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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마지막

경제정책방향,

우리에게 연명을

강요하지 마라

 

 

백종성┃정책위원장

 

 

 

최근 150개의 이력서를 남기고 고독사한 30대 청년의 죽음이 알려져 충격을 던진 바 있다. 대형가방 두 개, 중소기업 영업직으로 일하던 명함, 소주병, 쓰레기들과 함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5장씩 들어 있는 파일이 30개나 발견됐다고 한다. 오피스텔 관리비를 3개월이나 밀리면서도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친 청년의 죽음은, 비정규 불안정 일자리를 전전하는 ‘연명’을 강요당하는 대중의 상황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일하고 싶어도,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적인 삶은 손에 닿지 않는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공공부문의 불가역적 확대와 함께 국가책임으로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 한, 우리는 이런 죽음을 막을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연명 수준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지난 6월 말에 나온 <2021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이건 7월 중순 발표한 <한국형 뉴딜 2.0>이건, 대중이 ‘연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 정책의 대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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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말,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자본을 위해 할 수 있는 바는

모두 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올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2021년 4.2% 경제성장, 취업자 25만 명 증가, 경상수지 753억 달러 흑자를 전망했다. 2020년 310조 원 규모 지원대책에 이은 2021년 투자 활성화와 수출 보장 등으로 “빠르고 강한 회복”을 이뤄냈다며 자평한다. 정부는 향후 경제 여건으로 △산업부문별 불균등 회복 △경제-사회구조 대전환 가속화를 전망하는데, 이에 따라 ‘완전한 경제회복’과 ‘선도형 경제구조로의 대전환’을 목표로 걸었다.

 

자본가 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혔다. “완전한 경제회복과 미래전략산업 육성 등 선도형 경제구조 전환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환영”(경총), “제조업의 친환경‧디지털 전환을 지원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조치를 환영”(대한상의), “하반기 추경 등 재정보강으로 경기‧고용 리스크를 극복하고, 신산업 육성으로 산업경쟁력을 강화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높게 평가”(전경련) 등등.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경제정책방향인 올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자본의 이윤축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바를 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세부 항목을 보면, △새 성장동력 확보와 한국판 뉴딜 가속추진 △빅3 미래전략산업 집중 육성 △주력 제조업과 유망서비스업 혁신 △제2벤처 붐 시대 지속 지원 △핵심 인력 양성으로 생산성 제고 △구조변화 적응력 제고와 친환경 저탄소경제 전환 대응 △선제적 사업재편 지원체계 구축 △인구 리스크, 저출산 대응 강화 △노동-재정-공공 등 부문별 구조혁신이 있다. 항목은 복잡하나, 메시지는 명확하다. ‘정부는 자본의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7월 14일 발표한 <뉴딜 2.0>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서는 ‘메타버스 산업 육성책’ 등을 추가했는데, 이런 행보가 유행하는 아이템에 죄다 ‘창조경제’ 이름을 붙인 박근혜 정부의 행보와 무엇이 다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 뒤에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구조적 조건이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전반 5.0~5.2%에서 2010년대 후반 2.7~2.8%로 추세적으로 하락했다.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구조적 조건에 더해, 팬데믹 이후 한계기업(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 누적이라는 조건이 더해지고 있다. 현재 부채비율 200% 초과 기업은 2020년 6월 말 12.4%에서 2021년 말 15.3%로 늘었으며, 이는 2013년(15.7%) 이후 가장 높은 상황이다. 자본은 시장의 자유를 부르짖으면서도, 자신의 축적위기에 대해서는 더 많은 국가지원을 요구한다.

 

 

 

정부 재정을 자본의 이윤으로

바꾸는 과정

- 노골적 자본 부양과 규제완화

 

정부는 반도체와 배터리, 백신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고 세제‧자금지원을 대폭 확대한다고 한다. 구체항목을 보면, 내년에도 빅3 산업 지원 예산에 2021년 지원금액인 4조 2천억 원 이상을 배정할 예정이다. 이런 과제는 ‘한국형 뉴딜’에서 밝힌 자본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며, 그 수혜자는 두말할 것 없이 재벌이다.

 

우선 자동차 산업을 보자. △연내 전기차 23만 9천 대, 수소차 2만 6천 대 보급 목표 달성 △2021년 8월 수요창출을 위한 친환경차 구매목표제 시범사업 개시와 2022년 본사업 추진을 위한 법적 근거‧인센티브제도 마련 △렌터카‧물류‧운송‧대기업에 친환경차 구매목표 부여 △전기차 구매보조금 조기 소진 우려 해소를 위한 지자체별 수요 조사와 물량 재배정 △지방비 확보 현황 지속 점검 △친환경차 보급 촉진을 위해 취득세 감면기한 연장 △하이브리드차 개별소비세 감면기한 연장 추진 등 노골적인 재벌 지원책을 담고 있다. 7월 29일 정부 ‘혁신성장 빅3 추진회의’에 따르면, 정부는 전기‧수소차 대중화를 앞당기기 위해 2025년까지 도보 5분 거리 생활권을 중심으로 전기수소차 완속충전기를 50만 기 이상 구축하겠다고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중심으로 급속충전기 1만 2천 개소 이상, 도보 5분 거리 생활권을 중심으로 완속충전기는 50만 기 이상, 버스‧택시차고지를 중심으로 상용차 충전소 2,300개소 이상을 구축한다. 수소충전소는 하반기 중 70기 이상 추가 구축해 연말까지 총 180기를 구축한다고 한다. 그 수혜자 역시 재벌이다.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 중심으로 추진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지원, R&D(최대 40~50%)‧시설투자(최대 10~20%) 세액공제 추진, 전력 인프라 구축에 최대 50% 지원 등을 담고 있다. 의료‧바이오 산업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신약개발사업, 의료기술개발사업 등 30조 원에 달하는 재정을 투입한다고 한다. 이는 자본의 개인정보 접근권 규제완화와 연동한다. 이미 올 1월에 정부는 자본의 개인정보 접근규제를 대폭 완화한 ‘데이터 3법’을 통과시켰다. 각급 의료기관에 저장된 임상데이터를 의료 자본에 개방함으로써 보건의료 산업화-민영화를 촉진할 중요한 법적 근거를 만든 지금, 정부는 이를 더욱 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결국 새로운 산업 기반 구축을 정부 재정으로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다. 이처럼 막대한 재정투입은 산업에 대한 공적 통제와 하등 연결되지 않은 채, 모두 자본의 이윤으로 바뀐다.

 

 

 

악화하는 고용상황에도

공공부문 확대를 통한

근본적 일자리 확대는 없다

 

이렇듯 자본에게는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하지만, 노동자 민중의 생계대책은 그저 연명 지원 수준에 그친다. 정부는 ‘고용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며 자화자찬하지만, 외견상 고용지표 호전은 착시일 뿐 불안정 단기 일자리가 늘고 있다. 당장 2021년 상반기 실업급여 지급액은 6조 4,843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실업급여가 6조 원을 초과한 것은 올해가 최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실업급여를 9개월 한도까지 받거나,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취업상태와 실업상태를 오가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2021년 7월 <고용동향> 역시 불안정노동 확대를 드러낸다. 30대 취업자는 12만 2천 명 줄어 17개월 연속 감소했지만, 60세 이상 취업자 증가는 36만 1천 명, 20대 증가는 16만 6천 명으로 일자리 증가분 중 높은 비중을 단기 일자리가 차지하고 있다.

 

공공부문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지 않는 한, 400만 명 이상의 비자발적 실업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이런데도 정부 일자리 정책의 중심은 고령층 일자리를 제외하면 ‘민간 중심’이다. 즉, 한국형 뉴딜을 통한 자본의 이윤축적 과정에서 일자리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우선, 이런 대책은 그 목적이 이윤축적이지 고용보장이 아니다. 더군다나 심각하게 유연화된 한국 노동시장에서 자본의 이윤창출 과정을 통해 400만 이상의 비자발적 실업을 개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장 2000년 25.7명이었던 취업유발계수는 2015년 11.8명으로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노동력을 쥐어짜 이윤을 창출하는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실업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한국형 뉴딜’ 같은 자본 지원책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고용 문제 해결 역시 진전시킬 수 없다. ‘누군가 정규직이 되는 것’이 ‘나 자신이 정규직이 될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 해석되는 지금, 공공부문의 대폭적이고 불가역적인 확대와 함께 국가책임 일자리를 대규모로 창출하지 않는 한, 고용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한 때

오히려 실노동시간 확대를

주문하는 정부

 

지금이야말로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눌 때다. 돌이켜보자. 2017년 5월 1일 민주당이 발표한 제19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은 ‘임기 내 1,800시간대 노동시간 실현’, ‘실노동시간 단축 등 일자리 나누기로 민간부문 일자리 50만 개 창출’,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위한 칼퇴근법 도입’을 명시했다. 주말과 국경일 등 휴일을 제외하면 ‘주 40시간제 실질화’를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실제 추진한 것은 임금-노동시간 유연화를 통한 실노동시간 연장이었다. 2017년 5건에 불과했던 ‘특별연장근로’ 인가 횟수가 2018년 204건, 2019년 908건, 2020년에는 무려 4,156건으로 폭증한 상황에서조차, 정부는 자본의 더 많은 이윤창출을 위한 유연생산체제 강화로 노동자 민중을 내몬다고 한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임금정책으로 공공기관 중심 직무급제-임금피크제 확대를 제출하고 있으며, 노동시간 유연화 역시 지속적으로 추진한다고 한다. 소위 ‘주 52시간제 현장 안착’ 방안으로는 “기 개편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연구개발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 (1 → 3개월) 등 보완제도 확산”을 제출했다. 3번에 걸친 단계적 52시간제 도입으로도 모자라, 노동시간 유연화를 통한 실노동시간 확대를 정부가 주문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연명 이상의 삶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모순의 누적에 더해 코로나19 위기는 대중 생존의 위기를 심화하고 있다. OECD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경기부양에 277조 원을 투입한 상황이다. 국내 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이 1,405조 원에 달하는 지금, 대체 그 많은 재정이 왜 자본을 위해 쓰여야 하는가? 하루하루 연명에 안도하는 삶을 바꿀 권리를 요구하자. 사회변혁노동자당은 국가책임 일자리 운동을 통해 이 요구를 확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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