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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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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6.01 15:00

제도적 개혁으로는 

여성억압에 도전할 수 없다


예진┃사회운동위원회 여성사업팀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여성-남성 간 불평등은 사회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에 여성도 남성이 누리는 권리를 동일하게 누리는 것이 이롭다고 주장했다. 권리의 동등성을 바탕으로 실질적 평등을 쟁취하자는 주장은 여성 참정권 운동 등 제도개선 운동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자유주의 페미니즘 세력은 ‘성 주류화 전략’을 중심으로 행정‧입법기관 등에 진출해 국가의 여성정책에 개입했다. 호주제 폐지와 여성 할당제 등 일부 법‧제도적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법‧제도를 중심으로 한 변화는 성차별적 현실을 가렸다. ‘일‧가정 양립’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여성 노동정책과 보육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여성 인력 활용방안과 조우했다. 자유주의 여성운동은 제도화된 방식의 상층운동으로 자리했고, 대중적 여성운동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번 <사회주의×페미니즘> 세 번째 글에서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역사와 한국에서의 성 주류화 전략을 살펴보고 그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려고 한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가속화시킨 개인화‧파편화 속에서 페미니즘조차 여성 ‘개인’의 생존전략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시점에 유의미한 성찰이 될 것이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유주의 정치사상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 이성에서 비롯한다고 여긴다. 자유주의자들은 ‘각 개인이 좋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를 지향’한다며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거부한다. 다만 ‘공적 영역’에서의 국가 개입에 대해서는 고전적 자유주의자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의 의견이 나뉘었는데, 많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는 평등주의적 경향을 지지하며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국가 개입을 요구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이 능력을 개발할 기회가 차단돼 ‘감정적’으로 치부된다고 보고, 여성에게 공평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통적 남성성이 우월하다는 사회의 규정을 용인하고, 여성에게 부여되는 ‘어머니의 의무’를 인정하는 한계를 보였다. 페미니즘 제1 물결(19세기 말~20세기 초 전개된 페미니즘 조류)에서 해리엇 테일러와 존 스튜어트 밀은 울스턴크래프트의 주장에 덧붙여 여성에게 정치‧경제적 기회도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테일러의 여성주의는 ‘부르주아 백인 여성’에 국한됐고, 밀 역시 여성의 ‘어머니 역할’을 깨지는 못했다. 유색인종 여성, 여성의 가사노동, 이중 부담(생산‧재생산) 등의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교육과 참정권 등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획득하면 여성 인권이 향상될 것이라 믿었고 참정권 운동에 집중했다. 하지만 시민적 권리를 획득한 후에도 여성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인종, 계층, 성적 지향 등은 논의되지 않았다. 한동안 침체하던 여성운동은 정치적 권리와 더불어 경제적 기회와 성적 자유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며 다시금 운동을 만들어갔다. 페미니즘 제2 물결(1960~80년대 확산한 페미니즘 운동) 안에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정당을 압박해 여성의 지위 향상을 도모했다. 대부분의 여성 단체는 법‧제도 개선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균등임금법과 시민권법을 통과시키는 등 일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런 투쟁만으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를 확인한 여성들은 개인적 영역을 포함한 전 영역에서 성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활동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권리 향상을 위한 제도적 변화에 집중했다. 동등한 교육부터 투표권, 경제 참여, 성적 권리까지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갔다. 많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여성 할당제 등 차별 철폐 정책을 지지했고 실제 제도로 만들어갔다. 하지만 남성성과 정상성 범주를 해체하지는 못했다. 남성성을 기준으로 여성성을 규정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성이 남성성 즉 ‘정상’ 범주를 달성하는 게 목표가 되는 오류를 보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운동 전반이 ‘중산층 이성애자 백인’을 중심으로 논의됐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인종 차별, 계급 차별, 성적 지향의 문제를 보지 않았고, 체제 전복의 필요성을 부인했다.



한국의 자유주의 페미니즘, 성과와 한계


1988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 부회장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이후 여연은 가족법 개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영유아보육법 제정 등 법제화 운동을 진행하며 여성 의제 정책화를 중요하게 다뤘다. 1995년 베이징대회(UN 제4차 세계여성회의) 이후 여연은 여성운동 전략으로 ‘성 주류화 전략’을 채택했다. 여연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차별 금지 법안 제정과 정책 마련 등에 적극 개입했다. 이것이 법‧제도 수준에 머물러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 한계를 제도 내에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한국에서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주류로 자리했고, 보육 공공성과 여성 고용 확대, 일‧가정 양립 정책 마련을 주도했다. 여성단체는 여성 대표자를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여겼고, 소수의 엘리트 여성은 정계나 정부에 진출했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의 공적 영역 참여를 활성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대다수 여성은 이전과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다. 일‧가정 양립 정책은 사회서비스 노동을 시장화하고 성별 분업을 강화했다. ‘여성정책’의 이름으로 여성 노동력을 저임금‧비정규 노동으로 활용한 것이다. ‘사회 진출’ 이면에 존재하는 가사노동의 이중고는 고려되지 않았다.


자본은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전략 속에 저임금‧불안정 여성 노동력을 이용했고, 성 주류화 전략은 오히려 이를 지탱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그동안 한국의 자유주의 여성운동이 추진했던 법‧제도 개선은 실제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여성도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와 일할 권리를 갖자는 것은 남성 노동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는 능력주의와 성과주의,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그대로 두고 함께 겪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현실 모두를 바꿔내야 한다. 그러나 제도 내에서 시행되는 여성정책은 ‘남성만큼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여성’을 발굴하는 수준에 그쳤다.


또한 ‘공적 영역’을 중심으로 한 논의는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성폭력과 가사노동, 일상적 차별 등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문제에 대해 그저 ‘개인이 극복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재생산 영역과 가사노동 등 사적 영역의 문제는 제기하기 어려웠다.


물론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그간 한국에서 여성운동을 만들어왔고 사회적 차별을 일정 부분 해소했다. 호주제 폐지 등 법‧제도적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가족에 관한 논의는 호주제 폐지에서 멈췄고, 가부장제는 다시금 가족 중심성과 이성애 중심성을 기준으로 ‘정상성’을 확립해나갔다. 여성 할당제 등의 적극적 평등 정책 역시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가지 않으면 가부장제에 종속된다. 체제를 타격하지 않을 때, 제도는 허울만 남을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적 평등의 한계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근원을 고민하지 않고, 자본주의가 심화시키는 여성 억압에 대해 무감하다. 단지 현실 사회, 특히 공적 영역에서 남성과의 동등성을 확보하고 여성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조치로 여성 차별이 해소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국가에 차별 철폐 조항을 요구하지만, 법‧제도적 투쟁에 머무르며 체제 자체의 문제에 접근하지 못한다. 이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권력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몇 가지 평등 조치로 권력관계를 해소할 수 있을 리 없다.


지난 총선에서 최초의 여성 의제 정당인 “여성의당”이 창당했다. 여성의당은 할당제를 넘어 여성 의제를 중심으로 정치세력화에 나섰고, 단기간에 많은 지지를 얻었다. 이는 고무적인 일이었으나, 이윽고 선거 자금 모금 과정에서 계급적 관점의 부재가 낳은 한계를 보여줬다. 호텔신라 이부진, CJ 이미경 등 여성 자본가에게 후원금을 요구한 것이다. 논란이 일자 여성의당은 “여성으로부터 수익을 얻고 있는 여러 기업의 오너들에게 여성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당에 투자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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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총선에서 삼성, CJ 등 재벌그룹 여성 자본가에게 후원금을 요구한 것으로 논란을 빚은 여성의당 홍보물.



그러나 여성 억압적 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특히 성차별적 노동 분업으로 여성을 저임금‧불안정‧비정규 노동으로 내몬다. 우리는 계급적 이해가 다른 자본가들과 함께 더 나은 삶과 여성해방을 이야기할 수 없다.


국가와 자본은 여성 의제를 가족 의제로 이동시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여성 인력을 활용했다. 일‧가정 양립 정책은 여성에게만 이중의 책임을 전가하는 한편, 여성 노동자를 저임금의 돌봄 노동자로 배치하는 구조를 낳았다. 여전히 일부 여성의 성공은 다른 여성이 그의 재생산 노동을 대체하는 것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여성운동이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조응하면서 여성노동과 빈곤 문제는 부차화됐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공적 영역에서의 평등권 쟁취를 가장 주요한 의제로 상정하고 있지만, 공적 영역은 사적 영역과 별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놓쳤던 여성 노동자들의 생산‧재생산노동에 대한 가치인정 투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여성 노동자의 이중고에 주목해 사회서비스 노동의 시장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법‧제도적 투쟁에 머물러 체제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는 자유주의의 한계를 딛고, 여성 억압의 구조를 깨기 위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맞선 투쟁을 만들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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