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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에 맞선 싸움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파업에

지지와 연대를!

 

 

강후┃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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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세계(정순영)]

 

 

지난 연말, 2년에 한 번씩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을 받으려다 기회를 놓쳤다. 동네 병원 이곳저곳에 연락해봤지만, ‘올해 검진 예약자가 다 찼다’는 답만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검진기간을 한시적으로 6개월 연장하니, 1월 이후 공단에 직접 연락하라’는 얘기를 듣게 됐다. 공단 홈페이지에 가보니 고객센터 연락처가 나와 있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필자의 문의에 전화기 건너편 노동자는 일단 주소와 가족관계 등 본인확인을 위해 몇 가지 개인정보사항을 질문했고, 그에 맞게 응답하자 바로 검진기간 연장을 처리해줬다.

 

물론 전화 연결은 쉽지 않았다. 대기자가 워낙 많아 한동안 기다려도 닿지 않았고, 뜨문뜨문 연락을 시도한 지 3일 정도 만에 통화에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에 필자의 부모님은 정년퇴직 이후 건강보험 부양자 변경 문제로 공단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 이외에도 5천만 명이 넘는 건강보험 가입자들의 문의사항이 한둘이겠는가. 사실상 전국민의 질문과 상담, 심지어 항의에도 응대해야 하는 고객센터 노동자는 1,600명. 산술적으로만 보면 노동자 1명이 3만 명 이상의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 한 사람이 한 번만 전화하란 법도 없다. 게다가 코로나 확산 때문에 공단에 직접 방문하지 말고 온라인이나 전화로 문의하라고 하니, 고객센터 연락 대기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뜬금없지만, 만약 국민건강보험을 민영화한다면 찬성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병원비 못 내서 치료도 받지 못하는 미국 꼴 난다’며 반대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그 건강보험공단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 곧 전국민을 대상으로 안내하고 보험 관련 주요 요청사항을 처리하는 고객센터는 ‘외주화’라는 이름으로 민영화되어 있다. 앞서 지나가듯 얘기했지만, 상담 시 본인확인 절차를 비롯한 업무 처리를 위해 모든 가입자의 신상정보까지 관리하는 이 영역을 민간업체에 내맡긴 것이다.

 

 

 

‘민간기업 정규직’이라고?

 

지난 2월 1일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의 요구는 ‘고객센터를 공단이 직영으로 운영하고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라’는 것이다. 그러자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또다시 ‘공정성 위배’ 운운하며 이 노동자들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고객센터 노동자는 민간기업 정규직’이라느니, ‘민간기업이 애써 키운 자산을 왜 국가로 빼가느냐’느니 등등의 주장과 함께.

 

일단 고객센터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하는 민간업체는 인력파견업체에 불과하다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겠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형식적으로 업체는 바뀌지만, 실제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바뀌지 않고 계속 일한다. 공공운수노조가 언론보도에 반박자료로 내놓은 문서에서 이 점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일례로 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지부 김숙영 지부장은 2009년부터 2021년까지 13년째 경인센터에서 근무 중인데 업체는 4번 바뀌었다. 김숙영 지부장은 도대체 경인센터를 거쳐간 4개 업체 중 어떤 업체의 정규직이었나?” 한편 김숙영 지부장은 지난 10월 <변혁정치> 좌담에서 “도급업체는 건강보험이 어떤 체계인지도 모른다”고 밝힌 바 있다. ‘민간업체’는 용역업체일 뿐, 실제 업무에 대한 지시와 통제는 원청인 공단의 관리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게다가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전국민의 개인 신상정보를 민간기업에 넘겨주고 관리시킨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더욱 시급히 공영화해야 한다.

 

또한, 고객센터 업무는 원래 공단이 직접 맡고 있다가 2006년부터 민간위탁으로 넘겨졌다.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옥철호 정책실장이 <질라라비>에 기고한 바에 따르면 “최초 건강보험의 전화상담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들이 ‘전화방’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순번을 정해서 돌아가며 하는 민원업무”였다. 즉, 애당초 공단 자체 업무였던 것을 분할해 민영화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지난해 <변혁정치> 좌담에서 김숙영 지부장은 이렇게 토로했다: “건강보험공단 정규직 직원은 각자 자기 업무가 있지만, 저희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그 전부를 안내해야 한다. 1,600명(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이 15,000명(건강보험공단 정규직)의 일을 같이하는 것이고, 그걸 5천만 명(건강보험 가입자)에게 설명한다. 하지만 원청인 공단은 그 중요성을 무시한다. 만약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면, 고객센터 없애고 예전처럼 자신들끼리 전화 돌리면서 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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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공공운수노조]

 

 

 

극한으로 몰린 노동자들,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코로나 사태로 질병관리본부 1339콜까지 받아야 했다. 과거 메르스 때도 마찬가지였다. 업무량은 폭증하는데, 이들은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다. 전화응대 시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질책받고, 노동자 간 경쟁을 부추기며 가뜩이나 적은 임금도 차등적으로 지급하니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혹독하게 쥐어짜인다. 상담과정에서의 감정노동과 긴 시간 좁은 공간에 앉아 있으면서 발생하는 근골격계 질환은 일상적이다. 이렇듯 노동자들이 극한으로 내몰리면, 건강보험 가입자인 대부분의 국민 역시 충실한 안내를 받지 못한 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공공부문 민간위탁(혹은 외주화)은 그 자체로 민영화다. 오늘도, 내일도 누군가는 건강보험 관련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야 할 것이다. 이 가운데 지금 자신의 요청사항을 ‘건강보험공단’이 아닌 ‘별도의 민간회사’에서 처리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민영화의 폐해가 여지없이 드러난 지금,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요구는 지극히 정당하다. 이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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