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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7.16 17:12

여성노동의 가치 인정 투쟁


솔현┃사회운동위원회 여성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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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네덜란드 가사노동자노조 영상 "나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당신도 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I will not ask anything about you, you will not ask anything about me)"에서 캡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여성들의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지녔는지 재확인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휴교령 등으로 급증한 돌봄‧가사노동의 부담은 당연하다는 듯 가정 내 여성들에게 전가됐다. 엄마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맘카페’에서는 ‘사람이 하루에 두 끼만 먹었어도 인류사에 전쟁은 없었을 것’이라는 푸념 섞인 농담이 큰 공감대를 형성하며 유행할 정도다.


한편 여성 노동자들은 팬데믹으로 심화한 경제위기와 고용축소의 피해에 더욱 취약하게 노출돼 있다. 여성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저임금‧불안정 노동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해고나 무급휴직, 수입 감소 등의 피해를 직격탄으로 맞는다. 또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은 의료‧돌봄 노동에서도 여성 노동자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여성이 콜센터‧방문 노동‧숙박 및 요식업처럼 집단감염에 노출되기 쉬운 취약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가사‧돌봄노동 가치 절하는 여성노동 문제의 핵심


여성들의 ‘가정 내 무급노동’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노동이다. 노동력의 재생산은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수행되는 가사‧돌봄노동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즉 가사‧돌봄노동은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 꼭 필요한 ‘재생산노동’인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재생산노동은 공적인 생산노동보다 덜 중요하거나 심지어는 중요하지 않은 일로 치부된다.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여겨온 역사가 낳은 결과다. 가정주부 여성들에게 ‘집에서 논다’고 얘기하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로, ‘사적 영역’으로 분리된 가정이라는 공간에서의 무급노동은 철저히 삭제된다.


재생산노동에 대한 가치 절하는 여성노동의 가치 절하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직장에 다니던 여성 노동자의 66% 이상이 첫 아이를 임신한 후로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일을 하게 된다. 이는 출산과 육아, 돌봄노동이 오롯이 여성의 몫으로 전가되고 있음을 뜻한다. 자본은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을 여성들의 무보수 재생산노동으로 낮춤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는 착취 방식으로 활용한다. 오늘날 시장주의적 방식으로 재생산노동이 사회화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여성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대부분 불안정‧저임금 일자리다. 국가와 자본은 재생산의 책임을 개별 가정에, 특히 여성들에게 무급으로 전가하면서 여성들의 임금노동에 대해서까지 가치 절하하는 이득을 취한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경력단절여성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3명 중 1명 이상이 결혼‧임신‧출산‧양육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했고, 평균 28세에 직장을 잃어 36세에 재취업의 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경력단절 이전에는 정규직 등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있던 여성이 경력단절 이후에는 임시직‧시간제 등의 불안정 일자리로 재취업하는 경향을 보였다. 임금 격차 역시 경력단절 전보다 후에 더 크다. 경력단절 전 평균 월급 218만 5천 원을 받던 여성들은 경력단절 후 첫 직장에서 평균 191만 5천 원을 받는다. 이렇듯 여성들의 가정 내 재생산노동은 경력이나 경험으로 존중되기는커녕, ‘삭제된 시간’으로 취급받는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는 ‘일‧가정 양립’이라는 미명하에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릴 수 있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여성노동정책’이라고 들이밀면서 무급 가사노동과 저임금 생산노동의 이중 책임을 여성들에게 떠맡긴다. 이렇듯 재생산노동을 남성의 생산노동에 대한 ‘보조적 지위’로 가치 절하하면서, 여성의 생산노동까지 보조적 지위에 머무르게 된다.



수발들러 나온 것도, 반찬값 벌러 나온 것도 아니다!


또 하나의 주요한 키워드는 ‘성별 노동분업’이다.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청소, 급식, 요양, 간호 등 돌봄‧가사영역의 연장선에 있는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가정에서 무급으로 수행하던 일이기 때문에 ‘단순하고 비전문적인 일’로 취급하고, 이는 자연스레 저임금노동이 된다. ‘여성 일자리’라 불리는 대부분의 직종이 불안정‧저임금노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맥락은 직장 내 성차별로도 이어진다. 지난 상반기 진행된 <3시 STOP 공동행동>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의 74%가 직장에서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한다.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반말을 듣거나 정확한 직책‧호칭으로 불리지 못하고, ‘여직원’이라 호명되는 등 동등한 동료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을 토로했다. 게다가 여성들은 업무 외적 영역에서도 특수한 역할을 할 것을 강요받는다. 대표적으로는 직장 내 ‘꽃’이라며 웃거나 나긋나긋하게 굴 것을 요구받고, 출근 시 화장하는 것이 ‘예의’라며 꾸밈노동을 강요받는다. 직장 내 가사‧돌봄노동 역시 여성 노동자들의 몫이다. 누가 와서 차를 대접해야 할 때, 여름에 수박을 먹기 위해 자를 때, 사무실에서 설거지나 청소를 할 때, 비품을 구매할 때 등등 여성 노동자들은 마치 ‘수발’을 들기 위해 존재하는 듯 이용된다.


채용과 승진 등에서의 성차별 역시 심각하다. 면접장에서 여성들이 받는 질문은 직무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다. 예컨대 ‘가정이 있는지’, ‘아이가 아플 때 출근이 가능한지’, ‘고객 응대를 잘할 수 있는지’ 등 성역할 고정관념을 노골적으로 반영한 질문이 쏟아진다. 이에 대한 여성 지원자들의 답변은 채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성은 당연히 임신과 출산, 육아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섣부른 예단 때문에 채용에서 차별당하는 일도 흔하다. 여성은 ‘가장이 아니기 때문에’ 승진에서 배제되고, 그에 따른 저임금을 감수하는 게 당연시된다. 여성들의 노동은 ‘반찬값 벌러 나온’ 부수적 지위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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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재생산노동의 가치 인정 투쟁으로 

여성노동 해방 쟁취하자


자본주의는 가부장제와 결탁해 여성의 재생산노동을 가치 절하함으로써 여성의 임금노동 역시 필연적으로 저평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공고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우리는 재생산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 인정 투쟁을 주장하고, 재생산노동을 시장주의적이지 않으면서 여성만이 담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화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누군가의 가사‧돌봄노동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흔히들 노인과 아이만이 돌봄의 대상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코로나19로 드러난 돌봄 사각지대 문제는 재생산의 부담을 개인이나 가정에 전가할 때의 한계를 보여주며 사회적 책임과 대책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렇다면 가사‧돌봄노동에 대한 가치 인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우선 그 가치에 응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그 방식에 대해서는 수당이나 임금 등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재생산노동이 공공적이며 사회적인 영역임을 분명히 하고, 서비스 제공의 주체가 국가와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가사‧돌봄노동자를 국가가 직접 고용하고, 온전한 노동법 적용이 이뤄져야 한다.


재생산노동은 2000년대 이후 빠르게 민간위탁으로 흡수되며 시장주의적 방식으로 사회화됐다. 이는 돌봄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작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사각지대와 공백을 형성하는 동시에, 가사‧돌봄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조성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공립 돌봄시설 확충, 사회서비스원 설립 등을 통한 ‘돌봄의 공공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여태껏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진정 돌봄을 공공화하기 위해서는 현재 90%에 육박하는 민간위탁시설을 공적인 사회서비스원으로 이관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운영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여성노동정책은 늘 여성의 무급 재생산노동을 전제로 한 ‘경력단절 해소’나 ‘일‧가정 양립’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는 곧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라 자본의 필요에 따른 시간제‧저임금 일자리만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성에게 가사‧돌봄노동을 전담하게 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여성이 채용‧업무배치‧승진‧퇴직에 이르기까지 노동의 전 과정에서 겪는 성차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재생산노동은 여성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재생산노동의 가치 인정 투쟁으로 여성노동 해방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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