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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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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의 횡포, 

속출하는 강좌 폐쇄


고근형┃학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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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새 학기에 들어서면서 대학 개설강좌가 일제히 급감하고 있다. 중앙대의 경우 올해 1학기 전체 개설강좌 수는 5,079개로, 6,181개였던 작년 1학기에 비해 1,102개나 줄었다. 연세대는 선택 교양 과목이 60%나 감소했고, 고려대는 전공과목 74개, 교양과목 161개 등 총 200개 이상의 강좌를 줄였다고 한다.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된 비정규 교수와 대학원생, 하루아침에 수업권을 빼앗긴 학생들은 이 사태의 배후에 ‘시간강사법’이 있다고 지적한다.



처우개선 하랬더니 강사 해고?

그렇다면 강사법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아니다. 강사법은 대학 시간강사들의 생존권과 처우개선을 위한 것으로, 지난 수년간의 진통 끝에 겨우 통과됐다. 실제 강사법의 내용은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인정 △1년 단위 계약, 3년간 재임용 가능 △방학 중 임금 지급과 연구 공간 제공 △강사당 최대 6학점 이하 강의 배정 등이다. 완전한 해결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여태껏 4개월 단위로 일감을 구하고 방학마다 생계가 곤란했던 강사들의 처우를 어느 정도 개선한 것이다.


문제는 강사법이 아니라 대학 당국, 특히 사립대학들의 태도다.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강사법을 시행할 경우 강사의 대량 실직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11월 사립대 총장 협의회에서 나온 말이다. 강사법 시행 시 대학들은 적어도 1년간 시간강사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매월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이 비용을 지출하기 싫다며, 정부가 재정을 더 내놓지 않으면 시간강사들을 해고하겠다고 공공연하게 협박한 것이다.


협박은 현실이 됐다. 개설강좌 급감이 이를 증명한다. 강좌는 강사들의 일감이다. 즉, 강좌 축소는 강사 구조조정과 같다. 오는 8월부터 강사법이 시행될 예정이니, 아예 그 전에 강좌를 폐지해 시간강사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강사와 대학원생의 일감을 빼앗고 학생들의 수업권을 해치면서도, 돈을 아끼겠다는 대학 당국의 발악이다.


혹시 대학에 돈이 없어서 그럴까? 전혀 아니다. 교육부가 지난해 8월 31일 발표한 대학정보공시에 진실이 담겨있다. 이 자료에는 주요 사립대 적립금 현황이 나오는데, 가령 선택 교양강의 60%를 없앤 연세대의 적립금은 5천 7백억 원에 달한다. 200개 강좌를 폐쇄한 고려대 역시 적립금은 3천 9백억 원이 넘는다. 시간강사들의 생활임금을 보장하고도 충분히 남는 액수다. 결국 시간강사 구조조정의 진짜 원인은 단 하나다. 대학이 겨우 생계를 잇고 있는 강사들의 처우 개선에 돈을 쓰기 싫다는 것뿐이다.



고등교육 좌지우지하는 사립대학체제, 

사립유치원과 무엇이 다른가

3월 23일, 비정규교수노조와 대학원생노조, 각 대학 총학생회가 강사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광화문에 모인다. 대학에 교부금을 더 지급하든지 아니면 강사 임금을 정부가 직접 지급하든지, 강사들의 생존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정부가 책임지라는 것이다.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얼마 전 “대학 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재정지원 등 대학의 재정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은 원론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바로 수천억 원의 적립금을 쌓아두고도 강사의 임금을 지급하기 싫다며 강좌를 폐지해버린 대학들이다. 모든 사립대학은 정부 재정지원을 받는다. 그런데도 총장과 이사회의 소유물인 양 ‘정부가 재정을 더 지원하지 않으면 강사를 해고하겠다’고 협박하며 멋대로 수업도 폐지한다. 고등교육이라는 공적 기능에 충실하라고 혈세를 지원했더니, 오히려 고등교육을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집단에 굳이 고등교육을 맡길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국가가 직접 고등교육을 책임지는 게 맞지 않는가.


유은혜 장관은 “학문 후속세대의 연구‧강의 기회 확대를 위한 신규사업 발굴”을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학의 가장 기초적 기능인 학부생 수업에도 돈 쓰기 아까워하는 사립대학이, 학문 후속세대 연구와 강의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리 만무하다. 불과 3, 4년 전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당시, 사립대학들이 앞다퉈 인문사회계열 학과를 통폐합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렇듯 공적인 고등교육과 학문생태계를 파괴하는 자들이 대학의 소유자라면, 차라리 그들의 소유권을 박탈하고 정부가 안정적 학문 활동의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정부는 그럴 의지가 없다. 사립대학 이사회 절반을 공익이사로 구성하는 공영형 사립대 정책조차 진행하지 않겠다는 정부다. 불과 2년 전 스스로 내세운 대선공약이었고,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포함했는데도 말이다. 남은 것은 대학 주체들의 대응이다. 강사 구조조정을 계기로, 등록금과 혈세를 수탈하면서도 학생들의 수업권을 내팽개친 사립대학들의 만행을 폭로하고 책임을 묻는 행동을 이어가야 한다. 사립대학의 행태가 사립유치원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지금, 모두를 위한 공공적 고등교육은 사립재단이 지배하는 지금의 대학 소유와 운영구조를 공적으로 재편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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