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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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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SA(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 그룹)]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변혁적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장혜경┃정책위원장



<변혁정치>는 지난 105호(2020년 5월 1일 자)부터 “사회주의×페미니즘” 연재 지면에서 페미니즘의 조류와 주요 이슈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혀 왔다. 이제 연재 마무리를 앞두고 여성해방에 관한 우리의 관점을 총괄 정리하면서, 여성해방운동을 진전시키기 위한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사회구조 변혁 없는 

탈 변혁적 여성운동은

여성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


‘TERF(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즘)’가 대표적으로 보여줬듯, 여성의 범주와 운동의 주체를 생물학적 성(sex)으로만 설정하는 경향은 여성해방운동으로 볼 수 없다.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원인과 그 해결 방향을 둘러싼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여성 문제가 자연적(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와 밀접히 맞물려 있다는 인식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단순히 자연적‧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생물학적) 성‧젠더‧섹슈얼리티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여성 억압과 차별을 불러온 사회구조와 제도를 바꿔나가는 운동을 펼쳐왔다. 또, 생물학적 성차에 기초한 가부장적 규범이 강요하는 규범적 여성성을 거부하고 이를 넘어서고자 시도했다.


따라서 이들의 실천은 여성 억압과 차별을 야기한 이데올로기와 사회구조를 바꾸려 했던 페미니즘의 역사적 성과를 무(無)로 돌리는 것이자, 노동운동‧사회운동(성 소수자운동, 반전운동)‧(제 3세계의 경우)민주화운동과 연대하고 서로 영향을 받으며 발전한 여성운동의 역사를 폄훼하는 것이다. 즉, 생물학적 성차에 기초한 이들의 운동은 여성 억압적 사회구조를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못함으로써, 여성 억압과 차별의 구조를 없애지 못한다.


‘제도적 차원의 차별 폐지-기회균등-의사결정권 참여’를 추구하는 ‘성 주류화 전략’ 역시 마찬가지다. 1995년 베이징 유엔 여성대회가 성 주류화 정책을 ‘글로벌 페미니즘의 핵심 전략’으로 선언한 이후, 성 주류화 전략은 페미니즘의 주류가 됐다. 성 주류화 전략이 적극 추진된 시기는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전면화와 일치하는데, 제도적 차원에서의 차별 폐지는 진전시켰지만, 다수 여성의 빈곤화를 막아내진 못했다. 즉, 법‧제도적 차원에서의 젠더 평등 진전이 사회 불평등 및 여성 내부의 불평등 확대와 동시에 나타났다. 이는 성 주류화 전략이 페미니즘운동을 신자유주의로 편입시키는 과정이었음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제도화와 함께 정부 여성 정책의 ‘하위 파트너’화가 급속히 이뤄졌다. 그 결과 양성평등법-여성폭력처벌법(가정폭력특별법, 성폭력특별법) 등의 제도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대표적 여성 정책인 ‘일-가정 양립정책’에서 드러나듯 여성 임금노동의 저임금‧불안정화와 여성 노동의 이중고(임금노동과 가사노동의 병행)는 심화했다. 소수의 여성은 유리 천장을 깨뜨렸지만, 다수 여성은 빈곤과 억압‧차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극복하는 전략, 즉 경제구조를 변혁하는 전략 없이는 ‘모든’ 여성의 해방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급환원론은 온전한 여성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


“최초의 계급 억압은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과 일치”(엥겔스)한다는 문장이 말해주듯, 우리는 여성 억압의 기원을 계급 발생과 연결한 맑스주의적 분석에 동의한다. 즉, ‘초역사적’ 가부장제 개념이나 ‘남성의 자연적 본성이 여성 억압과 차별을 가져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맑스주의 페미니즘의 한계에도 주목한다. 여성 억압의 기원이 계급 발생과 함께 이뤄졌다 해도, 여성 억압의 구조가 곧바로 계급 구조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 페미니즘에는 계급 문제와 직결되지 않는 다양한 여성 억압의 양상을 포괄하고 설명하는 개념 틀이 없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분석에서 상품생산노동에만 집중함으로써, 상품생산노동에 편입되지 않은 여성의 재생산노동은 비(非)가치화‧비(非)가시화됐다. 그 결과 다양한 여성 억압을 ‘여성의 눈’으로 분석하지 못했고, 여성해방은 계급해방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으로 부차화했다. 여성해방을 추구한다는 사회주의운동(조직) 안에서도 젠더 차별이 유지됐다. 역사적 현실사회주의 국가는 계급 철폐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착취는 없앨 수 있었지만, 계급 모순으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 억압과 차별을 온전히 없앨 수 없었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결합구조를 변혁할 때,

여성해방이 가능하다


우리는 여성 억압과 차별을 포괄하고 설명하는 개념, 즉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체계(구조)’로서 ‘가부장제’라는 개념을 승인한다. 단, 가부장제를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계급의 발생과 함께 등장한 역사적 산물로 바라보며, 계급 지배로 환원되지 않는 독자적 영역이면서도 계급 지배와 밀접히 결합한 것으로 바라본다.


실제 자본주의에서 여성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견고한 결합구조 아래 억압‧착취‧수탈‧차별‧배제당하고 있다. 자본은 여성이 하는 일(출산, 육아, 돌봄, 가사노동 등)을 ‘자연적인 사랑의 행위’로 간주하고 생산적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여성의 무급 노동을 수탈한다. 여성 노동자를 고용할 때도 ‘남성 생계 부양자’ 논리에 근거해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초과착취하고, 경기변동에 따라 산업예비군으로도 활용하는 등 자본 축적 논리에 따라 여성 노동을 편재한다.


또한, 국가는 여성의 출산능력을 경제정책(인구정책)의 부속물로 취급하고, 자본의 논리에 따라 여성의 몸을 통제한다. ‘남성 생계 부양 모델-이성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도로 여성 노동은 비(非)생산화‧비(非)가치화‧부차화되고,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혼인 밖 여성들의 임신‧출산권은 박탈당한다. 성별 권력관계(가부장제)가 불러온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이윤 논리와 결합해 성 착취를 거대 산업으로 성장시키며, 강간 문화를 확산‧강화한다. 즉, 자본은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깨기 위한 노동자 갈라치기(분할 전략) 수준으로만 여성 차별을 활용하는 게 아니다.


이는 온전한 여성해방이 가부장제와의 투쟁‘만’으로도, 자본에 맞선 투쟁‘만’으로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또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략과 투쟁이 필요하다. 여성해방은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여성 노동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끝내야 가능하고, 여성의 재생산권을 온전히 보장하며, 성 위계적 가족관계와 성별 분업, 가부장적 문화와 관습을 깨기 위한 일상 혁명이 병행됐을 때 가능하다.


변혁당은 이를 위해 현 시기의 실천 대안으로 ‘제약과 차별 없는 여성 노동권 보장’, ‘가사‧돌봄 노동에 대한 국가(사회) 책임 하의 사회화와 경제적 가치 인정’, ‘차별 없는 재생산권 보장’, ‘모든 성폭력 근절 및 가해자 중심의 성 인식과 사법체계의 근본적 개혁’, ‘이성애 중심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다양한 가족형태 인정과 가족구성권 보장’, ‘성매매 여성의 비(非)범죄화와 성매매의 근본적 해결 지향’을 제안한 바 있다.



여성해방을 위한 

사회주의운동의 과제


가부장적 자본주의 자체를 넘어서기 위한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 운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다음의 과제가 제기된다.


첫째, 사회주의운동을 이론적-실천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포괄하는 20세기 사회주의운동은 페미니즘, 생태주의 등 새롭게 부상한 사회운동의 도전을 받았다. 20세기 사회주의운동이 노선적‧실천적으로 페미니즘과 생태주의의 문제의식을 포괄하는 운동으로 확장‧재구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21세기 사회주의운동은 이를 극복하고, 페미니즘운동의 이론적-실천적 성과를 수렴해 가부장적 자본주의 변혁이라는 방향 아래 사회주의운동의 노선과 실천을 재구성해야 한다. 우리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과 ‘재생산노동의 가시화‧가치화’라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수용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급진 페미니즘의 주장을 수렴한다. 우리가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을 둘러싼 투쟁에 연대하며, 정치‧경제적 혁명과 일상혁명의 결합을 주장하면서, 운동 사회 안에서부터 성별 권력관계를 바꾸기 위한 실천을 해온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여성 내의 다양한 차이(성 정체성, 인종, 4B(비혼‧비연애‧비출산‧비섹스) 여부)가 억압과 배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이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 차이가 권리로 인정되는 것을 지향한다.


둘째, 우리는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핵심 영역으로 여성 노동 문제에 착목한다. 자본주의 하의 여성 억압과 차별‧폭력은 생산‧재생산 영역에서의 여성 노동에 대한 수탈‧착취‧차별과 밀접히 연관된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사태는 여성 노동이 일차적 희생양임을, 여성의 재생산노동이 사회 재생산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는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성장률을 높이는 방식으로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기획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것이다. 대안 사회를 향한 새판짜기의 핵심에 여성 노동 문제가 있다. 여성 임금노동에 대한 차별 철폐(저임금‧불안정노동 철폐, 가사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등)와 재생산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 인정, 국가(사회) 책임으로 재생산노동을 사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여성 노동 문제의 중요성은 바로 여성운동의 핵심 주체 문제와 연관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하에서 착취와 여성 억압을 동시에 감내하는 사람들은 여성 임금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임금노동과 재생산노동의 이중 부담을 동시에 짊어지거나 짊어질 예비 주체다. 이에 사회주의운동은 여성 노동자들이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맞서 여성해방운동의 핵심주체로 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연대해야 한다.


넷째, 사회주의 페미니즘운동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운동의 독자적 세력화를 통해 여성해방의 목표와 방향을 둘러싼 담론 투쟁과 ‘재생산노동의 가치 인정, 사회화 투쟁’ 같은 독자적 실천을 시도해야 한다. 더불어 여성 억압과 차별에 맞선 다양한 투쟁(운동)과 적극 연대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주도력을 약화시키고, 생물학적 성차에 기반해 배타적 분리주의로 향하는 영영페미니즘 경향이 사회변혁과 함께하는 여성운동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열어갈 수 있다.


온전한 여성해방을 가져올 길은,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광범한 여성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사회주의 () 운동의 결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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