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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9.15 19:24

‘가족’에 대한

다른 상상과 경험이 필요하다


선지현┃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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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사노동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사진: ⓒ 2019 Oakland Museum of California]



인간다운 삶과 가족


얼마 전 신규노조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인간다운 삶’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여러 답들이 오갔다. 그중에서도 기혼 남성들에게 예외 없이 나온 얘기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인간다운 삶’에 반드시 ‘가족’이 포함되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상적으로 그려진 가정의 모습은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한 안식처’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가족은 모든 인간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안식처’일까? 이 사회에서 가족은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일까?


우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정폭력이 급증했다는 보도를 어렵지 않게 접한다. 남편이 집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폭력의 피해가 증가하는 여성에게, 가족은 ‘가해자’다.


2030세대에게 결혼을 통한 가족의 구성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과 부담’이다.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 굳이 결혼할 이유가 없다’는 사람도 있고, 반면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결혼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설사 결혼을 한다고 해도, 자녀는 또 다른 문제다. 자녀를 낳아 기르고 교육하기에 경제적‧사회적 부담이 너무 크다.


여성의 입장에서 가족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이름으로 돈도 벌고, 아이도 낳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 ‘노동’으로 점철된 공간이다.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모성애’는 강조되고 있고, 육아와 가사노동의 책임은 여성의 몫이며, 자녀 교육 문제는 경제적인 부담을 넘어 가족 전체의 삶을 규정해버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얘기다.


그런데도 어떤 여성/남성에게 가족은 너무나 소중하고, 어떤 희생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다. 또 어떤 여성에게 가족은 ‘폭력’을 감당하면서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사회와 국가는 여전히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있고, 그에 기초해 법과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이에 분노한다. 달라진 현실을 드러내며 저항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과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 무너지는 또 다른 우리를 본다. 여전히 남편의 경제적 능력에 기대어 집 밖을 나올 수 없는 또 다른 우리를 본다. 국가와 사회가 이끄는 담론과 제도에 기대어 가족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도대체 가족이 뭐길래?



태초에… ‘정상가족’은 없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열심히 일하는 남편과 집안일을 하는 아내, 그리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인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슨 흘러간 옛 노래냐’ 할 것이고, 21세기에 와서는 해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이 가족형태는 여전히 강고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가족을 기본단위로 하고, 가족의 보호와 유지가 중요한 정책방향이다. 이때 ‘가족’은 앞서 말한 이성애-남성생계부양자-자녀를 둔 가족이다. 이렇게 강고한 힘은 아주 짧은 시간에 구축됐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연적인 것’,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는 아주 다르다.


생계부양자인 남편, 집안일을 책임지는 아내, 그리고 자녀로 구성되는 ‘가족’은 자본주의 체제의 확립과 그 궤를 같이한다. 18세기에 시작해 19~20세기에 확고하게 뿌리내린 부부-자녀-성별분업으로 구성된 가족은 자본주의 체제가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자본가계급은 이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이윤을 거둬들였다. 그렇게 보면 ‘정상가족’은 기껏해야 200년 정도 된 얘기다.


자본주의 출현 이전의 가족은 달랐다. 지배계급의 결혼은 권력과 부를 상속하기 위한 수단이며, 피지배 민중의 결혼은 ‘노동의 동반자’로 경제적 기능을 담당했다(스테파니 쿤츠, 『진화하는 결혼』, 작가정신, 2009). 이때 가족은 성별분업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과거에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의 가족이 인류 역사에 상당히 오랜 기간 존재했다.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군혼에서 단혼으로’, ‘모계 중심에서 부계 중심으로’ 가족제도의 변천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를 보면 우리가 ‘전통적인 가족’으로 인식하고 있는 건 ‘아주 특정한 형태의 가족 형태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현대는 어떤가?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하반기 맞벌이 가구 및 1인 가구 고용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1인 가구는 600만으로 29.9%를 차지하고 있다. 자녀가 없는 부부와 한 부모로 구성된 가구 등을 합하면 전체 가구 수의 절반이 훌쩍 넘는다. 남편-아내-자녀로 구성된 가족은 30% 정도이며, 이조차 2045년이 되면 16%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체제 확립과 함께 강화된 ‘정상가족(이데올로기)’은 자연적인 것도 아니고, 동시에 이제 더 이상 기능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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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feminisminindia.com]



변하지 않고 있는 

‘가족’ 이데올로기와 시스템


‘정상가족’ 제도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함에도, 현대 사회는 많이 변했다. 이제 사람들은 특정 형태의 가족 구성에 안간힘을 쓰지 않는다. 이성애에 기초한 부부와 자녀를 키우는 가족이 ‘자연적인 게 아니다’라고 인식하면, 가족의 구성은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현실의 삶은 실제로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동성가족, 혈연에 기초하지 않지 않은 가족 등 다양했다.


‘정상가족’ 하에 작동하던 성별분업구조도 무너지고 있다. 여성운동의 노력도 적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1970년대 초 세계자본주의 경제 불안, 불황의 영향이었다. 임금 삭감과 노동시장 유연화, 복지제도 축소 및 파괴는 여성들의 경제생활을 압박했다. 이제 혼자서 버는 임금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보장하기 어려워졌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은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도 가능케 했고, 발언권도 높였다. 여성/남성 차별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제 특정 형태의 가족제도에 기초한 시스템을 더 이상 유지할 이유가 없다. 100: 64인 성별 임금 격차, 남성의 2배에 이르는 비정규 여성노동, 임금노동 형태의 돌봄과 가사노동조차 모두 여성의 일이고 또 저임금인 현실은 가정 내 성별분업이 일터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맞벌이 가정이 절반에 가까워지고 있고, 돌봄‧가사노동이 시장주의적인 방식으로 사회화되고, 기술의 발전으로 가사노동을 돕는 갖가지 전자제품이 등장하고 있지만, 가정 내 가사노동은 제대로 분담되지 않고 있다(2019년 기준 맞벌이 가정 여성의 가사노동시간 3시간 7분, 남성은 54분).


가족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결혼과 출산이 중요하고, 여성의 모성애는 여성에게 핵심 윤리로 강요된다. 호주제 폐지와 상속 제도의 변화에도 가족법은 아직 부성애 중심을 놓지 않았고, 이성애에 기초한 결혼제도는 강력하다. 복지와 조세 역시 ‘정상가족’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또한 ‘정상가족’에 기초한 윤리적 규범은 다양한 가족 구성을 막는다. ‘가족 해체’를 염려하는 이들에게 동성애 결혼은 사회 근간을 흔드는 ‘반윤리적 행위’다. ‘정상가족’은 결국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데 불과한 것이다.



가족, 다른 것을 상상하라


엥겔스는 여성 억압이 근본적으로 사유재산제도에 기인하며, ‘현대의 가족은 사회적‧경제적 이해타산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결혼을 기초로 하고, (경제적, 사회적) 남성 중심의 사회를 유지해나가는 것이며, 동시에 여성의 자유를 종속시킨다’고 주장했다. 맑스주의자들은 이에 기초해 여성의 경제활동과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해결의 단초를 놓을 수 있고, 근본적으로는 계급해방이 여성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사회적 가족』의 저자들은 ‘신성화된 가족은 인간을 황폐화된 곳으로 이끌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족 형태로 기존 가족제도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다. 혁명에 성공한 나라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와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분명 많은 변화를 줬다. 그러나 성별분업은 남았고, 모성애는 강력하게 발휘됐으며,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일터로 이어졌다. 가사노동의 공동 책임 문제는 고려되지 않았다. 가정 내 폭력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사회주의 가족’ 역시 여성 억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다양한 가족 구성은 그 자체로 현실이다. 이에 조응하는 시스템의 변화 역시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가족의 역할은 오히려 축소돼야 한다. 경제적 기능은 사회로 이전돼야 한다. 가사노동의 사회화, 돌봄과 교육의 사회화를 통해 이를 실현해야 한다. 1인의 노동으로 충분히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공동체는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사회적 가치가 실현돼야 한다. 이는 가족의 해체가 아니라 재구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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