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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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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8.16 18:47

[번역]

 

 

쿠바: 7월 11일의

원인과 결과(1)

 

 

* 번역자: 지난 7월 11일, 쿠바에서 대규모 군중시위가 벌어졌다.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상징처럼 각인된 쿠바에서 터진 대중적 항의 물결은 ‘공산주의 독재에 맞선 자유민주주의 항쟁’ 혹은 ‘제국주의 세력의 사주를 받은 반(反)혁명 음모’라는, 상반된 것 같으면서도 겹치는 이데올로기적 해석을 양산했다. 낯선 일은 아니다. ‘사회주의’ 이름이 붙은 정권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분노가 표출될 때마다 이런 구도는 수도 없이 반복됐다. 그러나 현재 쿠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이런 이데올로기적 판결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쿠바 민중의 분노가 누적된 이유는 무엇이고, 그것은 왜 지금 시기에 폭발했을까? ‘사회주의’를 내걸었던 쿠바 공산당 정권의 실제 행보는 사회주의적이었을까? 여기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과 압력은 어떻게 작용한 것일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아 나감으로써 우리는 쿠바 민중의 시위가 어떤 성격을 내포한 것인지, 쿠바 체제의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변혁정치>는 이번 호와 다음 호에 걸쳐 이번 쿠바 시위의 배경과 현 쿠바 체제의 모순을 분석한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기사는 좌파 매체 <Left Voice> 7월 25일 자로 게시된 Claudia Cinatti의 글 “Cuba: Causes and Consequences of July 11”의 전반부를 번역한 것이다.

 

본문 가운데 소괄호()는 원문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독해 편의를 위해 문장을 자른 것이고, 대괄호[]는 번역자가 덧붙인 것이다.

 

 

- 번역: 기관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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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Left Voice]

 

 

복합적 위기를 겪고 있는 쿠바에서 27년 만에 가장 극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 7월 11일 쿠바는 대중 시위와 대치, 탄압으로 가득했다. 이날 좌파 지도자‧활동가를 포함해 수백 명이 체포됐다. 경제‧사회적 위기를 배경으로 한 코로나19의 영향이 기폭제가 됐지만, 근본 원인은 경제적‧구조적 문제였다. 이는 27년 전인 1994년 말레코나조(Maleconazo) 봉기[쿠바 수도 아바나의 해안대로(大路) 말레콘(Malecón)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져 붙은 이름]와도 유사하다.

 

쿠바 정부의 보복으로 인해 새로운 대중행동은 한풀 꺾인 것으로 보인다. 쿠바 공산당은 관제 시위로 무대 중심에 복귀했고, 이 자리에는 지난 4월 8차 당대회를 거치며 지도부에서 공식 은퇴했던 라울 카스트로[쿠바 혁명을 이끈 피델 카스트로(1926~2016)의 동생으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및 쿠바 공산당 제1서기 역임]도 참석했다. 카스트로는 “노장파” 대표로서 자신의 입지를 활용해 현재 이미 신망을 잃은 대통령 미겔 디아스-카넬(Miguel Díaz-Canel)을 정당화하는 한편, 수십 년 만에 닥친 중대한 국가적 저항에 맞서려 한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현상 유지’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다. 제국주의 세력과 우익뿐만 아니라 쿠바의 관료 지배층 스스로도 ‘지금의 위기를 해결할 유일한 방책은 자본주의적 수단밖에 없다’는 ‘상식’을 퍼뜨리고 있지만, 우리는 라틴아메리카 최초로 승리했던 혁명의 운명을 노동자 민중이 자기 손에 움켜쥐고 사회주의적 전망을 재건할 것이라 믿는다.

 

 

 

7월 11일,

무슨 일이 벌어졌나

 

7월 11일 사건의 원인과 결과, 정치적 관점을 설명하기에 앞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미국과 현지 우익 언론이 지겹도록 증폭시킨 가짜뉴스와 사리사욕만 채우는 이야기가 넘쳐나면서 정작 진실은 흐려졌다. 자본의 선전꾼들은 “자유”라는 추상적 개념을 내세워 자신들의 극히 반동적인 성격을 은폐하면서 이번 기회를 활용해 반공주의 물결을 만들고자 한다. 그야말로 추악한 위선이다. 이렇듯 “자유”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주워섬기는 가짜 투사들은 미국의 지원으로 볼리비아에서 쿠데타를 기획했으며, 콜롬비아의 이반 두케[Iván Duque: 현 콜롬비아 대통령]처럼 시위 군중을 탄압‧살해했고, 브라질의 보우소나루[Bolsonaro: 현 브라질 대통령] 같이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자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번 사건을 설명하는 두 가지 관점이 현재 주를 이루고 있다. 먼저 미국의 경우, 마이애미[미국 동남부 해안 끄트머리에 있는 도시로, 쿠바를 마주 보고 있음]에 모여 사는 쿠바 망명자 가운데 가장 강경한 집단과 쿠바 현지에 남아 있는 그들의 동맹세력, 그리고 공화당에 복무하는 우익 일반에게 7월 11일 시위는 “공산주의 독재에 맞선 항거”다. 이들은 이렇게 짜 맞춘 이야기를 통해 그야말로 쿠바의 자본주의 부활을 꾀하며, 전반적인 반공주의 선전을 강화하고자 한다. 지난주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 담긴 의도도 바로 이것이다[7월 12일 바이든은 쿠바 시위에 관해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 자유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바이든에게 쿠바의 미래는 선거 이슈다. 마이애미의 ‘리틀 아바나’(Little Havana)에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미국으로 달아난 우익 쿠바계 주민이 많은데, 지난 2020년 선거에서 바이든이 이들의 표를 얻지 못하면서 플로리다[마이애미가 속한 주(州)]를 공화당에 넘겨줬다. 그렇기에 바이든은 이들의 표를 또다시 잃지 않으려 한다.

 

한편, 쿠바 정부에게 이번 시위 참가자들은 공산당 체제를 뒤흔들기 위해 미 제국주의가 사주하고 후원한 “반혁명 분자” 집단이다. 심지어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연성 쿠데타”(soft coup)라고까지 얘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동시에 쿠바 당국은 시위 참가자 대부분이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혼란스러워했고” 조종당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지배 관료층의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즉, 이번에 자신들이 맞닥뜨린 건 음모가 집단(뿐만)이 아니라 정당한 분노와 불만을 품은 대중이라는 것이다. 쿠바 당국이 개별 여행자들의 식량‧의약품 및 기타 물품 국내 반입에 대한 규제를 푼 것도 이를 방증하는 조치였다.

 

분명, 현실은 훨씬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물론, 마이애미의 쿠바계 보수파 망명자들과 연계한 친미 우익이 이번 시위에 참가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들은 “공산주의 타도하라”, “쿠바에 자유를”, 최근에는 “조국 그리고 삶”[쿠바 혁명을 상징하는 “조국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비튼 것] 같은 자신들의 전통적 구호를 내세웠다. 하지만 블로그 <공산주의자 Comunistas> 편집자들이 이날 시위를 묘사한 바에 따르면, 참가자 대부분은 반혁명 조직과 관련도 없었고 이들 조직이 저항을 이끈 것도 아니었다. 시위의 핵심 원인은 극심한 물자 부족에 따른 불만이었고, 이를 촉발한 건 경제위기와 미국의 제재, 그리고 국가 관료층의 부정과 비효율이었다.

 

또한, <공산주의자>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덧붙였다: 이전까지 쿠바에서는 주로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예컨대 (노골적으로 우경화한) 2020년 11월의 ‘산 이시드로 운동’[수도 아바나의 산 이시드로(San Isidro) 지역에서 시작된 예술가 중심의 반정부 운동]처럼 말이다. 반면, 이번 시위는 물자 부족과 생존 위기를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는 노동계급 밀집 지역에서 발생했다.

 

요약하면, 7월 11일 대규모 집회는 모순적 성격을 띠었다. 미국이 자금을 대는 언론 매체가 이날 시위를 활용한 건 분명 사실이다. 최근 <가디언 The Guardian>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은 쿠바의 “민주주의를 촉진”하기 위해, 즉 공산당 체제를 전복하고 자본가 정당으로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연간 2천만 달러[약 220억 원]를 쏟아붓는다. CubaNet, ADN Cuba, Diario de Cuba[‘일간 쿠바’ 정도로 옮길 수 있음] 등 쿠바에서 SNS를 장악하고 있는 매체들은 미 국무부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런 언론 매체와 더불어 제국주의에 편입된 유명 인사들과 인플루언서, 그리고 각종 봇까지 지난 수년간 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번 7월 11일에 폭발한 대중적 분노의 물질적 근원은 팬데믹의 영향과 미국의 봉쇄 조치 강화, 그리고 공산당의 친(親)자본주의 정책이 결합한 데 있다. 이 관료집단은 철통같은 경찰 통제로 쿠바 전체를 옥죄면서 자신들의 특권을 지킨다.

 

 

 

새로운 “고난의 행군”?

 

7월 11일의 “작은 폭발”을 이해하려면, 먼저 오늘날 쿠바가 놓인 매우 심각한 상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작금의 위기는 쿠바인들에게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1990년대 “특별 기간”[Special Period: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이후 쿠바에 닥친 초유의 경제위기. 쿠바판 ‘고난의 행군’]의 참상에 비견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코로나19와 제국주의 세력의 봉쇄, 그리고 대중적 반감을 산 쿠바 정부의 조치들이 결합한 결과다. 이 모든 요소가 한 데 묶여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복합적 요소 가운데 최소한 다음 3가지가 최근 사태를 촉발했다.

 

 

① 끔찍한 팬데믹

 

코로나19는 오래도록 이어진 추세와 위기를 가속시켰다. 정부가 자체 조사에 착수하고 백신 생산에 나섰지만, 보건위기 상황은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

 

팬데믹 1년여를 경과한 지난 4월 기준 쿠바의 코로나19 확진자는 87,385명, 사망자는 467명이었다. 그러나 이후 7월 중순까지 3개월간 이 수치는 확진자 224,914명에 사망자 1,579명으로 치솟았다. 게다가 미국의 금수 조치와 팬데믹으로 인한 제약 때문에 병동은 물론이고 다른 질병에 대처할 기초 의약품마저 부족해졌다.

 

팬데믹의 결과로 2020년 쿠바 GDP는 11% 줄어들었다(인근 지역 국가들은 평균 -6.8% 정도였다). 이는 “특별 기간” 위기 가운데서도 최악의 해였던 1993년 이래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당시 쿠바 GDP는 14.9% 급감했다). 나아가 올해 상반기에도 -2%로 또다시 역성장을 기록했다. 쿠바 공산당 관료들이 설정한 경제성장률 목표치 6%에 도달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러한 지속적 위기는 팬데믹의 부침이나 백신 문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세계 전체, 특히 낙후되고 종속적인 국가들이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다). 그보다는, 쿠바에서 외화 획득의 주요 원천으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 관광산업(전문 서비스 수출과 송금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이 코로나로 가장 직격탄을 맞았다는 데 원인이 있다. 해외 유입 관광은 고용 창출과 더불어 민박과 임시 택시, 팁 등 각종 비공식 경제 부문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이는 국가 입장에서 수입 증대를 뜻하며, 광범한 주민층이 의존하는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② 베네수엘라 위기

 

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Hugo Chávez, 1954~2013. 1999년에 대통령 당선] 집권 이래 쿠바의 주요한 전략적 동맹이 됨으로써, 과거 소련이 1991년 붕괴하기 전까지 수행했던 역할을 일정하게 담당했다. 그러나 경제‧사회 위기가 깊어지고 장기화하자,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현 베네수엘라 대통령]가 이끄는 베네수엘라 정부는 쿠바로부터의 서비스 수입(예컨대 의료서비스)을 대폭 감축하고 직접 투자도 크게 줄였다. 무엇보다 쿠바의 전력 생산에 필수적인 연료 지원 역시 상당히 축소함으로써, 과거 “특별 기간”의 상징과 같았던 매일 4~12시간씩의 정전이 재발하고 있다.

 

 

③ 화폐 통합

 

쿠바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친(親)시장 정책을 가속하며 자본주의 부활을 조장했다. 쿠바 공산당 관료들이 지난 당대회에서 자본가들의 투자를 돕기 위한 거시경제 재편을 의미하는 “화폐 통합”(“정돈사업”(ordering task)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짐)을 결정한 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990년대 중반, (부분적으로는 1994년 말레코나조 봉기의 결과로) 쿠바 정부는 이중화폐제를 도입한 바 있다: ‘쿠바 페소’(CUP) 외에 ‘태환 페소’(CUC)를 새로 만들어 미국 달러를 비롯한 외국 화폐를 내부적으로 대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쿠바 일반 국민이 1달러를 얻으려면 24페소를 내야 했던 반면, 국영기업은 달러와 1:1 고정 환율로 교환이 가능했다. 그간 쿠바 정부는 화폐 통합을 미뤄왔지만, 결국 최악의 순간에 이중화폐제 폐지를 결정함으로써 빈곤과 경제적 난국을 극도로 악화시키게 됐다.

 

화폐 통합의 결과로 ‘태환 페소’가 사라지면서, ‘쿠바 페소’의 가치는 2,400% 폭락했다. 2006년부터 쿠바 중앙은행 이코노미스트로 재직한 파벨 비달(Pavel Vidal)은 올 연말 물가상승률 전망치가 기존 500%에서 900%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임금(30달러에서 87달러로 인상)과 연금을 올리긴 했지만, 이런 온건한 수준의 인상은 인플레이션 앞에 철저히 무력화됐다. 비달은 (아직 물가상승률이 이 정도로 치솟기 전이었던) 지난 3월 발표한 논문에서 ‘구매력 기준으로 평가할 때 임금은 15%가량 줄어들 것’이라 예측했다.

 

화폐 통합 이후 화폐의 이중 유통은 막을 내렸지만, 문제는 여전히 달러에 크게 의존하는 이중적 경제구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데 있다. 식품이나 개인 위생용품 같은 여러 생필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은 직불카드 시스템을 통해 외국 화폐만 받는다. 이에 따라 공산당 고위층을 비롯해 달러화를 구할 수 있는 집단과 ‘쿠바 페소’만 가진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이 더 심해지고 있다.

 

가뜩이나 기본 소비재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쿠바 정부는 결정타를 날렸다. 자유 태환 화폐로 거래하는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데 필수적인 달러화 은행 예치를 일시 중단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유로화나 스위스 프랑 등 다른 외국 화폐로 거래하는 데 소요되는 금융비용은 개별 시민들이 떠안게 됐다. 쿠바 정부는 이 조치가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달러를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기 힘들게 만들었다)에 대한 응답’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비달은 이를 통해 쿠바 정부가 또 다른 이득을 누릴 것이라고 짚었다. 곧, 달러화를 흡수해 수입 대금을 지불하는 한편 그 비용은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 현상은 장기적으로 정세를 중첩 결정하는 다음의 두 가지 구조적 조건과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첫째, 외부 조건으로서 미국의 봉쇄와 “트럼프식” 적용. 둘째, 내부 조건으로서 1990년대 이후 쿠바 공산당이 “베트남 모델”에 따라 추진하고 있는 자본주의 부활.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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