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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021 변혁당 정치캠프

“내 삶을 바꾸는 시간 사회주의 24시”

 

 

정의로운 전환으로 가는 길

 

노동자,

구제와 보호의 대상이 아닌

전환의 주체로!

 

 

* 이 기사는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의로운 전환’팀이 이번 정치캠프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들어가기에 앞서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기후위기’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녹아가는 빙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 나무 없이 황폐화된 토양? 분명 이런 모습도 기후위기의 한 장면이긴 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상의 급작스러운 변동으로 발생하는 폭염과 혹한은 가장 취약한 계층의 목숨을 먼저 앗아가고 있다. 생물 다양성이 파괴됨은 물론이고, 이로 인한 세계적 식량위기가 촉발됐다. 한국도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기상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10조 7천억 원에 달했음이 확인됨에 따라, 기후위기가 더 이상 먼 나라 북극곰만의 이야기가 아님이 명백해졌다. 환경파괴로 인한 인수 공통 감염병(사람과 동물이 같이 감염되는 질병) 확산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듯, 기후위기는 우리가 지금 당면한 생명과 삶의 위기이자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환경파괴’만 문제일까? 그렇지는 않다. 과거에 마차에서 자동차로 변화했던 것만큼의 질적 변화를 낳을지는 불확실하지만, 일단 세간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자동화 시스템으로의 산업 재편은 지금까지 자본주의 산업의 특징이었던 ‘굴뚝산업’에서 ‘탈탄소’로의 변화를 요구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고되어 있다. 즉, 노동의 불안정화와 유연화 속에서 위계화‧서열화‧분절화가 결합하며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 정세는 노동계급의 대응이 ‘노동의 생태적 전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노동계급이 생산의 주체이자 새로운 대안 세계를 건설할 능동적이고 선도적인 주체로 위치하기 위해 ‘정의로운 전환’을 무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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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환’의 궤적

 

이쯤에서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의로운 전환’이 최근 갑자기 나오기 시작한 요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 석유‧화학‧원자력노조(OCAW)의 토니 마조치(Tony Mazzocchi)가 ‘정의로운 전환’을 제안한 것이 이 요구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마조치가 제안한 ‘정의로운 전환’의 골자는 지속 가능한 경제 체제에서 석유‧화학‧원자력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보상‧교육‧재훈련 기회를 부여하는 ‘노동자를 위한 슈퍼펀드(Superfund for Workers)’였다.

 

이후 캐나다 에너지화학노조(현재는 캐나다 통신‧에너지‧제지노조)가 비슷한 제안을 내놓았고, 1999년엔 캐나다노동조합연맹(CLC)이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요구하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이들이 제기하는 ‘정의로운 전환’은 공정함, 재고용 또는 대체고용, 보상, 지속가능한 생산, 프로그램 등 5개 축으로 구성됐는데, 그 의미는 각각 다음과 같다: △기존 산업에 의존하던 노동자와 공동체를 정당(공정)하게 처우할 것 △노동기간 손실 없이 고용이 지속될 수 있을 것 △고용 지속이 불가능할 경우 정당한 보상을 제공할 것 △전환의 핵심 요소는 더욱 지속가능한 생산과 이를 지지할 서비스 부문으로의 이동일 것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적합한 프로그램을 준비할 것.

 

요컨대 ‘정의로운 전환’은 지속 가능한 녹색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일자리 감소에 대한 불안을 불식하고, 노동자와 지역 공동체의 이익이 보전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노동조합연합(ITUC)도 ‘정의로운 전환’을 노동조합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원칙으로 세웠고, 2000년대 이후엔 국제기구와 정치권, 기후운동 진영 전반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됐다.

 

 

 

어떤 ‘전환’?

 

앞서 짚었듯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구호는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개념이 정의되어 있는 법안 2개(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이행 기본법(안), 기후위기 대응 기본법(안))가 제출돼 있다. 이 2개의 법안은 ‘정의로운 전환’을 △탈탄소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취약계층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이행 기본법) 혹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일자리 소멸에 따른 노동자와 취약계층 피해를 최소화하고 권익을 보호하는 정책(기후위기 대응 기본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자를 비롯한 ‘취약계층’의 피해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대책에 불과한 셈이다.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접근이 이념적 기반과 정책 내용, 추구하는 방향과 방식에 따라 상이하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오늘날 기후위기를 거론하지 않는 세력은 없다.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은 관용차로 전기차를 주문했고, 민주당 대표 송영길은 지난 6월 16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40%로 높여 발표했다. 자본가들도 기후위기를 입에 올리긴 매한가지다. 현대자동차 부사장과 포스코 회장, SK발전 대표이사가 정부의 ‘탄소중립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여기엔 큰 함정이 있다. 이들이 말하는 ‘녹색’이 우리가 생각하는 ‘녹색’과 다르다는 점이다. ‘초록이 동색’이 아닌 시절이 도래한 셈이다. ‘정의로운 전환’에 있어 특히 중요한 에너지 부문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문재인 정부 ‘탄소중립위원회’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지만, 실제로 탈탄소나 ‘정의로운 전환’의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노후 발전소 10개를 폐쇄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7개의 신규 화력발전소 건설을 결정했는데, 이 가운데 6개가 SK‧삼성‧포스코‧두산 등 재벌 대기업 소유였다. 이들의 ‘전환’은 시장주의적 에너지 전환이다.

 

이러한 상황은 운동의 이념과 정책, 주체, 경로와 방법의 차이를 반영하는 동시에 바로 지금이 ‘탈탄소’를 둘러싼 계급투쟁의 구체적 내용을 표현할 수 있는 때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자본주의 체제는 그 자체로 과잉생산을 내재화한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생산과 소비의 과잉엔 물품뿐 아니라 에너지도 포함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연과 인간을 수탈하며 과잉생산‧과잉소비를 만들어냈고, 과잉축적이 필수적인 이 체제는 생산‧유통‧소비 등 모든 영역과 부문에서 ‘과잉’이라는 쓰레기를 쌓아 올려 기후위기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오늘날 이미 한계에 봉착한 자본주의 체제를 바꿔낼 사회생태적 변혁이 필요한 이유다.

 

 

 

정의로운 전환의

정치를 만들기 위해

 

‘정의로운 전환’은 필연적으로 기후위기를 빚어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변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 체제의 주요 모순인 노동 문제와 노동-자본 관계 문제에 대한 전복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 접근은 4가지 범주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먼저 노동시간 문제다. 노동시간 단축은 생산과 소비 양 측면에서 탄소 배출에 기여하는 주요 요소를 통제할 수 있는 기제로 제시되고 있다. 이는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이른바 ‘4차 산업혁명’과 인구 감소와도 연결된다. 이때 요구되는 노동시간 단축은 실업 감소와 일자리 창출은 물론이고, 노동계급의 공세적인 기후위기 해결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고용과 일자리 문제다. 산업 전반이 재구성되며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은 상수일 것이다. 여기서 고용은 일자리의 절대적 총량은 물론이고,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로 생겨날 일자리를 둘러싼 배분의 문제다. ‘정의로운 전환’에 걸맞게 저임금‧불안정 노동이 아닌 양질의 일자리를 노동자들의 저항을 토대로 만들어내야 한다.

 

이와 연동되는 세 번째 접근은 ‘국가가 책임지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이 저임금‧불안정 노동체제를 전제한 채 지불능력을 가진 일부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노동자에게만 적용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된다면 결국 새로운 형태의 자본 집중이 나타나게 될 것인데, 이는 거꾸로 생각해본다면 국가가 책임지고 고용‧일자리‧소득을 제대로 보장해야 함을 의미한다.

 

마지막은 기업과 자본에 대한 대항 주체로서 노동이 어떻게 권리를 확장해 나갈 것인지의 문제다. 앞서 다룬 모든 문제는 ‘타협’이나 ‘선의’ 같은 말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와 저임금‧불안정 노동체제를 만들어낸 기업과 자본에 책임을 묻는 투쟁이 있어야만 해결 가능한 문제다.

 

 

 

기후정의 동맹,

기후정의를 위한

사회 총파업을 제안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환경‧기후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대중적 공감이 커지고 있으며, 스스로를 변화의 주체로 여기는 흐름도 확대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사회적 이익을 위해 기술적 진보를 활용하면서 평등하게 공존하는 것이라면, 위기를 빚어낸 자본 중심의 기술발전은 지양해야 한다. 기후위기 해결은 자본주의적 접근으로는 이뤄질 수 없으며, 공동체가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급진적이고 강력한 ‘기후정의 동맹’을 형성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넘어선 ‘정의로운 전환’을 만들어낼 주체를 모아내는 일이 필수적이다. 노동조합과 사회운동, 환경운동, 청소년, 학생, 여성 등 광범위한 사회적 동맹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매개이자 핵심에 노동계급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점점 더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구와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 대중적 의지와 요구를 보여주는 ‘행동’이 필요하고 가능한 때다.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더욱 급진적인 운동이 전개될 수 있다. 2022년 대선을 앞둔 지금, 기후위기 대응에 미적지근한 정치권력에 맞선 기후총파업을 전사회적으로 준비해 나감으로써 기후정의 운동의 발판을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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