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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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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10.0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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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 수도 아바나의 한 광고판.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큼직하게 쓰인 문구 아래 작은 글씨로 "가난한 자의, 가난한 자에 의한, 가난한 자를 위한"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쿠바 체제의 실상은 혁명의 이상으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있다. [사진: wikipedia]

 

 

[번역]

 

 

쿠바: 7월 11일의

원인과 결과(2)

 

 

* 번역자: 지난 7월 11일, 쿠바에서 대규모 군중시위가 벌어졌다.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상징처럼 각인된 쿠바에서 터진 대중적 항의 물결은 ‘공산주의 독재에 맞선 자유민주주의 항쟁’ 혹은 ‘제국주의 세력의 사주를 받은 반(反)혁명 음모’라는, 상반된 것 같으면서도 겹치는 이데올로기적 해석을 양산했다. 낯선 일은 아니다. ‘사회주의’ 이름이 붙은 정권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분노가 표출될 때마다 이런 구도는 수도 없이 반복됐다. 그러나 현재 쿠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이런 이데올로기적 판결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쿠바 민중의 분노가 누적된 이유는 무엇이고, 그것은 왜 지금 시기에 폭발했을까? ‘사회주의’를 내걸었던 쿠바 공산당 정권의 실제 행보는 사회주의적이었을까? 여기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과 압력은 어떻게 작용한 것일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아 나감으로써 우리는 쿠바 민중의 시위가 어떤 성격을 내포한 것인지, 쿠바 체제의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변혁정치>는 지난 호와 이번 호에 걸쳐 이번 쿠바 시위의 배경과 현 쿠바 체제의 모순을 분석한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기사는 좌파 매체 <Left Voice> 7월 25일 자로 게시된 Claudia Cinatti의 글 “Cuba: Causes and Consequences of July 11”의 후반부를 압축해 번역한 것이다.

 

본문 가운데 소괄호()는 원문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독해 편의를 위해 문장을 자른 것이고, 대괄호[]와 주석은 번역자가 덧붙인 것이다.

 

 

- 번역: 기관지위원회

 

 

 

(지난 호에 이어)

 

미국의 봉쇄

(실재하는 제국주의)

 

쿠바에 대한 미국의 금수 조치는 내년이면 60년을 맞는다. 이는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장기 지속한 제재다. 피그만 침공 실패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1 당시 미 대통령 케네디가 1962년 2월 7일에 부과한 조치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봉쇄‧금수 조치가 그렇듯, 쿠바에 대한 제재는 최종 협상에서 양보를 얻어내거나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가혹한 조건을 강요하기 위한 제국주의적 강탈 수단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쿠바와의 관계 “해빙”을 추진했는데, 이는 기존 강경책이 실패했으며 최선의 전술은 ‘포섭’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물론, 라울 카스트로[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1926~2016)의 동생]와 쿠바 공산당이 보여준 호의도 한몫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15년 말 외교관계 복원과 오바마의 쿠바 방문 같은 정치적 제스처를 취했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는 쿠바 여행‧관광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고 송금을 허용하는 한편,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수 조치만큼은 그대로였다.

 

 

 

1 미국 정부가 1959년 쿠바 혁명 직후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1961년 우익 쿠바계 망명자들을 게릴라로 침투시키려 했던 시도가 ‘피그만 침공’이다. 이 침공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곧이어 1962년에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느낀 쿠바와 소련이 협력해 쿠바에 소련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 했고, 이를 파악한 미국이 소련과 군사적 대치에 돌입하게 된다. 이 사건이 ‘쿠바 미사일 위기’로, 종국에는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 기지를 철수시키면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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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3월, 당시 미 대통령 오바마가 쿠바 수도 아바나 혁명궁전을 찾은 모습.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미국 대통령이 이 나라를 방문한 건 처음이다. 오바마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라울 카스트로. [wikipedia]

 

 

이후 집권한 트럼프는 오바마 시절의 완화책을 뒤집으며 봉쇄를 강화하는 동시에 추가 금융 제재까지 부과했고, 쿠바를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이와 같은 조치는 중대한 결과를 낳았다. 1996년 제정된 헬름스-버튼법2 제3편에 따르면, 미국은 쿠바와 거래하는 외국 기업이나 개인을 기소할 수 있다. 경제학자 카멜로 메사 라고(Carmelo Mesa Lago)는 이에 따른 청구액이 승인된 것만 80억 달러[약 9조 원]에 달한다고 지적한다(미확정된 건도 수천만 달러어치다). 트럼프는 쿠바군(軍)이 운영하는 호텔이나 식당을 미국 관광객이 이용하지 못하게 막았으며, 쿠바로 가는 유람선 여행도 금지했다. 또한 연간 송금액을 4천 달러[약 4백만 원]로 제한하고, 쿠바와 거래하는 외국 은행이나 쿠바의 원유 수입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함으로써 사업활동과 금융거래를 틀어막았다.

 

 

 

2 Helms-Burton Act. 1996년 미국이 쿠바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제정한 연방 법률. 공화당 상원의원 헬름스와 하원의원 버튼이 발의했다. 참고로 이 기사 영어판 원문에는 법안 년도가 ‘1966년’으로 나와 있으나, ‘1996년’의 오기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자 쿠바 정권은 미국이 오바마 시기의 정책으로 복귀하리라 기대했지만, 헛된 희망이었다. 바이든은 2022년 중간선거[총선] 등 국내 정치 이슈를 의식해 트럼프가 내세운 “최대한의 압박”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한편, 민주당 내에 상원 외교위원장 로버트 메넨데스(Robert Menéndez)처럼 쿠바 망명자 집단의 “체제 교체” 주장3을 고수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요인으로 작용한다.

 

 

 

3 미국이 쿠바 정권 전복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입장. 민주당 소속의 상원 외교위원장 메넨데스 본인도 쿠바계 이주민 가정 출신이다.

 

 

지난 5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폭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 등 민주당 진보 인사들은 바이든과 다른 입장을 냈다. 민주당 의원 80여 명이 연명해 대통령에게 봉쇄 중단 촉구 서한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제국주의 정책 전반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바로 그 바이든의 당에 속해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제국주의 세력이나 부르주아지(쿠바 망명자 집단 일부 포함) 가운데서도 오바마 행정부 때처럼 봉쇄 조치 완화를 선호하는 분파가 존재한다. 이들은 봉쇄 조치가 무엇보다 일반 주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면서 쿠바 공산당 정권을 지탱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UN이 1992년 이래 제재 완화에 찬성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해결책을 반대한 건 미국과 이스라엘이었다(콜롬비아 같은 무조건적 동맹국도 몇 차례 동참했다). 한편, [이렇듯 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일부 분파를 제외한 지배세력] 나머지는 봉쇄 유지‧강화뿐만 아니라 미국의 직접 개입을 촉구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새로운 점은, 일부 우익 언론이 봉쇄나 금수 조치의 존재를 부정하며 ‘금수 조치 운운은 낡은 반(反)제국주의 신화일 뿐’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 제국주의 자체와도 말이 맞지 않는, 어설픈 이데올로기 공작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부활에 맞서기

 

[1990년대 초] 소련 해체와 “특별 기간”[쿠바판 ‘고난의 행군’으로, 소련 붕괴 이후 쿠바에 닥친 초유의 경제위기] 이후 쿠바 정권은 “베트남 모델”을 전략으로 채택했다. 즉, 쿠바 공산당의 국가권력 독점을 유지하는 동시에 경제 개방을 추진한 것이다. 이렇듯 자본주의적 관계를 점차 재도입하는 전략은 미국의 봉쇄를 비롯한 적대적 제국주의 정책과 결합했고, 1959년 혁명 이후 부르주아지의 재산을 몰수하며 수립된 노동자 국가(이제는 왜곡되고 관료화됐다)의 물질적 기반을 크게 잠식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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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이후 쿠바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했으며, 그 결과 1994년에는 생활고에 직면한 쿠바 민중이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다. 사진은 1994년 당시 쿠바 시위 모습. [사진: wikipedia]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흐름의 가속화와 국가로의 재집중화가 번갈아 나타났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제국주의 자본 유입을 활성화하기 위한 해외 투자 관련법 개정 △계획경제 침식(교육‧보건‧국방 부문 제외) △국가 통제로 해외무역 독점 △광범한 비(非)임금노동자층 출현 △쿠바 혁명군이 사실상 주요 관광‧외환 거래 및 여러 사업 영역을 장악하는 합자회사로 전환.

 

자본주의적 관계를 촉진하는 이 과정은 피델 카스트로 집권 말년(특히 “사상적 전투”(Battle of ideas)라 불린 기간)4에 다소 주춤하다가, 라울 카스트로가 2008년 국가 평의회 의장직을 맡은 이후 다시 가속했다. 라울 카스트로는 재임 기간에 사적(私的) 경제 부문을 팽창시켰고, 공공부문 노동자 약 50만 명을 해고했으며, 2014년에는 노동자 착취를 강화하는 새로운 노동법을 승인했다(이 법은 초과근무수당 없이 하루 10~12시간 노동을 허용하고, 자유로운 노조 결성권은 일절 인정하지 않는다). 디아스-카넬 정부5는 지난 4월 쿠바 공산당 당대회가 승인한 친(親)자본주의 노선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4 피델 카스트로는 2008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났고, 이 자리는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승계했다. “사상적 전투”(Battle of Ideas)는 1990년대 초 “특별 기간”과 이후 쿠바 정권의 시장 개방 정책 등을 거치며 사회적 불만이 누적‧표출된 데 따른 대응으로 피델 카스트로가 제창한 일련의 체제 강화 프로그램이다.

 

5 라울 카스트로가 2018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미겔 디아스-카넬이 후임자가 됐다. 올해 4월에는 쿠바 공산당 제1서기직도 승계했다.

 

 

따라서 쿠바의 자본주의 부활을 밀어붙이는 주요 세력은 제국주의나 마이애미[쿠바를 마주 보고 있는 미국 동남부 해안 도시로, 쿠바 혁명 이후 쿠바계 망명자‧이주민이 집단 거주하는 지역]의 쿠바 출신 부르주아지뿐만 아니라, 쿠바 자체의 국가권력 내부(쿠바 공산당 상층 관료들과 특히 군부 고위직)에도 있다. 또한, 초기적 형태의 [현지] 부르주아 집단도 그중 하나다. 이 부르주아 집단은 시초 축적을 진행하는 한편, (더 많은 중소 규모 사업으로 진출하도록 허용하는) 상법 개정이 승인되면서 더욱 팽창할 것으로 보인다.

 

쿠바 정권이 베트남 공산당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는 몇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일단 미 제국주의와 지근거리에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쿠바에서 망명한 부르주아지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쿠바 지배 관료층의 중재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노골적으로 정권을 전복하고 정치‧경제 권력을 장악하고자 한다.

 

세계 좌파 사이에서는 쿠바를 둘러싼 공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포퓰리즘 진영은 무비판적으로 쿠바 체제를 옹호한다. 이들은 [쿠바 체제에 대한] 어떤 비판도 “우익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진부한 주장을 앞세우며 좌파 투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정당화한다: 불평등, 지배 관료층의 특권, 친(親)자본주의 노선, 그리고 쿠바 공산당의 억압적인 경찰 통제까지. 이들은 마찬가지 논리로 권위주의 정권인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제도 지지한다.

 

[물론] 쿠바 민중 대다수가 거부하고 저항하는 미국의 봉쇄에 맞서 국제주의‧반(反)제국주의 투쟁에 나설 때 비로소 쿠바 정권의 자본주의 부활 계획과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 통제에도 대적할 수 있다.

 

자본주의 부활(제국주의와 그 대리인을 통해서든, 관료집단 스스로를 통해서든)에 맞서려면, 봉쇄에 저항하는 투쟁과 더불어 광범한 대중이 진정으로 원하는 긴급한 요구에 근거해 강령을 제기해야 한다. 여기에는 △전반적인 임금 인상 △대중의 가격통제 △지배층 특권 폐지와 일당 체제 종식, 혁명의 성과를 지키고자 하는 정치조직 합법화 등이 포함된다.

 

또한, 이 요구에는 집회‧언론‧노동조합의 자유(1920년대 소련에서 레닌이 옹호한 기본 사항이다)와 더불어 제반 노동자 조직의 자유를 포함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진정한 지배계급이 됨으로써 대외무역 독점을 정비하고 민주적 경제계획을 수행할 수 있다. 오늘날 쿠바의 운명은 그 어느 때보다 라틴아메리카 계급투쟁과 직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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