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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자본가들의 경영실패, 국유화로 답하자

 

 

국유기업 한진중공업

투기자본에 매각하나

 

일자리 지키는

온전한 국유화가 대안이다

 

 

박성호┃부산시당 합동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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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금속노동자(변백선)]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앞,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귓전으로 파고드는 외침이 있다. “김진숙 해고노동자 부당 해고 철회하라!” “35년의 세월, 내가 일했던 현장으로 돌아가 정년퇴직을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한진중공업 투기자본 매각 반대와 노동자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외침이다.

 

이러한 외침을 쟁취하기 위해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지부장과 한진중공업지회 지회장이 27일간 단식투쟁을 전개하다 병원으로 실려 갔고, 희망버스 연대 동지들의 청와대 앞 노상 단식투쟁과 오체투지, 3천배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김진숙 동지는 암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이를 거부하고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 청와대까지 ‘희망 뚜벅이’ 걸음을 시작했다. 영화 15도가 넘는 날씨에도 많은 연대 동지들이 ‘희망 뚜벅이’에 걸음을 보태고 있다.

 

2년 전인 2019년, 대규모 채무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한진중공업 기존 경영진을 사퇴시키고 최대주주가 된 산업은행(한진중공업 주채권은행)은 한진중공업을 다시 민간 자본에 매각하는 절차를 본격적으로 밟고 있다. 얼마 전인 지난 12월 말에는 매각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까지 마쳤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회사 매각으로 또다시 구조조정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해마다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는 한진중공업,

대체 어떤 기업이기에?

 

한진중공업은 1937년 “조선중공업 주식회사”로 설립됐다. 1945년 해방 후에는 미군정 운수부에서 관리하다가, 1948년 대한민국 교통부로 이관돼 “부산 조선창”(곧이어 “대한조선공사”)이라는 이름의 국영기업으로 전환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조선 1번지”라는 푯말이 지금도 영도조선소 현장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친미 정권과 군사독재 정권은 알짜배기 국가기업들을 민간 자본에 헐값으로 넘겨줬고, 대한조선공사 역시 이때 민간 자본이 넘겨받아 민영화됐다. 당시 선배 노동자들은 도크를 점거하면서까지 민영화 반대투쟁을 전개했으나, 결국 막지 못했다. 그 대한조선공사가 1989년 경영부실로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자,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이 아주 헐값에 인수해 “한진중공업”으로 바꾼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인수 이후 10년 연속으로 흑자를 냈고, 그 결과 ‘부산 제1의 향토기업’이라는 지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한진중공업 경영권에 변화가 생겼다. 그룹 회장 조중훈이 사망하자, 재벌 2세 조남호가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조남호 회장은 필리핀 수빅만에 조선소를 짓겠다며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벌어들인 돈을 2조 원 넘게 퍼부었다. 여기에다 2009년부터 본격화한 조선산업 침체는 한진중공업 유동성 위기를 야기했다. 결국, 조남호 회장은 지난 2019년 경영권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넘겨주게 됐다(<변혁정치> 84호(2019년 4월 15일) 기사 “50년 만에 국유기업으로 돌아온 한진중공업” 참조).

 

한진중공업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019년 3월 주주총회를 열어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과 이윤희 사장을 해임하고, 전 STX조선해양 사장이었던 이병모를 사장에 임명했다. 이병모 사장은 산업은행이 추구하는 방식으로 한진중공업을 경영해, 오직 투자한 자금을 빠른 시일 내에 회수하는 데만 골몰했다. 이와 더불어 산업은행은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 밑에 있던 핵심 노무관리 라인을 그대로 살려둠으로써 노동자들의 저항을 무력화하고 자신의 목적을 손쉽게 달성하고자 했다. 조남호 회장 시절 적폐 경영진은 금속노조를 깨기 위해 노조파괴 전문집단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어용 기업노조를 건설해 놓았고, 산업은행은 그들을 앞세워 금속노조를 더욱 무너뜨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노무관리자들은 기업노조를 동원해 회사 매각에 동조하게 하는 한편, 김진숙 해고노동자 복직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내도록 하고 있다.

 

 

 

조선업의 호황과 위기,

총수일가의 경영 실패

 

지난 수년간 한진중공업이 겪고 있는 위기, 그리고 현재 매각으로까지 내몰린 상황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하려면 근 20년 사이 호황과 구조조정 사이를 널뛴 조선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2000년 초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전세계 조선산업은 초유의 호황을 맞이했다. 세계 1위라는 한국 조선산업도 이때 엄청난 흑자를 올렸다. 당시 전세계 선박 발주량 중 50% 이상을 한국 조선소들이 발주받았다. 조선업 경기가 활황을 띠자 한국의 자본은 너나 할 것 없이 조선산업에 뛰어들었다. 거제‧고성‧진해‧부산‧목포 등 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에 소규모 선박 블록 제작공장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고,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도 급증했다. 조선소 주변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다. 자본의 탐욕은 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조선산업으로 한몫 잡겠다고 달려든 자본의 탐욕은 서서히 자기 무덤을 파고 있었다. 무엇보다 과다경쟁구조가 화를 불러왔다. 사내하청 사업주들은 단가를 낮추지 않으면 일감을 확보할 수 없었다. 사업주는 저가 수주로 배를 만들어도 남는 것이 없게 됐고,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산재 사고 또한 80% 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2014년부터 선박 수주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조선산업은 침체의 길에 접어들었다. 앞다퉈 조선산업에 뛰어들었던 기업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도가 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조선소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고, 지역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엄청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중소형 조선소는 공적 자금이 투입되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중소형 조선소만이 아니라, 국내 조선소 “빅 3” 중 하나였던 대우조선해양까지 존립의 위기를 맞았다.

 

한진중공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업 호황 시기를 맞아 회사는 2004년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해놓고, 노동조합에는 ‘조선소가 아닌 선박 블록공장을 건설한다’며 설명회를 가졌다. 물론,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블록공장이 아니라 완성형 조선소 건립 계획이었다. 필리핀 수빅조선소 건설에 조남호 회장은 2조 원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조선업이 호황일 때 영도조선소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벌어들인 돈이었다. 2008년 수빅조선소 첫 선박 명명식 자리에서 조남호 회장은 “기존 통념을 깨고 새롭고 창조적인 큰 사고로 판단해야 한다. 수빅조선소는 한진중공업이 추구하는 글로벌 경영의 첫 산물이자 결실이다”라며 자축의 잔을 들었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 재벌 2세 자본가는 빈 깡통이 되어 돌아왔다.

 

 

 

투기자본에 매각 말고

온전한 국유화를!

 

결국 한진중공업(그리고 조선산업 전반)의 위기는 자본의 탐욕과 무능이 초래한 구조적 문제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한진중공업 최대주주인 지금, 즉 한진중공업이 사실상 국유기업으로 존재하는 지금, 왜 다시 민간 자본에 회사를 넘겨줘야 한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온전한 공공 국영기업으로 바로잡지 못한다면, ‘손실의 사회화-이윤의 사유화’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앞서 조선산업의 호황과 위기에 관해 살펴봤듯, 자본은 ‘돈만 된다면’ 뒷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조건 뛰어든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현재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등은 국가의 지원 없이는 운영조차 될 수 없다. 그러나 가령 대우조선해양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거의 20년 가까이 운영했음에도, 국가는 ‘국가기업’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현장 노동자들은 ‘회사가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회사 임원들은 국가에서 주는 자원으로 사리사욕부터 챙기고자 돈을 빼돌린다. 그간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의 비리가 속출했던 것이 이를 보여준다.

 

한진중공업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은 오로지 자신이 투여한 자본금을 빨리 회수하기 위해 펀드 투기자본에 매각의 길을 열어놓고, 어용노조를 앞세워 ‘현장 노동자들이 매각을 원하고 있다’는 식으로 국민을 속인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투기자본에 회사를 매각하면 자신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펀드 투기자본이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 개발로 사업을 전환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회사 임원들 역시 언제 버려질지 모르기에 어떻게든 제 몫을 챙겨서 떠나려고 한다.

 

이렇게 불 보듯 빤한 앞날이 예상되는데도 국가는 손을 놓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한진중공업을 민간 자본에 양도했다면, 그렇게 잘못 양도된 기업을 다시 국가가 환수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엄연한 국유기업 한진중공업을 투기자본에 매각할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총고용을 보장하는 온전한 국유화가 절실하다.

 

나아가 한진중공업-STX조선해양-대선조선 등 위기에 처한 중형 조선소를 하나로 묶어 국유화하도록 투쟁해야 한다. 국책은행이 관리하는 조선소에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민간 자본의 손아귀에 넘기는 게 아니라 그 공적 목적에 맞게 사용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진정 단 하나의 일자리라도 지키고자 한다면, 국유화야말로 가장 합당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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