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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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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혁정치>는 지난 116호부터 “경로 이탈”이라는 꼭지로 독자 여러분께 여러 책과 영상 작품을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현실의 경로에서 이탈함으로써 현실을 다시 돌아보고, 새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지면이 되었으면 합니다.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


<소개하는 책> 

체공녀 강주룡』 / 『마르타의 일』

- 소설가 박서련, 한겨레출판사, 2018/19.


나위┃기관지위원회



박서련은 1989년생 젊은 작가다. 2015년 등단했지만, 지면을 얻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2018년, 첫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으로 23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해,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강주룡을 언급하기도 했다. 박서련은 “강주룡이라는 인물을 남보다 조금 먼저 알아보았다는 자부심”으로 이 소설을 썼다.



싸우는 여자 이야기 1. 

<체공녀 강주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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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출판]



강주룡은 한국 노동운동사 최초의 고공농성 투쟁으로 기록된 1931년 평양 고무 공장 파업을 이끌었다. 그녀는 을밀대 고공농성 후 경찰서에서도 단식을 이어가다 서른한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체공녀 강주룡>은 주룡의 고공농성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설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그녀의 남편과 독립운동 이야기, 2부는 평양에서의 삶과 투쟁이다. 주룡은 남편과 독립운동을 하러 산에 올라갔는데, 먼저 내려간 남편이 병을 앓아 죽게 된다. 이후 주룡은 살던 곳을 떠나 평양 고무공장에 취직하고 ‘모단 껄’(당시 ‘신여성’을 뜻하는 ‘modern girl’을 가리킴)을 꿈꾸는 여공이 된다.


어느 날, 공장 작업반장이 주룡의 ‘모단 껄’ 그림을 보고 그녀에게 “강주룡이 모단 껄이면 나하구 자유연애 한번 하자”며 희롱한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관리자의 갑질…. 여느 공장 같은 그곳에서 주룡은 노동조합 하자는 사람들을 만난다. 주룡은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뜻을 모으고 함께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내 배운 것이라군 예서 배워준 교육밖에 없는 무지랭이지마는 교육 배워놓으니 알겠습데다. 여직공은 하찮구 모단껄은 귀한 것이 아이라는 것.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 고무공이 모단 껄 꿈을 꾸든 말든, 관리자가 그따우로 날 대해서는 아니 되얐다는 것” (180쪽)


주룡에게 노조는 인간선언이었다. 그녀는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고 인간이 되는 길을 걷고자 했다. 노동조합을 ‘연구’하러 왔다는 조선공산당 활동가에게 “노동조합은 기양 하는 거이지, 연구하는 게 아니지 않습네까” 묻고, 파업 요구안을 채택하는 대회에서 “파업단의 요구에서 예닐곱번째나 되어야 출산휴가 이야기가 나와 내래 이거이 촘 섭섭”하다 말한다. 남성이 대부분인 노동운동가들을 앉혀두고 “여러분이 공산자인가 하는 거이니 부인도 도매금으루 공산 부인인 거이 당연하다 여기시디요” 따져 물으며 “부인에겐 이 배움의 기회를 주지 않고 혼차서 예 와 있는 것은 변하지 않습네다”고 일침을 놓는다.


하지만 투쟁이 길어질수록 동료들은 떠나고, 당당했던 주룡도 벽을 마주한다. 연이은 파업 끝에도 공장은 꿈쩍 않는다. 어느 새벽, 을밀대에 오른 주룡은 대동교 건너 보이는 고무공장을 향해, 세상을 향해 말한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인민 여러분, 내 목숨을 내걸고 외치는 말을 들어주시라요. 마흔아홉 파업단 동지들이, 이천삼백 피양 고무 직공의, 조선의 모든 노동하는 여성의 단결된 뜻으로 호소합네다.” (236쪽)



싸우는 여자 이야기 2. 

<마르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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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출판]



<마르타의 일>은 박서련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2019년 출간됐다. 소설은 주인공 수아가 여동생 경아의 부고를 받으며 시작한다. 동생의 자살 소식을 들은 수아는 “내 동생이 죽었다고? 경아가? 걔가 왜?”라며 이해하지 못한다. 수아는 동생의 시신이 안치된 응급실에서 “경아 자살한 거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수아는 그때부터 틈틈이 동생의 죽음을 좇는다.


유독 언니를 따르던 경아는 ‘인스타 셀럽’이었다. 봉사활동에 열심인 ‘예쁜 여자애’였고, 때문에 질투와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연예지망생인 ‘이준서’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문제였다. 언니 수아의 말대로 동생 경아는 “자기가 얼마나 예쁘고 괜찮은 애인지를 전혀 모르는 듯 상대를 고르는 애”였다. 이준서에게 경아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막 대해도 되는 사람이었고, 결국 동생을 죽게 만들었다.


“경아는 자살했지만 살해당했다. 나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경아를 죽게 만든 인간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에 대해 아주 집요하게 고민했다. 무엇이 필요할까. 모두가 납득할만한 이야기에는.”


동생 경아는 살해당한 것이었지만, 세상은 그것을 살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수아는 동생 경아를 죽인 남자에게 복수해야 했고, ‘모두가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만들고, 실행하고, 성공한다. 동생의 죽음을 되돌릴 수 없지만, 세상에 동생의 죽음을 알리고 살인자를 벌할 수 없었지만, 언니는 그렇게 동생을 지킨다.


“선하고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르고 시샘이 많은 자매가 있다. 그렇다고들 한다.”지만, “경아와 나는 서로를 특별하게 여길 근거였다. 거창할 것 없이 실로 그러했다.”


끔찍한 세계에서 동생을 지킨 언니의 이야기, 소설이라서 가능한 복수였다 하더라도 자매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이야기, <마르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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