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124_2_수정.jpg

 

 

끝내 이 몸을 묻을 땅에 살아

 

 

<소개하는 책>

오제 아키라(이기진 옮김), 『우리 마을 이야기』(전 7권), 길찾기, 2012.

 

 

박상헌┃기관지위원회

 

 

 

“신도쿄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일본의 나리타 국제공항 활주로 사이엔 토호신사(東峰神社)라는 자그마한 신사가 있다. 그 신사 지붕 바로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모습은 일본 인터넷상에서 도시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로 회자되곤 했다. 그 신사로 가기 위해 활주로 사이에 난 좁은 도로, 신사를 둘러싼 높은 흰색 담벼락과 감시카메라, 동네 한가운데 우뚝 선 “공항 절대 반대” 구호가 적힌 입간판은 ‘산리즈카(三里塚) 투쟁’을 ‘한때의 극좌 학생조직이 일으킨 소요사태에 불과했다’는 식으로 재단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듯 5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오는 투쟁의 흔적과 현재성을 증명하고 있다.

 

 

 

땅을 빼앗긴 사람들

 

1960년대,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이 가속하며 항공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일본 정부는 도쿄 하네다공항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를 대체할 공항 건설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한다. 원래는 하네다공항을 확장할 계획이었으나 주일미군의 비행구역 제한 때문에 불발되고, 그 대안으로 일본 황실의 목장이 위치한 치바현(도쿄 동남쪽, 태평양과 맞닿은 지역) 산리즈카 일대가 신공항 부지로 선정됐다.

 

공항공단은 주민설명회를 열어 ‘공항이 일본 경제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에 농민들에게 보상을 넉넉하게 해 주겠다’며 회유*하는 한편, 토지 강제수용을 진행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산리즈카 농민들은 2차 대전 이후 척박한 땅을 개척해 이제 막 결실을 보기 시작하던 개척농민이었기에, 공항 건설은 그들이 일궈온 삶에 대한 부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농민들은 국가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반대동맹을 결성해 “농지 사수”, “공항 절대 반대”라는 구호로 공항공단에 맞섰으나, 공단은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공항 건설을 강행했다.

 

 

 

서로 달랐던 사람들

 

농민들이 처음부터 일치된 의견으로 공항을 반대한 건 아니었다. 반대 이유도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신공항 부지가 일본 황실의 목장 자리였기에) 공항 건설을 황실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반대하기도 했다. 물론, 공항공단의 보상금을 받고 땅을 떠나려는 ‘조건파’도 있었다.

 

공항 반대와 찬성으로 나뉜 이상, 공동체의 붕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파벌과는 어울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감정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은행은 고급 자동차와 컬러텔레비전으로 주민들을 유혹했고, 공항공단의 토지 측량과 강제집행을 ‘방해집단’으로부터 ‘보호’할 경호원을 자처하는 농민들까지 생겨나며 이들은 정신적으로도 무너졌다.

 

 

 

이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

 

‘나라님이 하는 것이라면 좋은 것’으로 알고 살아온 농민들은 공항 건설 강행 과정에서 그토록 믿어왔던 국가가 자신을 지켜주지 않음을 경험했다. 국가에 배신당한 농민들은 자신과 마을을 지킬 수 있는 건 산리즈카의 땅을 일궈온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들은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에 “일본 농민의 이름으로”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싸움의 과정에서 스스로 결성한 노인행동대, 부인행동대, 소년행동대, 청년행동대와 반대동맹은 바로 그들이 찾아낸 농민의 이름이었다.

 

 

“이기지 못하더라도 지지 않으면 되는겨. 지지 않는 싸움을 하는겨. 인내심 겨루기여, 히로시.”

- 『우리 마을 이야기』 2권, 227쪽.

 

 

농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농지 사수”라는 구호는 이들의 끈질김 덕분에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았다. 소년행동대는 동맹휴교를 결정했다. ‘아이들을 투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는 기성 교육계의 ‘우려’에 산리즈카는 보란 듯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학교가 됐다.

 

투쟁으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산리즈카는 싸우고 있다. 여전히 산리즈카의 공항 한가운데엔 농민들이 살고 있고, 패배하지 않는 투쟁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작가인 오제 아키라는 이 다큐멘터리 만화를 그리기 위한 취재 과정에서 ‘때린 자는 때린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며 이 투쟁의 의미에 대해 ‘국가가 때린 사람들, 국가에게 맞은 사람들이 있음을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비록 이 책은 투쟁이 시작된 1966년 무렵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의 상황만을 다루고 있지만, 책을 읽으며 우리 주변 어딘가의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네가 지키는 건 이 목장이나 집, 밭뿐만이 아니야. 네가 지키는 건 민주주의다.”

- 『우리 마을 이야기』 1권, 223쪽.

 

 

 

 

 

*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와카사 도쿠지는 1990년 사업인정 취소소송 항소심 증언에서 “매입가격을 높게 책정하면 공항 건설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말한 바 있다.

 

 

 

 

** 일본 농림성이 주도한 농업개선사업의 일환으로 1963년부터 진행된 “실크 콤비나트 사업”은 산리즈카에 공항을 건설한다는 계획이 나오자마자 강제중단되어 현지 양잠 농가들의 큰 반발을 샀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