ‘시험 잘 보는 사람들이 사회의 모든 걸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가르치고. 이번 사태는 교육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난 병리적 증상이다. 그람시가 얘기했듯,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이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인 것이다.


하나 더 짚자면, 이건 박노자 교수의 책 제목이기도 한데, 한국에는 ‘우승열패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우수하면 승리하고 열등하면 패배한다’는 신화인데. 더 큰 문제는, ‘열등한 자들의 패배’를 바란다는 점이다. 이번에 전공의들이 강경하게 나오면서 정부의 백기투항을 요구한 게 거기에 있다고 본다. 상대방의 완전한 굴복과 패배를 원하는 거다. 그런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기득권 엘리트에게 형성돼 있는 것인데, 그냥 웃어넘길 게 아니라 전형적인 반동으로 봐야 한다. 이런 담론과 분위기가 용인되면 상황이 훨씬 심각해질 수 있다.


사회 불평등이 만연한 데다 불안정 노동이 확산하고, 의료 공급도 전적으로 시장과 자본에 맡긴 이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으면 해결방안은 없다. 하지만 그나마 지금부터라도 빨리 할 수 있는 건, 국공립대라도, 정원의 40~50%라도 국가장학생으로 선발하는 것이다. 지역 거점 공공의료기관도 확충하고 공공 병상도 두세 배 더 늘려야 하고. 이런 것들이 선제되지 않으면, 지금의 구조는 개혁될 수 없다.



의사 파업, 이후


Q. 의사협회와 정부가 정책 추진 중단에 합의하면서 이번 의사 파업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우선 그 합의를 보면, 주요 보건의료 정책을 의사협회와의 ‘의정협의체’에서 사실상 추인하게 해 놨다.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건강보험 같은 공적 의료보험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 보건의료 정책을 의료공급자하고만 논의한다는 게 말이 되나. 이 부분만큼은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 정부가 사실 보건의료정책을 바이오헬스 산업화 쪽으로 추진하면서 공공성 있는 건 하나도 못 했는데, 이번 합의는 일말의 공공적 개혁 드라이브조차 이 정부에선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 정부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고, 경사노위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른바 ‘사회적 합의’ 같은 탈계급적 주장들이 통용될 수 없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결국 경영자, 사용자들과만 논의해서 합의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는 의사 파업이 드러낸 ‘단호함’ 정도는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노동계급도 훨씬 더 단호하고 명확하게 이길 때까지 가차 없이 싸울 필요가 있다.


앞으로 중요한 문제는, 이 정부와 독립적인 요구를 내건 투쟁을 만들면서 공공의료 강화 방안을 내는 것이다. 첫째는 무조건 공공의료기관 확충이다. 기관 확충 없는 인력 확충이나 제도 정비는 현재로선 사상누각이다. 둘째, 인력 확충에서도 중요한 게 ‘재배치’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쉬고 있는 간호사분들 숙련 간호사로 공적으로 고용해서 의료인력 확충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의사보다 중요한 게 간호사다. 간호노동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데, 간호사 인력은 중환자진료나 필수의료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 부분에 공적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셋째, 인력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간호사 1명이 환자 30명을 봐도 문제없다는 듯 운영되고 있는데, 가령 ‘간호사 1명당 병상 2개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통제해야 한다. 간호사가 없으면 병상을 운영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본은 간호사 고용을 줄여서 훨씬 많은 노동 착취로 추가 수익을 내는데, 이걸 근절해야 한다. 그게 환자 안전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간호사 인력은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에 직결하는 요소다. 간호인력과 의료지원인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들이 강력해져야 의사권력에 일정하게 통제도 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의료인력의 신분이 보장돼야 한다. 간호사들이 대학병원에서 4~5년 근무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적정한 노동환경에서 계속 고용을 보장하는 게 신분 보장이다. 지금은 간호사 같은 인력을 무슨 땔감처럼 쓰고 부려먹지 않나. 적어도 공공병원에 대해서는 의사, 간호사 할 것 없이 준공무원 지위를 부여하고 적정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의 질과 안전성도 높아진다.


┃인터뷰: 이주용(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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