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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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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성

정책위원장

 

 

사회주의 정치활동, ‘내 현장에서 어떻게?’

당원들의 질문에 내용으로 답해야 한다

 

 

 

# 2016~17년 정책위원장, 2018년 집행위원장, 2019~20년 조직‧투쟁연대위원장, 그리고 올해 다시 정책위원장. 변혁당 출범 이후 6년 내내 그는 당의 중앙집행위원이자 상근자로 살아왔다. 물론, 처음부터 이러려고 서울에 온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기에 따라 다른 직책과 역할을 맡으면서도 그가 계속 이 활동을 이어가는 문제의식은 하나로 관통하는 것 같다. ‘어떻게 각자의 현장에서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만들어낼 것인가?’ <변혁정치>가 백종성 정책위원장을 만났다.

 

 

 

‘민주 정부’의 실체 목도한 충격

 

80년 광주에서 태어난 종성 씨는 어릴 때부터 자주 데모 현장을 목격했다. 당시 학생운동이 격렬하게 벌어지던 조선대학교 근처에 살았기에 시위는 일상적이었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1년 뒤인 1999년에 상경해 대학에 들어갔다. ‘김대중 대통령이 됐으니 세상이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IMF 구제금융 직후 구조조정이 굉장히 공격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였어요.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에 이어, 제가 대학 1학년이던 99년에는 서울지하철에서도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면서 파업이 벌어졌죠. 당시 파업투쟁에 나선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이 캠퍼스로 들어왔는데, 그런 모습을 생생하게 보면서 좀 충격을 받았어요.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 사람들이 데모도 안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세상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사람들은 계속 고통받고 경찰은 여전히 폭력적이고. 김대중이 대통령이라도 사람들은 싸울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운동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선배를 따라 운동권 동아리에 들어갔고, 학생회 활동도 시작했다. 그러다 사회주의 정치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건 3학년이 된 2001년부터였다. 당시엔 비공개조직이었다. 국가보안법 탄압 문제 등으로 사회주의 조직들이 수면 위로 아직 떠오르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공개 정치활동 없인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종성 씨는 공개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한편으로는 김대중 정부 이후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진전하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정세적으로 수세에 계속 몰리는 상황에서 공개 정치활동 없이는 소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당시부터 학생사회 우경화가 진행되는 한편, 학생회 중심의 조합주의도 상당히 강화되고 있었어요. 게다가 이른바 각종 ‘포스트주의’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던 국면이었고요. 그런 만큼 사회주의 노선을 주도적으로 학생사회에 제기하면서 공개적인 이론 논쟁도 벌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회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2002년 발전노조 파업이 정부의 강경 진압 속에 마무리된 이후 정세적 하강기가 쭉 왔던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정치조직 재생산도 어려워지고 있었고요. 전략적 방향성을 갖고 공개 정치활동을 벌이지 않으면 결국 상황에 휩쓸려 계속 후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공개 정치활동에 대한 요구는 조직 내 선배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오랫동안 내부 논쟁을 벌였지만, 변화는 없었다. 이미 조직은 거의 형해화하고 있었다. 2003년 말을 지나면서 종성 씨는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정치조직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주변에서 새롭게 함께할 이들을 모았고, 그렇게 “학생 사회주의 정치연대”(학사정연)라는 조직을 띄웠다.

 

학생운동을 주름잡던 거대 정파들에 비하면 학사정연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였지만, 교육투쟁을 비롯해 대중운동에 끈질기게 뛰어드는 한편 사회주의를 명확한 기치로 걸고 기관지나 대자보 등을 통해 운동노선 논쟁을 공개적으로 벌이려 노력했다. 이렇게 학사정연 활동을 이어가던 도중 “노동자해방 당 건설 투쟁단”(당건투)이라는 사회주의 조직과 접점이 생겼고, 당건투가 다른 조직들과 통합해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사노련)이 탄생하자 종성 씨는 학생운동을 마무리하고 사노련에 함께하게 됐다. 이후 2010년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결성에 참여하고, 2016년 변혁당이 창당하면서부터는 정책위원장직을 시작으로 쭉 중앙집행위원으로서 활동을 이어왔다.

 

 

 

현장정치활동,

‘론’을 수립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종성 씨가 애초부터 조직의 중앙 상근자로 활동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학생운동을 마치고 처음 발을 디딘 곳은 전북지역이었다. 현장에 밀착한 지역 정치활동에서 자신의 운동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다 변혁당 창당 1년 전, 그 전신인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 때 “현장정치특별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맡으면서 다시 서울로 오게 됐다. 이후 올해까지 7년째 조직의 중앙 상근자로 살고 있다.

 

“처음 ‘현장정치특별위원회’를 만들자고 했을 땐 구체적 구상도 없이 일단 문제의식만으로 시작한 거였어요. 2010년 이후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이 곳곳에서 격렬하게 벌어졌고, 당시 제가 있던 전북지역에서도 현대차 전주공장처럼 원하청 연대가 굉장히 잘 이뤄진 곳도 있었죠. 문제는, 이렇게 현장투쟁은 활발하게 진행되는데, 바로 그 현장에서 사회주의자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정치활동을 벌이는 건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가령, 노동조합 간부나 현장조직 활동가가 아니라 사회주의 조직의 회원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공개적인 정치활동이 잘 이뤄지지 않았던 거죠. 창당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이 문제에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종성 씨는 결과적으로 이 당시 자신의 시도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저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조직 형태, 혹은 조직론적 차원에서만 접근했던 것 같아요. 현장 동지들이 대개 노조나 현장조직에 속해 있는데, 그게 그 동지들에겐 투쟁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잖아요. 투쟁 계획 같은 것도 거기서 주로 논의하죠. 그런데 그런 형태의 조직에 이미 소속돼 있기 때문에 정치적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러니 ‘당 분회가 그런 역할을 맡도록 조직 형태를 마련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죠. 예를 들면 당원이 포진한 현장조직을 당 분회로 전환할 방안을 마련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뭔가 조직 형식에 관한 입론을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1년여에 걸친 고민과 토론 끝에, 종성 씨는 애초 자신의 접근법이 틀렸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의 핵심은 ‘조직 형태’가 아니라 ‘내용’이라는 것이다.

 

“현장조직과 당 조직은 성격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가령, 현장투쟁을 정치적 멤버십이 일치하는 사람끼리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 역할을 당 조직이 대체할 수도 없고, 현장조직이라는 형태를 발전시킨다고 그게 당 조직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거죠. 결국 당 조직인 분회가 승부를 볼 수 있는 건 일상적 투쟁을 넘어선 현장에서의 정치투쟁인데, 이 현장정치투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관한 ‘내용’을 공급하는 게 핵심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예컨대 지금처럼 구조조정이 닥쳐올 때, 단위사업장 노사관계 차원에서 ‘적당히 양보’하고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좀 더 거시적 차원에서 현재 산업구조조정이 왜 발생하고 있는지 대중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정치적 연대투쟁을 만들어내야 이길 수 있다는 전망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죠. 이런 부분이 노조나 현장조직과 다르게 당이라는 정치조직이 치고나갈 수 있는 영역이고요. 이렇게 정치적 설명과 전망을 주기적으로 제공할 때 현장에서 정치운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당 활력에 대한 우려,

핵심은 역시 ‘내용 공급’

 

현장 동지들이 정치투쟁을 벌일 ‘내용’을 만들고 공급하는 게 급선무라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종성 씨는 변혁당 창당과 함께 정책위원장직을 맡기로 했다. 이후에는 집행위원장과 조직‧투쟁연대위원장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올해 그는 다시 정책위원장으로 돌아왔다. 처음 정책 업무를 맡았던 문제의식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또 한 가지 만만치 않은 고민거리가 더해졌다. 바로 변혁당이 당 전체의 방향으로 설정한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이다.

 

현실의 여러 의제를 체제 대안과 접목해 대중적 운동으로 펼치고(‘사회주의 의제 전면화 운동’), 다가오는 대선에서 사회주의 후보 출마로 정치세력으로서의 존재를 입증하면서 사회주의 대중정당 등록운동을 만들어내겠다는 게 목표지만, 지난 1년간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여러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이 당원 활동으로 실물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난 2월 총회에서 확인된 당원 다수의 의견은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을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고 봐요. 그렇다면 이 위기 상황을 돌파하고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만들기 위해 지역과 현장에서 당원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자기 결의를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죠. 당원 활동의 활력이 떨어져 있다는 평가도 많이 나오는데, 결국 우리 당의 골간은 분회잖아요. 분회별로 사회주의 대중화와 연계해서 어떤 사업을 해 보겠다 하는 계획과 전망이 필요한데, 이게 가능하려면 그에 대한 내용 공급이 필요하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회주의 의제 전면화 사업도 그렇게 각 지역과 현장에서 분회들이 자기 사업을 구상할 내용을 제공하는 계기이기도 하고요. 물론, 여전히 만만치 않은 상황이죠.”

 

당원 활동의 활성화, 특히 당의 골간조직을 이루는 분회 활동을 어떻게 추동할지에 관한 문제에서도 종성 씨의 고민은 ‘내용 공급’으로 이어졌다.

 

“분회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해 그 답을 분회에서 각자 알아서 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중앙당이 정치적 좌표를 제시하고, 그걸 바탕으로 실제 조직을 추동하는 모습을 선도적으로 보여주고, 이를 토대로 분회 같은 골간조직이 자기 사업을 만들고 펼칠 수 있도록 내용을 공급하는 과정이 이뤄져야죠. 특히 코로나19가 촉발한 이 위기에 대해 우리는 이 사회를 어떻게 재편하자고 주장하는지 제시하고, 그에 따라 조직 전체를 움직이기 위한 기획들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중에서도 산업구조조정이 확대되는 지금 상황에서 민주노총도 정치총파업을 조직하겠다고 나섰는데, 명색이 사회주의 정당이라면 이 과정에서 산업 사회화 같은 정치적 과제를 대중 앞에 제기하고 그런 요구를 중심으로 정치투쟁을 작더라도 만들어내야 하는 거죠. 이런 운동을 만들어나가면서 당의 골간조직이 그에 맞게 움직일 수 있도록 추동하고, 그렇게 대선 투쟁까지 실질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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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정치, 이렇게 시작해보자

 

한편,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목표로 설정한 상황에서 당의 노동현장 기반이 계속 유실되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이와 함께, 현장 당원들이 자신의 공간에서 어떻게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만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려온다. 이에 관해 종성 씨는 우선 ‘당이 노동운동에 대한 연대세력으로 머물러서도 안 되지만, 그 반편향으로 조직노동운동과의 접점을 놓쳐서도 안 된다’고 짚었다.

 

“당이 연대투쟁에 힘쓰고 ‘헌신적 연대세력’으로 인정받는다 해도, 그 자체만으로는 정치운동의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걸 실제로 경험하기도 했죠. 그런데 그 경험이 역으로 너무 크게 작용해서, 연대투쟁 자체에 대한 반편향이 생기게 된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 맥락에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조직된 노동자 세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는 것 같고요. 가령, 유럽의 사회주의 조직들 가운데는 노조에서 활동하지 않는 곳도 많죠. 그렇다고 미조직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요. 이렇게 되면 굉장히 경직적인 지식인 그룹으로 왜소화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그런 길을 밟으면 안 되는 거죠.”

 

그렇다면 현장의 노동자 대중과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정치활동을 펼칠 방법은 무엇일까? 혹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앞서도 얘기가 나왔지만, 현장에 있는 당원들은 노조나 현장조직에 속한 경우가 많죠. 그 동지들에게 현장조직이나 노조활동 그만두고 정치조직 활동만 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노조활동과 현장조직을 정치적으로 강화하다 보면 당의 현장분회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지들은 노조‧현장조직 활동, 그리고 정치조직 활동 이 두 가지를 다 해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봐요. 아까도 말씀드렸듯, 서로 성격이 다른 조직이니까요. 그렇다면 당은 노조나 현장조직에 있는 당원 동지들과 정치토론을 굉장히 활성화시켜야 해요. 그저 당 회의문서만 가지고 토론하자는 게 아닙니다. 예컨대 지금 산업구조조정 정세를 우리는 어떤 입장에서 봐야 하는지, 거시적 측면에서 자기가 노동하는 일터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거죠. 그 과정에서 어떤 내용은 현장 대자보나 유인물로 만들어 선전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당의 정치적 관점을 현장과 밀착해 제시할 수 있는 시야와 내용을 만드는 거죠.”

 

종성 씨는 산업 재편이 한창 진행 중인 자동차산업을 예로 들었다.

 

“현대차가 수소차 시대로 전환한다고 하고, 문재인 정부도 ‘수소경제’를 띄우면서 열심히 돕고 있잖아요. 현대차에서 일하는 당원이라면 상당히 갑갑할 거예요. 자신이 속한 현장조직 차원에서 수소경제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기도 어려울 테고, 문제의식이 있어도 말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죠. 그런데 이런 산업 상황을 부품사에서 일하는 동지들과 함께 논의하다 보면 좀 더 총체적인 인식이 가능하잖아요. 부품사도 사정에 따라 산업구조조정을 체감하는 정도가 제각각일 수 있고요. 이렇게 당 차원에서 현장 동지들이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면서, 각자의 현장에서 어떤 것을 선전‧선동할 수 있을지 하는 내용과 자신감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장조직이나 노조가 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정치적 내용을 바탕으로 집단적 의지를 형성하는 거죠.”

 

 

다소 무거운 주제들로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시간도 훌쩍 지났다. 서둘러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 꼭지의 고정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사회주의란?”이라는 물음에 그는 “대중의 자기 주체화”라고 답했다.

 

“러시아혁명 때 그런 말이 나오잖아요. 요리사도 국가 경영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사회주의 건설의 일 주체가 되겠다는 정당이라면, 그 조직의 성원들 역시 그렇게 움직일 수 있어야겠죠. 물론 지금 우리에게 그 주체화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중앙의 계획만으로 되는 것도 아닐 거고요. 그런 집합적 의지를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 그게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기관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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