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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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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 된 과학

 

 

(학술) 자본

: 과학연구의 정치경제학적 비판 1

 

 

위험한 독서회

 

 

* 이 기사는 <변혁정치> 이번 120호와 다음 121호에 걸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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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자연력의 정복, 기계, 공업과 농업에의 화학의 이용, 증기선의 항해, 철도, 전신, 수많은 대륙 개척, 하천의 운하화, 땅속에서 솟아나는 것 같은 수많은 주민들― 이 정도의 생산력이 사회적 노동의 태내에서 잠자고 있으리라는 것을 지금까지 어떤 세기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1

 

맑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말했듯, 18세기 말의 산업혁명부터 지금을 관통하는 시대정신, 체제의 운용원리를 설명하자면 ‘자본’만큼이나 ‘(자연)과학’이라는 주제를 빼놓을 수 없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이 둘은 각자 ‘이윤’과 ‘진리’라는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후자(과학)의 발견을 전자(자본)가 더 생산적인 공정으로 지원하거나, 전자가 마주친 문제에 후자가 기술적 해결책을 내놓는 등의 공생을 두 세기 넘게 지속했다. 그에 따라 현재 인류는 맑스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생산성을 손에 넣었으며, 그 발전 속도는 현재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모든 주관적 편향을 가능한 배제하며 객관적 사실관계와 실험적 증명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했던) 과학 고유의 방법론은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좌파에서도 많은 추종을 이끌었다. 맑스와 엥겔스부터 “공상적 사회주의”와 대비시킨 “과학적” 사회주의를 제창한 것도, (맥락이 완전히 다를지언정) ‘과학’이라는 용어 그 자체의 ‘권위’를 대변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과학과 자본의 밀접한 관계를 상기하면, 정말로 과학이 ‘탈계급적’ 혹은 ‘탈자본적’인 생산과정과 가치를 지녔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과연 과학(연구)의 생산과정은 얼마나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가까우며, 자본의 배타적 이해관계를 얼마나 중점적으로 대변하는가?

 

 

 

연구의 생산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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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연구 분야에서는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에서 모종의 노동착취가 성립한다. 정부 부처나 사기업 등 여러 지원 주체를 제외하면, 연구 현장은 학생연구원(석사, 박사 후보생), 박사 후 연구원(기술자, 책임연구원), 연구책임자(교수, 수석연구원)의 직급으로 나뉘며, 연구책임자가 박사 후 연구원과 학생연구원을 ‘고용’해 그들의 노동으로 연구를 생산하는 형태를 띤다.

 

이 가운데 학생연구원은 가령 의대생처럼 실습으로 장래 직업을 준비하는 과정이며, 이들과 매우 비슷하게 장시간 노동(62%가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과 최저임금 이하의 보수(91%가 등록금을 제외하고도 월 175만 원 이하를 받는다), 건강보험 미보장(73%), 연구 외 업무수행, 그 밖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그에 상응하는 정서적 불안, 피착취자로서의 소외를 겪는다.2

 

학위를 취득한 후 이들은 박사 후 연구원이 되어 1~2년 단기계약직으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생산활동을 계속할 기회가 생기며, 교수로 진급할 후보인력이 된다. 물론 이 모든 고용불안과 후술할 경쟁을 견딘다 해도, (영국 고등교육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과학계열 대학원생 대다수(79.5%)는 결국 학계 밖에서 직업을 찾게 되며 학생연구원 가운데 대학 내 교수로 남는 비율은 극소수다(0.45%).3 고로 극소수의 착취자와 절대다수 피착취자 사이의 비율은 항상 유지되며, 전자는 후자를 지도 대상이 아닌 “저비용의 노동력으로 보게 된다.”4 그렇다면 연구책임자는 연구원을 착취한 생산물에서 어떻게 이윤을 얻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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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생산회로에서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으로 생산한 상품을 시장에 판매해 화폐로 교환한 뒤, 잉여가치(이윤)를 재투입해 노동자를 더 고용하거나 원자재, 설비를 더 구매한다. 이와 비슷하게 과학 연구도 피착취자의 노동과 생산수단을 투입해서 ‘지식’을 생산하기에 마찬가지로 교환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과학이 생산과정에 재투자할 화폐를 더 얻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정부나 기업 같은 공적‧사적 주체에게 지원받는 것이다. 한국(및 미국)에서 이는 주로 ‘과제’라는 특수한 형태로 이뤄지는데, 건설업체의 사업 수주와 유사하게 정부나 사기업 의뢰자가 원하는 주제 또는 목표물을 만들어낸다는 조건으로 여러 후보가 사업 ‘입찰’을 받기 위해 경쟁한다.

 

중요한 차이는 건설사의 목표가 ‘기간 내에 주어진 금액으로 건물을 완성하는 것’이라면, 연구단이나 연구실의 목표는 ‘일정 개수 특허의 출원이나 논문 출판 등 추상적 발견의 문서화’라는 점이다. 물론 해당 결과물의 효용성과는 별개로, 과제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의 질이 보다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다.5 여기에서 논문과 특허는 지금까지 추상적이기만 하던 과학의 생산회로에서 비로소 생산물의 역할을 하는, 화폐가치와의 물질적인 매개체다. 이렇게 연구현장의 노동착취와 자본의 연결망이 완성되는데, 착취의 존재 자체가 생산양식의 자본주의성을 반드시 증명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생산물이 상품으로서 이윤을 창출하는지, 어떤 형태로 교환이 이뤄지는지 ‘유통회로’ 전반을 살펴봐야 한다. 그럼 개별 생산물(논문)의 상품적 가치는 과연 누가, 어떻게 책정하는가?

 

 

 

생산물의 유통과정과

연구의 시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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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회학자 리하르트 뮌크는 연구의 생산과 유통에서 세 가지 영역을 규정했다: ① (앞서 살펴봤듯) 연구를 생산하는 착취자‧피착취자를 포괄하는 개념인 연구생산자 ② 연구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며 생산자의 ‘이윤’이자 초기 자본을 지원하는 조달자 ③ 생산물의 가치 측정을 맡은 평가자.6 이 가운데 세 번째의 존재는 연구생산물과 생산자의 상대적 가격을 책정할 필요성을 충족하며, 여러 학술지 출판사와 연구협회를 포함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단연 학술지인데, 특정 분야나 과학 전반의 새로운 논문을 동료 과학자 심사를 거쳐 게재해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매달 수천 편의 다른 글과의 경쟁을 거쳐 출판한 논문은 그 결과가 ‘유수 연구자들의 인정을 받았으며 신뢰성과 자료의 질이 그만큼 높다’는, 마치 상품의 상표와 같은 보증을 받는다. 물론 출판한 논문의 결과에 따라 연구자와 학술지에 부여된 물신적 특성도 매번 변하는데, 이를 마치 상품의 가격처럼 표시하는 수치를 ‘피인용 지수’라고 한다. 이는 해당 논문이 얼마나 타 연구자에게 재인용되는지 평가함으로써 다분히 시장주의적으로 생산물 자체와 생산물을 가진 개별 상표(학술지), 그리고 해당 생산자(과학자)의 수준까지 대변한다.7

 

즉, 현대 연구생산자와 생산물의 상품적 가치(피인용 지수)는 시장에서 결정되며, 통상적인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이는 조달자로부터 생산자가 추후 받을 수 있는 지원(‘이윤’)까지 직접 조절한다. 상품을 더 만들고자 화폐자본을 얻는 게 아니라 후자의 축적을 위해 상품을 생산하는 자본가처럼, 연구자는 지식을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의 성과물이 받는 평가를 모으기 위한 행위자로 변모한다. 학문 활동에서 자원 조달과 결과물 평가가 사회적 필요가 아닌 시장원리에 의지하고, 연구생산자가 “(학술지) 게재 아니면 죽음”이라고 단적으로 표현하는 부르주아적(시장지향적) 행동양식을 강요받는 이 현상을 사회학자들은 “학문 자본주의”라고 부른다(Richard Munch, 앞의 글). 그렇다면 이 ‘시장’ 내의 생산자, 평가자, 조달자 셋 사이에서 힘의 관계는 과연 동등한가?

 

 

 

연구시장에서

평가자와 독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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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주체의 영향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를 들자면, 2013년 1년간 전세계에서 출판한 모든 논문의 50%가 5대 학술지 출판사에서 나왔다.8 정보과학자 뱅상 라리비에르는 이를 ‘거대 출판 주체의 독과점’이라고 표현하며, 그 지분이 1973년부터 꾸준히 늘었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자본의 집적 원리가 이들 평가 주체에게 이토록 잘 적용되는 이유는, 이들이 철저히 사적 자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구자의 가격을 매기는 피인용 지수도 출판자본이 자체적으로 계산한다.9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5대 출판사 중 하나인 <엘스비어>의 2010년 전세계 총 수익은 190억 파운드(약 28조 원)였는데, 같은 시기 아마존이나 애플보다도 높은 수익률인 36%를 기록했다.10

 

이렇듯 막대한 이윤은 매년‧매월 구독료를 지불하는 (공적 조달자의 지원을 받는) 연구소와 고등교육기관, 그리고 출판 기회를 얻기 위해 심사 수수료를 지불하는 전세계 연구생산자에게서 나온다. 심지어 이 출판사들은 논문 심사 업무도 같은 분야 연구자들에게 대가 지급 없이 외주로 떠넘기는지라, 도이체방크는 2005년 보고서에서 이를 “이상한 삼중 지불” 제도라고 표현하며 “국가에서 연구에 자금을 조달하고, 연구의 질을 확인하는 대부분 사람들의 급료를 내고, 그다음에는 출판된 상품[학술지]의 대부분을 구입한다"고 언급했다(앞의 <가디언> 기사에서 재인용). 더불어 이들 학술지 구독료는 일반적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폭등하고 있는데, 대학과 연구기관의 예산 감축까지 겹쳐 구독료를 충당할 수 없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막대한 등록금과 후원금을 받는 하버드 대학교조차 지난 2012년 구독료를 감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11

 

결국 평가자는 학술 시장의 자원 배분과 (과제 경쟁의 장이 된) 학술 공동체에서의 중개인 및 경매인 역할을 맡으며, 이로써 이윤을 수취하는 동시에 학문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을 통제할 권력을 누린다. 이들은 연구자가 생산한 상품을 평가‧통제하며 수수료를 걷고, 이를 학술지 형태로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 연구 성과를 재생산해야 하는 연구생산자 또는 기업이나 언론 등 과학 소비자에게 공급하면서 구독료나 접근 비용을 청구한다. 이런 양상은 거래공간을 제공하는 대가로 소비 주체들에게 비용을 청구하며 이윤을 얻는 플랫폼 자본의 선구적 형태와도 유사하다. 요하자면, 출판자본은 전세계 연구에 조달하는 공적 지원을 사유화하는 주체인 동시에, 모든 연구생산자 사이의 거래를 유통‧중개하며 그들의 상대적 지위를 결정하는 시장 그 자체라는, 매우 특이한 행위자다.

- 다음 호에 계속

 

 

 

1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김기연 옮김), 『공산당 선언』, 새날, 2005, 23쪽.

 

 

2 SciON(Science Opinion Network), 「이공계 대학원생 처우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외, 2019, 7~17쪽.

 

 

3 The Royal Society, 『The Scientific Century: securing our future prosperity』, 2010년 3월.

 

 

4 Mark Baldry, “On the Exploitation of PhD Students”, Medium, 2019년 12월 2일.

 

 

5 임홍래, 「정부출연연구기관 재정지원 방식이 연구성과에 미친 영향」, 『한국행정학보』 54(2), 2020, 285~307쪽.

 

 

6 Richard Munch, 「Academic Capitalism」, Oxford Research Encyclopedia of Politics, 2020년 4월.

 

 

7 변지민, “피인용 지수(IF)로 연구자 평가, 불공정”, 동아사이언스, 2016년 7월 11일.

 

 

8 Vincent Larivière 외, 「The oligopoly of academic publishers in the digital era」, PloS one 10(6), 2015.

 

 

9 Clarivate, <Journal Citation Reports>, 2021.

 

 

10 Stephen Buranyi, “Is the staggeringly profitable business of scientific publishing bad for science?”, Guardian, 2017년 6월 27일.

 

 

 

 

 

11 Ian Sample, “Harvard University says it can't afford journal publishers' prices”, Guardian, 2012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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