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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민간업자에게 세금을 바칠 것인가


이주용┃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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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공공운수노조(늘푸른소나무)]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2년 전 인천공항에서 화려하게 천명했던 이 대책은 이제 ‘정규직화’라는 이름조차 없애버린 채 황급히 문을 닫기에 급급하다.


지난 2월 말, 정부는 애초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의 마지막 셋째 단계로 설정했던 공공부문 민간위탁 분야에 대한 대책 개요를 발표했다(<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 그러나 이 가운데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공약은 했으니 생색은 내야겠는데, 국가가 떠맡지는 않겠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을 계기로 외주화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 이마저 스리슬쩍 없던 일로 넘어가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민간위탁은 본래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담당해야 하는 업무(사회복지, 환경미화, 일반행정 등)를 민간업자에게 위탁계약으로 팔아넘긴 것이다. 즉, 그 본질 자체가 민영화‧외주화다. 정부 스스로 <추진방향>에서 밝힌바, 민간위탁은 1997년 IMF 위기 이후 대대적인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확산됐다. 유일한 목적은 비용 절감이었다. 이에 따라 이 민간업체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엄연히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낮은 임금과 계약 변경에 따른 수시 해고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안정적인 양질의 공공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도, 노동자들의 온전한 정규직화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도, 민간에 위탁한 공공부문의 직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바로 그 앞에서 멈췄다. 민영화‧외주화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난 지금, 정부는 그 체제를 그대로 온존시키려는 것이다.



공공서비스 팔아넘긴 국가

정부 발표를 보면 민간위탁 분야는 사회복지(어린이집‧사회복지관‧돌봄서비스), 환경미화‧폐기물 처리, 보건, 행정, 교육 등 공공서비스 모든 영역에 광범하게 퍼져 있다. 민간위탁 노동자 수는 20만 명에 달해, 2년 전 정부가 공공부문 1단계(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지방공기업‧국공립 교육기관) 영역의 비정규직 규모로 30만 명을 제시한 것과 비교해도 상당한 숫자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점하는 것은 사회복지업무로, 민간위탁 종사자의 37%와 관련 예산의 28%를 차지한다. 가령 대표적 분야인 어린이집의 경우, 가뜩이나 국공립 비중이 보육아동수 기준 13%에 불과한데(시설 수로는 7.8%), 이조차 무려 97%가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가 보육료의 80%를 지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정부에 따르면 대부분의 민간위탁에 국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세금만 8조 원에 달하는데, 이조차 어린이집이나 복지관 등에 투입하는 액수는 반영하지 않은 규모라고 한다. 게다가 이 업무들의 절대다수는(92.8%) 일시적 프로젝트가 아닌 상시지속업무다. 요하자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상적 공공서비스를 공급하고 세금으로 이를 수행하는데, 국가가 공적으로 관리하고 책임지는 게 아니라 민간업자들에게 내맡겨 공금으로 이윤을 착복하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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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공공운수노조(늘푸른소나무)]



문제는 많지만, 바꿀 수는 없다?

민간위탁체제의 문제점은 정부도 확실히 알고 있다. △노동조건이 열악하고 고용불안‧임금체불 발생 △민간업자의 이윤추구와 횡령 등 비리 양산 △비용 절감 명분과 달리 오히려 비용 증가 등, 정부 스스로 거론한 것들만 봐도 대체 왜 민간위탁을 유지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정부는 정작 자신의 책임을 밝혀야 할 부분에서 선을 긋는다. 민간위탁업무 대부분이 지방자치단체가 위탁한 점을 핑계로 “중앙의 지침은 자치권 침해의 우려”가 있어 “일률적 기준 설정, 구속력 있는 지침 시달은 한계”라는 것이다. 게다가 앞서 민간위탁의 문제점을 열거하고서는 이제 와서 이 업체들의 “전문성 및 공익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민간위탁 체제를 유지하되 노동자들의 처우를 일부 개선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하겠다고 한다. 민간위탁을 직영화하고 싶다면 “개별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데, 이미 민간업체들과 지자체 등의 유착과 비리가 만연한 상황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은 아무 조치 없이 내버려 두겠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또 다른 민간업체인 ‘사회적 기업’을 끌어들여 이들의 위탁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까지 끼워 넣었다. 어떻게든 정부 책임은 피하려는 발상만 하고 있다.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은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으로 이름을 바꾸고, 노동권과 공공성 모두 좀먹는 민영화‧외주화를 방치하는 게 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다. 대체 언제까지 세금으로 민간업자들의 배를 불리겠다는 것인가? 공공서비스 직영화는 노동자와 시민 모두를 위해 필요하고 가능한 대안이다. 불법과 비리로 이득을 누렸던 업자들, 이들과 공모한 관료들은 거부하겠지만 말이다.



* 다만 정부는 당시 20만 명이 넘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분류해 비정규직 수치에서 제외했음.

** <변혁정치> 75호 기사, “후퇴하는 사회서비스공단, 어린이집 원장들만 웃는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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