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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이 된 한유총, 

비리 근절 대책에 그친 정부


임용현┃경기



지난 3월 3일, 유치원 3법과 유아교육법 시행령에 반발하며 ‘무기한 개원 연기’라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집단행동이 불과 하루 만에 좌초했다.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고, 정부도 강경 대응 기조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막무가내식 엄포로 자신의 이해를 관철해왔던 한유총의 행보에 분노한 대중은 정부의 엄정 조치 기조를 반길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볼모로 삼았다”는 대중적 반발에 직면한 한유총은 무기한 개원 연기를 거둬들이며 한발 물러섰지만, 언제 다시 발톱을 드러낼지 알 수 없다. 지금 당장은 여론을 등에 업고 한유총의 백기 투항을 끌어낸 정부가 유일한 승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 사립유치원의 개원 연기, 집단 폐원 협박에 가슴 졸여야 했던 학부모들은 시장에 내맡겨진 유아교육 현실에 여전히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국공립유치원 확충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는 고스란히 살아있는 셈이다.



한유총이 사유재산 보호를 강변하는 이유

작년 말부터 정부와 극한 대치를 이어오던 한유총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1995년 사단법인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개원 연기라는 무리한 악수로 제 발등을 찍은 것이다. 지난 4일, 주무관청인 서울시교육청은 한유총 설립허가 취소절차에 들어갔다. 개원 연기를 주도한 한유총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유아학습권을 침해해 공익을 현격히 해하는 행위”를 저질러 그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어 6일에는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한유총을 공정거래법, 유아교육법, 아동복지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한편, 한유총이 개원 연기에 나선 4일 이전까지 55%에 머물렀던 ‘에듀파인’(대형유치원 국가 관리회계시스템) 참여율은 나흘 만에 80%를 돌파했다. 그간 한유총은 회계 투명성 확보와 공공적 통제를 노골적으로 거부하며 “에듀파인 도입이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해왔다. 에듀파인 시스템을 도입하더라도 ‘시설사용료’ 항목을 추가해 유치원 수익금에서 돈을 빼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각종 비리로 막대한 이득을 챙긴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이 에듀파인 의무화로 기존 축재 방식을 더 지속할 수 없게 되자, 보다 안정적이고 합법적인 수익 창출 수단으로 시설사용료 항목 신설을 들고나온 것이다. 이들이 사유재산 보호를 줄곧 강변했던 이유는 그저 돈벌이 때문이었다.


이번 사태는 한유총의 패배로 귀결했지만, 대다수 사립유치원은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확대’ 정책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저출산으로 아동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하는 것은 곧 사립 유치원 죽이기(2017년 7월 25일 한유총 성명)”라며 차라리 기존 사립유치원에 대한 지원금 규모를 늘리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공공 자금으로 지원을 받으면서도 그 회계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사립유치원, 그리고 그 사립유치원이 지배하는 유아교육체제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공공적 유치원 생태계를 시급히 조성해야

지난해 말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 목표를 애초 예상 시점보다 1년 앞당겨 2021년까지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근 몇 년간 취원율 현황을 살펴보면 그마저 쉽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23.6%를 기록한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2016년 24.1%, 2017년 24.8%, 2018년 25.4%로 매년 1% 포인트도 채 늘어나지 않았다. 반면, OECD 35개국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평균 67%로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


한유총이 집단 휴업과 폐업을 협박하면서 정부에 입김을 불어 넣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사립유치원의 집단 반발을 일으키는 조치를 취한다면 결국 ‘유아교육에 큰 공백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한유총이라는 괴물을 키운 장본인은 다름 아닌 정부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부터) 역대 정부는 턱없이 부족한 국공립유치원을 대폭 확충하기보다, 돈도 덜 나가고 양적 팽창도 쉬운 사립유치원 증설을 택했다. 그 결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보호자와 더불어 유아를 건전하게 교육할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 유아교육법 제3조는 공문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더욱이 사립유치원의 고질적인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유치원 3법은 아직 국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한유총의 불법 영리추구를 제어하는 수준에서 만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공적 재원으로 사립유치원 경영자들의 배를 불리면서, 동시에 사립유치원 횡포에 학부모들은 불안을 떨칠 수 없는 현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사립유치원의 재정 운용에 대한 관리‧감독을 넘어, 유아교육 전반의 공적 통제로 나아가야 한다. 불법‧비리를 저지르거나 국가 예산으로부터 지원받고도 공적 통제를 거부하는 사립유치원부터 국공립으로 전환해야 한다. 유아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을 망각하고 영리추구에만 혈안이 된 유아교육체제를 바꿀 가장 확실한 대안은 바로 여기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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