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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8.16 19:46

폭염과 전력난을

활용하는 세력들

 

 

구준모┃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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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끝난 장마와 이른 폭염으로 시작된 무더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50일 넘게 이어진 폭우로 고생한 지난여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기후위기가 바꾼 일상에 하루하루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은 때, 7월 초부터 ‘여름철 전력대란 가능성’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지난 7월 1일, 산업자원부는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 및 대책>을 발표했다. 전력공급 능력은 작년과 비슷하나, 산업생산 증가와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증가해서 전력예비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만약 전기 소비량(전력수요)보다 전기 생산량(전력공급)이 부족하게 되면 전국적으로 정전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산업부는 여름철에 정비할 계획이던 발전소의 가동을 앞당기고, 국민들에게 에어컨 사용 절제를 요청하기로 했다.

 

또한 산업부는 ‘수요자원 반응’(DR) 시장을 활용해서 전력수요를 낮추겠다고 했다. 문승옥 산업부 장관은 7월 12일 기업들을 만나 이에 관한 협조를 요청했다. ‘수요자원 반응 시장’(DR 시장)이라는 생소한 제도는 2014년에 도입됐다. 여기서 ‘수요자원’이란 ‘아낀 전기’를 말한다. 그리고 공장‧건물 등에서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기업이 원래 사용할 전력량보다 전기를 적게 사용할 경우, 자신이 아낀 전기를 팔 수 있다. 아낀 전기가 시장에서 거래되어 돈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아낀 전기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전력량이다. DR 시장의 논리에 따르면 이렇게 아낀 전기를 통해서 전력 생산에 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거래소를 통해 한국전력이 수요자원을 구매하는 게 국가 전체적으로 이득이다. 그러나 이는 공적 자금으로 대기업을 지원하라는 요구의 다른 버전일 뿐이다.

 

 

 

폭염은 핵발전 부흥 기회?

 

산업부의 여름철 전력수급 계획이 발표되자 불똥은 탈핵 정책으로 튀었다. <매일경제>와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탈핵 정책 때문에 여름철 전력 비상사태가 발생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핵발전소 설비용량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다. 2017년 이후 고리 1호기(587MW)와 월성 1호기(679MW)를 폐로했지만, 신고리 4호기(1,400MW), 신한울 1호기(1,400MW)가 가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폐쇄된 것보다 신설된 핵발전소 용량이 2배 이상이다. 여기에다 신한울 2호기와 문재인 정부가 다시 건설하기로 결정한 신고리 5‧6호기가 1~3년 내에 가동하면 핵발전소는 더 늘어난다.

 

이렇듯 보수언론과 핵산업계는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추진하지도 않은 탈핵 정책을 꼬투리 삼아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7월 한 달 동안 우려하던 전력수급 비상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핵산업 부활 여론이 고개를 든 게 보수언론과 야당 탓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원전 수출 정책과 SMR(소형모듈원전)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원전산업 공동 참여를 포함해 해외 원전 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SMR 개발을 계속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시장으로 전력수요 감축?

 

한편, 앞서 언급한 ‘DR 시장’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슈로, 사회운동 내에서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아, 제도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토론이 필요하다.

 

DR 시장은 시민이 낸 전기요금을 대기업에 지원하는 제도이자, 대기업이 참여하는 인위적 시장 조성을 통해 전력수급을 조정한다는 점에서 공공적 에너지 관리와는 대립하는 정책이다. DR 시장이 처음 도입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DR 시장에 참여한 기업이 한전으로부터 받은 자금은 5,593억 원에 이른다. 그중 전력 감축 없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급한 ‘기본정산금’이 4,913억 원으로 91%를 차지했다. DR 시장은 2019년 2,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는데, 기본정산금 비율이 유지됐다면 2019년에만 공적 자금 1,822억 원을 아무런 대가 없이 기업에 퍼준 것이다. 2019년까지 누적으로 계산하면 7,000억 원가량이 (한전에 전기요금을 낸)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기업으로 흘러 들어간 셈이다.

 

전기 사용이 급증하는 한여름과 한겨울 시기 전력량 감축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를 시장으로 해결한다는 발상은 효과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지금의 DR 시장은 민영화‧사유화된 에너지 시장을 전제로 한다. 제대로 작동하는지조차 확인하기 힘든 DR 시장이 아니라, 폭염 시기 정부가 작업중지권을 발동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한편 유급휴가를 늘리는 게 전력수요 감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훨씬 바람직한 대안이다. 올여름 8월 7일까지 신고된 온열질환 사망자는 18명으로 2020년 전체 사망자 9명을 훌쩍 뛰어넘었고, 온열질환자는 1,21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배나 많았다.

 

 

 

다른 권력과

다른 전력 만들기

 

기후위기 속 나날이 심해지는 폭염은 다른 전력 시스템을 만들 기회이기도 하다. 핵발전 중흥을 꿈꾸는 세력과 DR 시장 확대를 꿈꾸는 세력이 공유하는 가치관은 ‘에너지가 돈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윤을 위한 에너지 생산은 기후위기 해결에도 전력수요 감축에도 성공할 수 없다. 민중의 필요에 근거하고 지구 생태계의 한계를 고려한 에너지 생산과 분배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본이 장악한 전력을 우리 손으로 되찾아 오는 것은 ‘다른 권력’을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다른 전력’은 ‘다른 권력’을 따라 형성된다. 무더위를 더욱 불쾌하게 만드는 전력난 논란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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