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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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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와

‘민주적 계획경제’의

가능성

 

 

<소개하는 책>

폴 애들러(한은경‧김윤진 옮김), 『1%가 아닌 99%를 위한 경제』, 21세기북스, 2021.

 

 

강후┃서울

 

 

 

소박한 상상을 한번 해보자.

 

나는 전기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하루 5시간씩 1주일에 4일만 근무하고 있지만,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기에 부족함 없는 급여를 받는다. 애초에 큰돈 들이는 일이 거의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국가가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공공주택으로, 관리비 정도만 내면 언제까지고 살 수 있다. 몇 년 전 우리 동네가 속한 지역 경제위원회(주민과 지역 노동자 가운데 선출된 대표자들이 모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지역 차원의 주요 경제 사업을 결정)가 리모델링 사업을 의결하고 재정을 투입해 공사까지 모두 마쳤기 때문에, 불편함 없이 쾌적하게 지낸다. 병원비로 목돈이 나갈 일도 없다. 지역마다 거점 공공병원이 자리 잡은 데다, 기초 단위에 촘촘하게 배치된 국공립 보건소‧의원에서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대학 생활도 시작했다. 일주일 중 3일은 출근하지 않는 데다, 일하러 가는 날도 근무시간이 5시간뿐이라 이른 아침에 바싹 당겨 일하면 오후부터는 학교에 나갈 수 있다. 근무시간 조정은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작업장위원회(기업이나 사업장, 혹은 그 하위부서 노동자들이 직접 혹은 대표자를 선출해 경영에 관한 사항을 결정) 승인을 거쳤다. 대학도 국공립기관으로서 무상으로 다닐 수 있는 데다 국가 차원에서 책임지고 재정을 투입해 상향평준화를 계속해왔고, 소정의 입학 자격 평가만 통과하면 되기 때문에 별다른 부담 없이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택했다. 나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돼서 공부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대학이나 지자체가 입학 자격 평가를 위한 학습 프로그램도 무료로 운영한다. 덕분에 돈 걱정이나 지옥 같은 경쟁 없이 입학 준비를 할 수 있다.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만 해도 딱히 대학에 갈 생각은 없었다. 대학은 공부를 계속하고 싶으면 가는 곳일 뿐,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취업에 어려움이 없을뿐더러(국가가 매달 기업별 인력 수요를 종합해 지자체 일자리센터에 제공하고, 희망자는 이를 통해 즉시 취업이 가능하다) 차별대우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취직했다. 그런데 재작년에 우리 회사 작업장위원회 대표자로 선출돼 국가 경제위원회 대의원(국가 차원의 경제계획 담당. 지역과 산업별로 선출된 주민과 노동자 대표들로 구성되며, 분야별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는다)으로 파견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지역과 산업 차원의 수요와 공급을 계획하고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목표들(특히, 탄소 배출의 절대적 감축)과 조율하는 여러 논의에 참여하면서, 무엇보다 회계 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 공부가 적성에 맞는다면, 국가‧지역 경제위원회에서 자문단 역할을 하는 전문가 직종에 지원해보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참에 대학 입학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가능성과 모순

 

이제 꿈에서 깨보자. 현실의 나는 아예 ‘비(非)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며, 실질적 실업자다.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이미 서른이 넘은 나를 받아주는 곳은 흔치 않다. 계약직이나 하청, 안 되면 알바라도 찾아야 하는 내게 ‘내 집 마련’은 비현실을 넘어 초현실적이다. 이 자본주의에서 하루살이로 수십 년을 연명하는 것보다, 민주적 계획경제가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들만을 위한 자본주의-왜 민주사회주의는 돌파구가 되는가”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의 저자는 경영학자다. 그는 생산의 사회화를 크게 진척시킨 현대자본주의 거대기업의 경영방식을 분석하면서, 이들 기업에서는 이미 ‘시장 경쟁’이 아니라 ‘계획과 참여’에 입각한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들 역시 자본주의 기업이기에, ‘이윤을 위한 생산’이라는 근본 문제를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이 시행하는 ‘계획적 경영’의 단초를 적용해 민주적 계획경제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는, 주요 기업을 사회화함으로써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해야 모순을 근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저자는 기업/산업/지역/국가 차원에서 경제 계획을 민주적으로 수립하도록 주민과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하거나 대표자를 선출/추첨하고 이들에게 결정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에서 구구절절 늘어놓은 ‘상상’은 저자가 밝힌 민주적 계획경제의 주요 원리를 적용하고 살짝 양념을 쳐 묘사해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논지에는 치명적 모순이 있다. 이러한 민주적 계획경제, 곧 사회주의를 ‘어떻게’ 쟁취하느냐에 관해 저자는 대단히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미국 민주당이 한계는 있지만, 그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며 ‘미국 민주사회주의자 그룹’(DSA)의 전략을 옹호한다(기본적으로 이 책은 미국의 상황을 다룬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노동자 경영참가’를 옹호하는 뉘앙스도 풍긴다. 이런 방식이 제도정치에서든 생산현장에서든 자본가계급과 자유주의 세력에 포섭되는 것으로 귀결한다는 점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사회주의에 이르는 길’은 개량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이런 모순을 명확히 하고 노동계급의 독자적‧혁명적 정치(그 구체적 조직 형태로서의 사회주의 정당)를 대안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전제하에, 저자가 제시하는 민주적 계획경제의 가능성과 상은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자신 있게 사회주의를 대중 앞에 내놓으려면, 민주적 계획경제가 충분히 가능하며 더욱 풍성한 삶을 제공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이 책에서 그런 구상들을 잘 추려낸다면, ‘상상’을 현실로 만들 풍부한 논지를 획득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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