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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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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도래할 것’인가

‘도래해야 할 것’인가의

물음 속에서

 

- 오스트리아 맑스주의 1

 

 

이재유┃서울

 

 

 

지난 호까지 이 지면에서는 19세기 말 ~ 20세기 초 독일 사회민주당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개량주의‧급진주의 논쟁을 다뤘다. 이후 러시아에서 볼셰비즘이 대두하며 또 하나의 물결을 형성하게 되는데(이에 관해서는 향후 연재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들과 궤를 달리하면서도 독일 사회민주주의와는 또 사뭇 다른 양상을 드러내며 이후 서구 맑스주의의 한 요소를 형성한 것이 오스트리아 맑스주의였다.

 

이번 호 연재 주제인 오스트리아 맑스주의를 거론하기에 앞서, 이 사상적 조류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신(新)칸트주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대개 칸트(1724~1804)를 헤겔(1770~1831)로 이어지는 관념론자(합리론자)로 해석하지만, 이렇게 되면 칸트는 관념론자로서 헤겔 속으로 융해되고 만다. 그런데 칸트는 일방적인 관념론자 또는 합리론자가 아니라, ‘비판적으로’ 유물론(경험론)과 관념론(합리론)을 종합‧통일하려 했던 사람이다. 이에 따라 신칸트주의는 칸트를 관념론자인 헤겔로부터 구해냄으로써 형이상학에 대한 그의 비판 정신을 살려내고자 했다. 그러한 비판 정신은 곧 경험적 특성을 강조한 것으로(인간이 자기 외부의 사물 혹은 사태를 인식할 때, 인식 대상으로서의 ‘객관’이 인식 ‘주관’보다 우선한다는 것), 칸트를 유물론자 또는 실재론자(인식 대상이 인식 주관과 독립적인 외부 실체로 존재하며, 인간이 그 실체에 대한 파악에 근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조)로서 부각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런데 신칸트주의 역시 유물론(경험론)적 측면과 관념론(합리론)적 측면을 처음부터 분리된 것으로 사고했다. ‘철학의 근본 문제’(‘물질이 우선적이냐, 정신이 우선적이냐’)에 따르면, 이 둘은 상호 모순‧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칸트가 이 둘을 기계적으로 종합(결합)했다고 본다. 또한, 기존의 칸트주의가 합리론(관념론)을 경험론(유물론)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라고 여겼다면, 신칸트주의는 그 반대였다.

 

 

 

‘과학’과 ‘당위’의 관계,

그리고 신칸트주의의 영향

 

신칸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칸트 해석이 맑스 유물론을 더 풍부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신칸트주의 중 ‘윤리 사회주의’를 주장한 학파(마르부르크 학파)에게 ‘당위’나 ‘윤리’는 ‘개인적인 영역’(원초적인 것으로, ‘개별적이고 원자화된 개인’이 전제로 깔려 있음)에 속하며, 이러한 것들이 보편성과 필연성을 보장해준다. 반면, ‘사실의 영역’(과학)은 결코 보편성과 필연성을 보장할 수 없는 우연적‧개연적인 영역이다. ‘사회적인 것’(관계 속에 있는 것)은 사회과학의 영역(사실과 경험의 영역)으로서 개연적인 것이고, 이 관계를 가능하게 만드는 전제는 ‘관계 밖’에 있는 개별적 개인(로빈슨 크루소 같은 개인)인데, 관계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보장하려면 이 개인이 (데카르트식으로는) ‘생각하는 나’(코기토)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코기토’ 배후에는 신(神: 헤겔식으로는 ‘절대정신’. 제1원인으로서 보편성과 필연성을 보장해주는 존재)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필연성과 보편성은 과학이나 사실의 영역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 과학과 사실의 영역이 보편성과 필연성을 보장받기 위해 ‘요청’되는 것이다. 보편성과 필연성의 ‘요청’은 칸트에게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하고’,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정언명령의 형태로 나타난다.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이러한 정언명령의 형태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당위, 윤리의 영역(가치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왜’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근거는 단지 ‘있다, 없다’를 따지는 ‘사실의 영역’에서는 찾을 수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니까’라고 판단하는 ‘가치의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 곧,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라는 것만으로는 성립할 수 없고, “자본주의보다 더 ‘좋다’”라는 가치로부터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칸트주의에 입각한 오스트리아 맑스주의는 이렇듯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보편성과 필연성이 ‘과학’으로서의 맑스주의 유물론을 넘어선(초월한) ‘유토피아’로서의 사회주의로부터 ‘요청’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러한 ‘요청’의 문제 때문에 후일 트로츠키는 영구혁명론에 관해 레닌으로부터 엄청나게 비판받았다. 이 점도 차후 연재에서 살펴보겠다).

 

 

 

‘오스트리아 맑스주의’란 무엇인가

 

오스트리아 맑스주의자들은 스스로를 ‘교조적 태도에서 벗어나 맑스주의 정신을 살려내는 데 충실한, 개방적이고 유연한 맑스주의자’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非)맑스주의 철학‧사회과학의 개념과 방법을 사용하는 게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맑스주의를 정교하고 풍부하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을 두 가지 꼽자면 아래와 같다.

 

① 비엔나 학파의 실증주의(실증, 곧 실제 검증을 중시하는 사조로, 어떤 현상의 배후에 형이상학적 요소가 작용한다는 주장을 배격하고 경험적 검증으로 확인된 지식의 우월성 강조. ‘비엔나 학파’는 이러한 실증주의를 철학에 적용해 ‘논리실증주의’라고도 불린 흐름을 형성함)나 신칸트주의의 개념과 방법을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② 맑스주의의 인식론(말하자면, 인간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형성하는가에 관한 탐구)적 기초를 재검토하고자 했다.

 

오스트리아 맑스주의자들은 이 둘을 통해 맑스주의 유물론을 형이상학적 유물론이나 세계관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과학으로 이끌고자 했다. 이들은 칸트 철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자연과학에서의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관한 토대를 제공한 것처럼 맑스주의 사회과학의 진정한 토대를 재구성해보려 했다. 이들의 계획은 맑스주의를 경험적 사회과학으로 확립하려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맑스주의는 실증주의와 마찬가지로 ‘경험적 자료’가 인식론적으로 선행한다는 점을 변호했으며(과학적 측면: ①), 베른슈타인의 ‘실증적 분석’에 대한 비판을 통해 맑스주의를 생명력 있는 ‘사회변혁 이론’으로 구체화하고자 했다(혁명적 측면: ②). 1차 대전(1914~1918) 이전의 오스트리아 맑스주의는 이 두 가지 측면을 결합함으로써 맑스주의를 사회과학으로서 정당화하고 경험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통해 맑스주의의 혁명적 성격을 고양하고자 했다. 그러나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렇듯 경험적 사실과 혁명을 결합하고자 했던 흐름은 분열되고 해체됐다. 이는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좌우 균열을 반영했는데, 결과적으로 전자를 강조한 쪽은 루돌프 힐퍼딩을 위시한 우파의 길을 걸었으며, 후자를 강조한 세력은 프리드리히 아들러를 비롯한 당내 좌파를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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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맑스주의의 주요 인물인 아들러(왼쪽)와 힐퍼딩(오른쪽). [사진: wikipedia]

 

 

 

 

존재와 당위: 맑스주의의 난제

 

지금까지 살펴봤듯 오스트리아 맑스주의는 신칸트주의적 맑스주의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독일의 신칸트주의와는 달랐다.

 

일반적으로 칸트 철학의 특징은 ‘존재의 세계’와 ‘당위의 세계’를 엄격히 구분하는 ‘두 세계’론이다. 여기에서 ‘존재의 세계’는 ‘이미 있는 것’으로서 과학의 인식 대상이며, 과학‧사실의 영역으로서 현상계로 제한된다. 이미 있는 세계로서 ‘자연’은 결정론적 인과 법칙이 지배하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인식이 가능한 영역이다. 다른 한편 ‘당위의 세계’는 과학과 사실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으며, 칸트가 오히려 더 중요하게 생각한 영역이다(행위‧도덕‧가치의 영역). 칸트에게 이 둘의 관계는 당위의 세계가 존재의 세계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이뤄진다. 그에게 ‘사실’은 과학이 의미 있게 성립될 수 있는 영역을 명확히 밝혀 과학의 한계를 분명히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달리, 과학의 틀 속에 들어올 수는 없지만 인간에게 더 중요한 문제들을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올바른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칸트는 ‘이미 있는 것’과 ‘있어야 할 것’을 엄격히 나누고, 서로 관계 맺을 수 없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헤겔은 이와 다르게 생각했다. 현실이란 항상 변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지금 있는 것’은 동시에 ‘있어야 할 것’이기도 하며, 칸트처럼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헤겔에게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다.”

 

맑스 역시 당위와 존재의 구분을 거부하는 헤겔의 입장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 판단과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한다’라는 가치 판단이 얽혀 있다. 맑스주의 역사에서 가장 논쟁이 많았던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회주의에 대한 맑스의 전망은 과학적 탐구에서 나온 결론인가, 윤리적 당위가 투영된 유토피아적인 것인가? 이 가운데 맑스주의를 과학적 세계관으로 규정하고 객관성과 당파성, 보편성과 계급성이 완전히 일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정통 맑스주의 입장으로, 이는 헤겔-맑스주의에 근거한다.

 

오스트리아 맑스주의를 포함한 신칸트주의적 맑스주의자들의 고민 중 하나는 정통 맑스주의와 맑스가 존재와 당위, 사실과 가치를 너무 쉽게 일치시킴으로써 사회주의를 올바르게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다른 한편, 사회주의가 필연적‧객관적으로 도래하는 것이라면, 이로부터 ‘사회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당위가 추론될 수 없다는 것 역시 이들의 고민이었다. 이러한 고민을 두 개의 명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자본주의가 망하고 사회주의가 오는 것은 필연적이다(존재, 사실의 영역).

 

②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가 더 도덕적으로 선하고 정의로운 체제다(당위, 가치의 영역).

 

여기에서 ①은 사실을 예측하는 과학적 명제로서 가치중립적인 주장이다. 반면, ②는 도덕적인 가치 판단이다. 이 두 명제는 상호 독립적이기 때문에 하나에서 다른 하나를 추론할 수 없다. 부르주아지의 착취를 비판하고 혁명 활동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①보다는 ②가 근거로 제시돼야 한다. ①은 혁명 활동에 희망을 주는 명제이긴 하나, 그 정당성을 확보해주지는 않는다. 신칸트주의적 맑스주의자들은 정통주의에 의해 해석된 ‘과학자’로서의 맑스가 ②의 정당성을 제공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칸트 윤리학을 끌어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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