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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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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1.1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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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재현┃사회운동위원회



오랜 기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변혁당 역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함께 모든 사회구성원이 차별과 억압‧배제로부터 자유로운, 평등하고 연대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왜 이 투쟁이 ‘소수자’만의 싸움이 아닌지, 왜 아니어야 하는지, 노동자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미는 무엇인지 질문을 받게 되는데, 이번 글을 계기로 함께 고민을 나눠봤으면 한다.



노동자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


보수 기독교 세력의 반발로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은 ‘소수자’의 싸움으로만 드러나고 있지만, 사실 차별금지법은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위한 법이다. 특히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는 복합적인 차별과 고용 문제에 있어서도 이 법의 제정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헌법 제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며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차별금지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등 개별 법 조항에서도 노동자 고용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상 차별금지를 규율하는 개별 법 조항은 차별금지 사유와 차별금지 대상의 범위가 각기 다르고, ‘차별’의 개념이나 차별금지 조항의 조문형식에 따라 차별을 판단하는 기준도 다르기 때문에 이를 체계적으로 규율하기 어렵다. 가령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지만,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국내 전체 사업장 가운데 60%가 5인 미만인 점을 고려하면, 대다수 현장에서 이러한 차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중 40%는 노동자 고용에 있어서 모집 - 채용 이후 배치와 교육훈련 - 인사평가 - 승진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데, 그에 반해 이렇듯 개별법으로 갈라진 조항들로는 차별 행위에 대한 구제 조치가 어떠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임금과 노동조건에 있어서도 현행 <최저임금법>은 장애인 노동자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인정하고 있다. 헌법은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최저임금법상 ‘정신 또는 신체의 장애가 업무 수행에 직접적으로 현저한 지장을 주는 것이 명백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노동부가 인가만 해주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액수를 지급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차별금지법

: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차별을 드러내는 시작


노동자 각각은 다양한 배경과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 체제에서 노동자는 ‘남성-정규직 중심’이라는 모종의 ‘표준’이 존재하며, 소수자의 정체성은 가려진다. 다양한 가족 상황 때문에 일과 돌봄을 병행해야 하는 노동자도 있고, 특정한 출신 지역‧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비하하는 발언이 오가는 환경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차별을 혼자 견디는 노동자도 있다. 자신의 종교와 문화를 전혀 존중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한국 사회에 동화되기만을 요구받는 이주 노동자도 있다. 여성 노동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적거나 많다는 이유로 남성과 다른 조건이나 고용형태로 일해야 하고, 그러한 차별적인 고용 형태 때문에 또다시 차별당하는 악순환을 견디고 있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성별‧인종‧장애‧가족 상황‧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이미 겪고 있는데도 이 경험이 ‘차별’로 인정되지 않고 ‘각자 알아서 극복해야 할 조건’ 혹은 ‘개인의 무능력’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차별금지 사유들이 현장에서 노동자 개인과 집단에게 각각 또는 복합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도록 하고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누구든 겪을 수 있는 문제임을 인식하게 하며 △차별을 만들어내는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이윤을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를 차별하고 노동자를 통제하기 위해 일터 괴롭힘과 폭력을 저지르는 자본에 맞서, 그들의 행위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차별’의 문제로 규정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싸움을 만들어 내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겪는 수많은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자본에 맞서 싸워왔다.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 역시 노동자들이 겪었던 다양한 차별의 경험을 개인이 ‘극복’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드러내고 차별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싸우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결코 다르지 않다. 노동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싸움에 나선다면, 일터와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이 차별과 억압‧배제가 아닌 자유롭고 평등한 연대적 삶을 누리는 사회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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