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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2.1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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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수치고 등쳐먹고…

막장경영 한국지엠

철수설 고질병 재발


한국지엠분회



강도에게 뺨을 맞았는데, 도리어 피해자를 탓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한국지엠에 관한 언론 보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한국지엠 임금‧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이 6달 가까이 진행되는 가운데(*편집자: 12월 18일 부로 노사 잠정합의안이 조합원투표에서 가결되며 종료됐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노조가 성과급을 더 달라며 떼쓰고 있다’는 기사가 잇따라 나온다. 노조혐오 정서를 십분 활용한 이런 주장은 마치 ‘회사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탐욕스럽게 부당한 요구를 고집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이들은 지난 2018년 벽두부터 벌어진 한국지엠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1인당 연간 1천만 원 이상의 임금삭감을 강요받았으며 그 상태로 3년째 임금동결이 계속됐다는 점에는 침묵한다. 반면,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드러난바 그 기간에 한국지엠 경영진은 1인당 수천만 원의 성과급을 챙겨가고 있었다.


하지만 임금 문제에 대해서는 이번 글에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자본가언론의 악선동과 달리, 현재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는 임금을 얼마 더 올려달라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되고 있는 (그리고 예고된) 공장 및 사업장 폐쇄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사측은 회사를 쪼개고 부수고 팔아먹으려는 데 혈안이 돼 있고, 반대로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일터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게 지금 한국지엠의 모습이다.



4년 만에 국내 공장 

절반을 폐쇄하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것인가?


한국지엠 사측이 내놓은 ‘미래 전망’에 따르면, 당장 1년 반 뒤인 2022년 하반기에 국내 공장 한 곳이 또 문을 닫는다. 원래 한국지엠 국내 공장은 부평 1‧2공장과 군산, 창원 등 4곳이었는데, 지난 2018년에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3개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올해 임단협 교섭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9월, 한국지엠 사측은 부평 2공장에 대해 2022년을 끝으로 더 이상 생산하지 않을 현재 차종을 제외하면 추가 물량 투입은 없을 것이라며, ‘신규 차량의 경쟁력 확보나 부평공장 전체의 효율적인 가동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확정했다’고 통보했다. 군산에 이어 부평 2공장까지, 불과 4년 사이에 국내 공장 4개 중 2곳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한국지엠 사측의 부평 2공장 축소‧폐쇄 시도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2018년 구조조정 이후에도 부평 2공장에 배정된 신차는 없었고, 그나마 부평 1공장에서 생산하던 기존 물량(쉐보레 트랙스)을 이어받은 게 전부였다. 게다가 회사는 종전의 2교대를 1교대로 전환해 축소구조조정을 강요하기도 했다. 당시 많은 노동자들이 폐쇄된 군산공장의 과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한국지엠이 지난 2015년 군산공장에서 마찬가지로 1교대 전환을 밀어붙인 뒤 불과 3년 만에 공장 문을 닫았기 때문이었다. 현재 부평 2공장은 2교대로 회복하긴 했지만, 결국 군산공장과 마찬가지로 공장 폐쇄의 운명을 통보받게 됐다.


당초 부평 2공장은 전기차 생산을 약속받았던 곳이었다. 지난 2013년, 글로벌GM 해외사업본부 사장 팀 리는 노동자들 앞에서 경영설명회를 열고 ‘부평 2공장에서는 현재 LG와 공동 개발 중인 차세대 전기차를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한국지엠이 개발해낸 GM의 전기차 “볼트”는 전세계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계속 판매되고 있지만, 모두 미국에서 만들어서 들여오는 ‘수입차’다.* 부평 2공장에서 생산하겠다던 약속은 스리슬쩍 자취를 감췄다. 이번 임단협에서도 노동자들은 ‘부평 2공장 문 닫겠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전기차 물량을 배정하라’고 요구했지만, 사측은 ‘본사가 결정할 사안이라 자신들이 답할 수 없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 GM 본사는 당장 올 10월에도 “100% 전기차”라는 비전을 내걸고 미국에서 20억 달러(약 2조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배터리 등 전기차 부품 상당수를 한국에서 조달하는데, ‘100% 전기차’를 외친 GM이 정작 한국 공장에 전기차 생산 관련 투자를 거부하는 건 ‘100% 철수’하겠다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다음 판엔 누가 죽을 것인가’


사측이 신차를 배정하겠다는 부평 1공장과 창원공장도 미래가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2015년에 신차(쉐보레 크루즈)를 배정받았던 군산공장은(그 대가로 사측은 앞서 거론한 1교대로의 전환과 더불어 비정규직 1천여 명의 대량해고를 얻어낸 바 있다) 3년 새 빠르게 물량이 축소되면서 결국 폐쇄됐다. 게다가 이 두 공장에 배정되는 신차 역시 내연기관차일뿐더러, 엔진도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것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한지 불분명하다. 심지어 임단협 와중인 지난 11월 글로벌GM 해외사업부문 사장 스티브 키퍼는 한국지엠을 콕 집어 ‘노조의 쟁의행위가 계속되면 더 이상 투자할 수 없다’고 협박하는 한편, 한국지엠 사측 역시 부평 1공장에 대한 신차 투자를 보류하겠다고 통보했다가 슬그머니 다시 철회하는 일도 벌어졌다. ‘강성노조 때문에 GM이 철수하려 한다’는 보도가 언론 지면을 휩쓴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물량을 손에 쥔 채 노동자들을 농락하고 겁박하는 GM의 행태는 아주 일관되며, 그 메시지도 노골적이다. ‘요만한 물량이라도 얻고 싶으면 더 큰 것을 내놓으라’는 것과, ‘네가 살고 싶으면 동료를 벼랑 끝으로 버리라’는 것이다. 가령, 이번 임단협에서 노조 집행부는 ‘부평 2공장 폐쇄 계획을 철회하고 미래 전망을 내놓으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결국 관철하지 못한 채 사측과 잠정합의를 맺었지만 조합원들이 지난 12월 초 한 차례 부결시킨 바 있는데, GM은 앞서 말한 투자 철회 협박으로 ‘부평 2공장을 버리지 않으면 부평 1공장도 미래는 없다’는 분열 조장 메시지를 미리부터 던졌다. 어디 이번뿐인가? 지난 2018년 군산공장을 폐쇄할 때도 GM은 노동자들이 계속 저항하자 ‘군산공장 유지를 계속 고집한다면 아예 회사 전체를 부도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현재 GM의 행보를 보면 생산공장 하나 더 줄이는 수준이 아니라, 한국지엠 전체를 완전히 해체시켜 토막토막 팔아먹고 정리하는 과정이다. 이번 임단협 국면의 핵심 쟁점에는 부평 2공장뿐만 아니라 부품물류센터 폐쇄 문제까지 포함돼 있다. 사측은 지난해 인천 부품물류센터를 전격 폐쇄한 데 이어 올해에는 창원과 제주 소재 사업소까지 문을 닫겠다고 선언하며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부품물류센터는 세종시 한 곳만 남게 된다. 정비사업소에 대한 외주화 우려도 그치지 않는다.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파트는 일찌감치 2018년 군산공장 폐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별도 회사로 만들어 한국지엠에서 떼어냈다. 계속되는 구조조정 속에 엄연히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내쫓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이렇듯 GM에 의한 한국지엠 해체 작업이 착착 진행되는 가운데 사측이 면전에 대고 공장과 물류센터 폐쇄를 통보한 상황에서, 노조 집행부는 ‘합법적’ 파업권을 쥐고 있음에도 폐쇄 철회를 내건 전면 총파업 한번 해보지 못한 채 몇 차례의 부분파업 끝에 결국 조합원들이 1차로 부결시켰던 합의안과 별반 다르지 않은 2차 잠정합의를 맺었다. ‘아직 최종 폐쇄된 것은 아니니 시간이 좀 더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사측이라고 그 시간을 놀고먹으며 흘려보내는 게 아니다. 물량 축소 압박을 높이면서 국내 공장 간 상호 생존경쟁을 더욱 부추길 수도 있고, 아무 구속력도 없는 ‘노사 협의’를 질질 끌면서 부평 2공장과 물류센터 폐쇄를 기정사실로 굳힐 수도 있다. 그 끝에 결국 자포자기한 채 노동자들끼리 분열되어 다음 희생양을 정하는 비극을 반복해선 안 된다. 떨쳐 일어서지 않는 지도부에 호응할 조합원은 없다. 어느 때보다 잠정합의 부결과 전면 총파업이 절실한 지금이다(편집자: 12월 18일 2차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투표 결과 도합 54.1% 찬성으로 가결됐지만, 부평공장에서는 반대표가 더 많이 나오면서 조합원들의 분노를 드러냈다).



나랏돈 퍼주고도 한마디 못하는

문재인 정부의 죄상


한편, 문재인 정부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지난 2018년 군산공장 폐쇄를 용인하면서까지 GM에 공적 자금 8천억 원을 퍼주고도 4년 만에 종합 완성차회사가 갈가리 찢겨나가며 껍데기 공장으로 전락해가는 이 과정을 손 놓고 지켜보기만 했다. 한국지엠 2대 주주로서 이사회에 개입할 수 있고 향후 10년간 사업 지속을 약속받았다던 산업은행은 이번에 GM이 투자 중단과 철회 협박을 내뱉으며 또다시 공장 폐쇄를 통보한 것을 빤히 보고도 어떤 반박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사측에 동조해 노조의 쟁의행위를 탓하는 적반하장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올 4월, 한국지엠 사측은 산업은행을 찾아가 ‘2년 전에 받은 8천억 원을 모두 소진했으니 추가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2018년 문재인 정부와 비공개 합의를 하면서 GM이 ‘마이너스 통장’ 방식으로 한국지엠에 추가 지원하기로 한 28억 달러(약 3조 원)는 한 푼도 투입되지 않았다. 이 점을 보면 GM의 악질적 고질병, 즉 사업 축소와 철수설을 흘리면서 노조는 물론이고 정부까지 압박해 각종 지원을 뜯어내는 폐단이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 돈 들이지 않고 나랏돈을 제 것처럼 받아쓰면서, ‘더 내놓지 않으면 부평 2공장은 물론이고 그 이상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는 노골적인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지엠이 부평 2공장 문을 닫게 될 시점으로 통보한 2022년은 대선과 지방선거가 동시에 열리는 해다. 권력 유지에 여념이 없는 현 집권여당이 자신들의 집권기에 어떻게든 ‘완전 철수’만 지연시키는 선에서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또다시 돈을 퍼줄 게 눈에 선하다.


대체 문재인 정부는 2018년에 GM과 무슨 합의를 했기에 나랏돈 8천억 원을 다 써버리고도 그 돈이 어디에 들어갔는지, 그 대가로 GM이 약속한 건 무엇인지 명명백백히 공개조차 못 한단 말인가? 무슨 약점을 잡혔기에 ‘10년간 철수 없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지 2년 만에 공장 하나를 더 날리고 물류센터까지 폐쇄한다는 통보를 받고서도 말 한마디 못 한단 말인가? 당장 작년에 한국지엠이 GM 본사에 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지급한 3,500억 원만 그대로 남아 있었어도 지난해 흑자 전환이 가능했는데, GM 본사가 한국지엠과의 불투명한 거래로 막대한 자금을 빼가는 것을 국세청도 적발한 상황에서 왜 입 한번 뻥긋하지 못하고 있는가? 비정규직 수백 명이 잘려나갈 동안 불법파견 범죄자 한국지엠 카허 카젬 사장을 구속처벌조차 하지 못하면서 대체 무슨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건가? GM이 악질적인 철수설 협박으로 노동자들을 등쳐먹는 것은 분명히 단죄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GM 자본과 결탁해 나랏돈으로 그들의 배를 채워주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죄상 역시 낱낱이 밝히고 규탄해야 한다.



* 오민규, “한국서 생산한다던 GM 전기차 볼트, 왜 미국으로?”, <프레시안> 2018년 3월 12일 자 기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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