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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안철수,

재벌의 옆자리를 다투다

재벌 앞에 고개 숙인 재벌개혁공약


이주용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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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자괴감이 드는 요즘이다. 언론은 온통 문재인-안철수 간 이전투구로 가득하고, ‘중도보수 끌어안기보수대연합이 선거의 승리 공식처럼 떠돈다.

이 가운데 슬그머니 미소 짓는 자들이 있다. 재벌이다. 재벌이 핵심 공범이라는 사실은 점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재벌 기관지인 경제신문과 보수언론은 광장에 휘둘려 경제를 망친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다.

재벌에게 면죄부를 주는 게 바로 보수야당과 유력후보들이다. 재벌은 뇌물수수국정농단 범죄자에서 신성한 기업주체로 탈바꿈한다. 보수야당의 어제와 오늘은 자본가정당으로서의 본질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재벌개혁을 주장하던 보수야당 후보들이 연일 우클릭 행보를 강화하며 또다시 선심성 빈말뿐인 선거가 펼쳐지고 있다. ‘재계와의 만남이라며 재벌과 기업들의 민원을 접수하고 그들에게 열심히 구애한다. 문재인 선거캠프는 삼성 고위직 출신들로 들어차고, 안철수는 민영화재벌특혜법인 규제프리존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정치적 본질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광장에서 재벌체제 종식과 적폐청산의 요구는 어느 때보다 대중적으로 확장되었지만 보수야당은 그 열망을 실현할 의지도, 계획도 없다. 4년 전 박근혜는 붉은 색을 휘날리며 경제민주화를 모토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경제민주화의 현실은 헬조선으로 나타났다. ‘장미대선이라는 올 봄의 선거는 4년 전과 얼마나 다를까?

 

기업 죽으면 어떡하냐는 문재인, “기업이 무슨 죄냐는 안철수

문재인과 안철수의 말을 들어보면 재벌의 대변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지난 317일 더불어민주당 경선토론에서 문재인은 이재명의 법인세 인상공약에 대해 모든 국가들이 법인세를 낮추는데 우리는 거꾸로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나. 기업이 죽으면 어떡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얼마 전 한국기업연합회로 간판을 바꾼 전경련 기관지 한국경제신문 논설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문재인의 재벌옹호 발언은 갑작스레 나온 게 아니다. 문재인은 이미 지난해 10,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건이 한창 정세의 핵으로 떠오를 때 삼성, SK, LG, 현대 등 4대 기업 연구소장과 회동을 자청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재벌 대기업은 경제 살리는 견인차라고 북돋았다. 심지어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이 뇌물이 아니라 정부가 강요한 반기업적인 준조세라며 재벌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돕기까지 했다.

이명박에 이어 기업인 출신 전문가를 표방하는 안철수 역시 매한가지다. 410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대선후보 초청 특별강연에서 안철수는 기업은 국가 발전과 일자리를 만드는 정말 소중한 존재라며 반기업정서는 실체가 없다. 기업이 무슨 죄인가라고 주장했다. 재벌과 정권이 조직적으로 결탁한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불법행위를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 극소수 부패기업인의 문제로 치부했다. “양심적이고 성실한 대다수 기업인들은 존경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이 자리에서 민간과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맥락에서 기업활동을 제한하는 규제를 풀어야 하며, 박근혜가 밀어붙였던 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벌과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의 결과가 천만 비정규직과 사상 최대 청년실업이라는 점, 규제완화의 대가가 재벌의 이윤독식과 민영화라는 점은 드러나지 않는다. 안철수에게 시장과 자본은 그저 선한 존재일 뿐이다.

 

상법개정안 논란 - 총수일가 경영권 앞에 꼬리 내린 보수야당

재벌개혁이 화두가 된 만큼 각 선거캠프의 핵심 경제공약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지만, 그조차도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부터 재벌과 경제신문이 가장 예민하게 거부반응을 드러내는 상법개정안을 살펴보자.

상법개정안은 재벌총수일가 중심의 기업지배구조를 변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지난해 7월 김종인 등 국회의원 120명이 발의했다. 재벌총수들은 계열사 간 복잡한 순환출자를 이용해 불과 1% 내외의 지분만으로 그룹 전체 경영권을 장악한다. 이와 달리 상법개정안은 전형적인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모델로서, 주주들의 권한과 사외이사감사위원의 독립성을 강화해 총수일가 경영권을 일부 제한하는 요소들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발의 당시부터 재벌들은 경영권 침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로 재벌총수들에 대한 반감이 거세지자 올 2월 임시국회에서 핵심 법안으로 떠올랐지만 역시 무산됐다.

문재인은 이 상법개정안을 재벌개혁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난 46, 문재인 캠프 비상경제대책단은 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무역협회 등 자본가단체들과 경제현안점검회의를 열고 상법개정안에 대해 방향성은 맞지만 기업인들의 투자심리를 저해하거나 사업환경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경제신문은 사설을 통해 상법개정안에 대한 문재인 캠프의 변화된 인식이라고 평가했다.

상법개정안을 비롯해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는 자본의 무제한적 이윤추구와 노동착취를 제어하는 장치도 아니고 민주적인 기업운영도 아니다. 그저 총수일가가 전유하는 권한과 이익을 주주들, 혹은 금융자본가들이 좀 더 나눠 갖는 것이다. 그러나 총수의 절대적 경영권을 침해하는 그 어떤 것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재벌들의 입김에 문재인과 민주당은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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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대선, 꽃은 빼앗기고 가시만 남게 생겼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서로 물어뜯는 형국이지만, 재벌 관련 공약은 대단히 비슷하다. 법인세에 대해 둘 다 명목세율 인상이 아닌 실효세율 인상을 주장한다. 세금을 직접 더 걷는 게 아니라 재벌이 누리는 각종 세금감면 혜택을 줄여 간접적으로 세율을 높이는 방안이다. 법인세 인상에 격렬히 반대하는 재벌들의 눈치를 본 것이다. 지배구조 문제도 마찬가지다. 양측 모두 총수일가 경영권을 그대로 둔 채 금융자본을 필두로 한 주주들의 이익과 권한을 좀 더 늘리는 정도에 그친다. 이런 기업지배구조 변화는 애초 박근혜가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재벌들의 요구로 폐기한 것으로서 새로운 개혁방안도 아니다.

그 사이 재벌의 진짜 문제는 가려지고 있다. 재벌이 돈으로 권력을 인수하고 정부는 재벌의 대리기관에 불과한 현실, 노동탄압과 불법파견도 모자라 대선후보들에게 노동개악과 노동유연화를 요구하는 탐욕, 범죄를 저지르고도 범죄수익과 경영권을 온전히 보존하는 총수들. 문재인-안철수 가운데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장미대선이라는 이번 선거에서 장미꽃은 보수야당과 재벌들이 가져가고 노동자는 가시만 받아들게 될 공산이 높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46일 자본가단체들과의 회의에서 문재인 캠프 비상경제대책단 이용섭 단장은 노동유연성과 사회안전망, 재취업기회” 3가지를 갖추겠다며 자본의 노동유연화 요구에 화답했다. 이제 재벌은 박근혜 대신 야당과 결속하고 있다. 다시, 싸움을 준비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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