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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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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wikipedia]

 

 

미국 내

아시아계를 향한 폭력,

미국 제국주의가 부추겼다

 

 

번역자: 이 글은 지난 3월 18일 좌파 매체 <Left Voice>에 실린 Sam Carliner의 글 “Violence against Asian Americans Is Fueled by U.S. Imperialism”을 번역한 것이다. 이에 앞선 3월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아시아계 여성을 향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사망한 피해자 8명 가운데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었으며, 그 가운데 4명이 한국계로(다른 2명은 중국계) 밝혀지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보도가 쏟아졌다. 이 글은 이번 참사가 미국 제국주의와 결합한 뿌리 깊은 아시아계 차별과 더불어 여성 혐오에 기인한 사건임을 지적하고 그에 맞선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번역 과정에서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괄호() 안에 번역자가 덧붙였다.

 

- 번역: 기관지위원회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그 화살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향하고 있다. 작년에만 수천 건의 혐오 범죄가 발생했고, 급기야 어제(3월 16일) 조지아에서는 여성 혐오와 아시아계 혐오가 결합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물론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폭력의 역사는 길고도 추악하다. 하지만 근 몇 년간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는 부쩍 늘어났으며,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이후 더 심해졌다. 그간 주류 언론이 무시해왔던 이 문제는 이번에 애틀랜타에서 아시아계 여성 6명이 살해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헤드라인에 등장하게 됐다. 이렇듯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정서가 심각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정책이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 정부는 그간 중국과 (직간접적으로) 중국인들이 미국의 적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내왔다. 트럼프는 (코로나 사태를 일컬어) “중국 바이러스”라고 표현했고, 바이든 정부 역시 중국을 적대하는 외교정책을 표방했다. 지난 2020년 10월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 미국 여론조사기관)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에서 반중(反中) 여론은 20%가량 상승했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는 미국 주요 도시에서 아시아계와 태평양 도서(島嶼)지역 출신 주민들에 대한 괴롭힘이나 폭력 사태가 거의 150% 늘어난 것으로 보고됐다.

 

 

이렇게 고조하던 적대감이 가장 폭력적으로 표출된 최근 사태가 지난 3월 16일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날 조지아주 애틀랜타 소재 마사지샵에서 한 무장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8명을 살해했는데, 피해자 가운데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는 3,800여 건을 기록했는데, 여기에는 기피‧언어폭력‧물리적 폭행이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아시아계 여성은 1순위 표적이었다.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로버트 애론 롱은 당일 오후 5시경 애틀랜타 북부 인근의 애크워스에 있는 마사지샵에서 첫 총격을 가해 4명을 살해했다. 곧이어 스파 두 곳을 습격해 여성 4명이 추가로 희생됐다.

 

 

롱은 자신이 성 중독자라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는데, 주류 언론매체는 이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성 중독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롱에게 성 중독이라는 표현은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잔혹한 여성 혐오 폭력을 가리키는 암호다. 애틀랜타에서 아시아계는 도시 전체 인구의 4%에 불과하지만, 롱에게 희생된 이들은 75%가 아시아계였다. 즉, 그가 이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곳으로 특정 장소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이 사건은 아시아계를 향한 혐오 범죄 희생자 가운데 여성이 특히 다수를 차지하는 양상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앞서 지난해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 범죄 건수를 조사했던 연구를 언급했는데, 같은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의 68%가 여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미국에서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페티시즘이 오랫동안 뿌리내린 점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리고 이러한 페티시즘은 아시아계 여성을 향한 폭력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또한, 이번 총기 난사 사태는 성 노동자에 대한 폭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롱이 마사지샵을 타겟으로 삼은 것 역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성 노동자들은 여성 혐오 폭력의 표적이며, 경찰이 가해자인 경우도 많다. 특히 유색인종 여성이 가장 빈번하게 피해자가 된다. 이 마사지샵에서 일하는 여성이 성 노동자든 아니든 간에, 범인은 이들이 성 노동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피해자들은 아시아계 이주민이자 성 노동자일 것이라는 이유로 희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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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wikipedia]

 

 

 

한편, 반중(反中) 레토릭이 이 사건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미국의 자본가정당인 민주‧공화 양당 모두 2010년대 내내 세계적 차원의 패권 갈등을 조장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른바 아시아 회귀 전략(Pivot to Asia: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한다는 의미)으로 태평양 지역에 더 많은 군사 자원을 집중시켰고, 트럼프 정부는 파괴적인 대중(對中) 무역전쟁을 벌였다. 이에 따라 미‧중 양국 자본가계급 사이의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자본가들이 세계 패권을 놓고 싸울 때마다 그랬듯, 긴장 고조에 따른 악영향은 고스란히 노동계급이 감당하게 됐다.

 

 

트럼프가 “중국 바이러스”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좀 더 노골적으로 인종주의를 드러냈다면, 바이든은 중국을 미국의 주적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자본가계급의 영향력이 팽창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바이든 역시 세계 패권을 점차 상실하고 있는 미국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에 속박된 부르주아 정치인이다. 바로 그렇기에 바이든은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지속적으로 몰두할 것이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가 안보 부문을 담당하게 될 인사들의 면면만 봐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처럼 입에 거품을 물듯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는 인물들이 포진한 것이다.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주의는 트럼프 정부의 중국 적대 정책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중국인 배척법부터 일본인 강제수용에 이르기까지,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은 항상 미국 역사의 일부였다(‘중국인 배척법’은 1882년 미국이 중국인 노동자의 이민을 금지시킨 법률을 말한다. 1800년대 중반 미국 금광 개발과 철도 건설 과정에서 수많은 중국인 이주노동자가 유입돼 저임금으로 혹사당했는데, 이렇게 중국인 노동자가 급증하는 데 반감이 커지자 미국 정부가 아예 법으로 이들의 이민을 막아버린 것이다. 한편, ‘일본인 강제수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가 적국인 일본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계 미국인들을 기존 거주지에서 끌어내 수용소에 강제 이주시킨 사실을 가리킨다. 이들이 갖고 있던 재산 역시 대개 몰수당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 이민은 많은 경우 미국의 폭격과 침공, 혹은 잔학한 독재자를 지원한 쿠데타의 결과물이다. 캄보디아, 베트남, 한국 등 여러 국가로부터의 이민의 역사가 이에 해당한다. 미국 제국주의는 여러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고국을 파괴했다. 그리고 이들이 미국에 와서 마주하는 현실은 임금 갈취와 차별, 폭력이다.

 

 

그렇기에, 미국에서 인종주의에 맞서고자 한다면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와 연대해야 한다. 또한, 고조되고 있는 아시아계 혐오 정서가 여성 혐오와 결합하면서 아시아 출신 여성들에게 더욱 큰 피해를 주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연대를 미국 내 아시아계 공동체에 한정해선 안 된다. 전세계 노동계급의 일원이기도 한 모든 아시아인과 함께 어깨를 걸어야 한다. 미국 제국주의와 반중(反中) 레토릭에 맞서고, 미‧중 갈등 수위를 높이는 행태에 반대 움직임을 더욱 크게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는 그 연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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