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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4.29 09:02

진홍색방아벌레

 

지난 주말 지방 한 단체에서 모집한 아이들을 데리고 숲 놀이를 했다. 봄을 닮은 아이들은 이리저리 제멋대로 신나게 뛰어다니다 무언가를 찾아들고 온다. 풀이나 나무도 있고 벌레도 있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숲속에 길게 누워 썩어가는 나무에 올라 줄줄이 균형을 잡으며 걷는다. 썩은 나무껍질이 벗겨지면서 한 아이가 낙엽 위로 풀썩 쓰러진다. 아이는 아픈 기색도 없이 나무껍질 속을 들여다보면서 벌레를 찾았다고 외친다. 꼭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 같다. 크기는 작지만 몸 전체가 반짝반짝 윤이 나고, 딱지날개가 진한 빨간색이라 눈에 확 띄는 벌레다. 얼른 잡아서 손바닥 위에 뒤집어 놓는다. 툭 튀어 몸을 바로 하고는 부리나케 날아가 버린다. 툭 튀는 모습을 보고는 몇몇 아이들이 탄성을 지른다. “! 나 저거 알아!” 썩은 나무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이제 막 잠에서 깬 진홍색방아벌레다.

예전에 방아벌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잇감이었다. 방아벌레를 잡아 뒤집어 놓고는 툭 튀어 오르게 하면서 놀았다. 방아벌레를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다. 방아벌레라는 이름은 잘 몰라도 튀어 오를 때 똑딱소리를 낸다고 해서 부르던 똑딱벌레라는 이름은 다 알았다. 불빛을 좋아하는 방아벌레는 종종 집 안으로 날아들어 오기도 한다. 도시 아파트에도 심심치 않게 날아 들어와, 심심한 여름밤 아이들 놀잇감이 되어 시달림을 당한다. 처음엔 시커먼 벌레를 두려워하던 아이들도 톡, , 튀어 오르는 벌레에 끌려 금방 놀이에 빠져든다.

방아벌레는 자기 몸의 몇 십 배를 튀어 오를 수 있다. 방아벌레는 앞가슴 양쪽 끝에 작은 돌기가 있는데, 이것을 지렛대로 삼아 튀어 오른다. 먼저 가슴을 등 쪽으로 젖혀서 앞가슴에 난 돌기를 가운데가슴에 건 다음 다시 몸을 배 쪽으로 구부려서 걸려 있던 돌기가 풀리는 반동으로 튀어 오른다. 방아벌레가 왜 튀어 오르는지는 뒤집어져 버둥거리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발이 짧아서 버둥거리기만 할 뿐 몸을 되뒤집어 바로 돌리기가 쉽지 않다. 이때 몸을 튕겨서 공중제비를 돌아 몸을 바로 되돌리는 것이다. 튀어 오르기는 좋은 방어수단이 되기도 한다. 천적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 튀어 올라 도망을 치고, 또 천적을 놀라게 해서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방아벌레 종류는 100종이 조금 넘는다. 방아벌레는 대개 몸이 검거나 흙과 닮은 색이고, 별다른 무늬가 없어서 구별이 어렵다. 그래도 진홍색방아벌레는 가까운 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데다 반짝이는 붉은 딱지날개 덕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진홍색방아벌레는 썩은 나무 속에서 어른벌레로 겨울을 난다. 한겨울이나 이른 봄 숲에 가서 썩은 나무껍질을 벗겨 보면 겨울잠 자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끔 여러 마리가 무리지어 함께 겨울을 나는 모습도 보게 된다. 잠에서 깬 어른벌레는 꽃에 모이기도 하고 과실나무 새싹을 갉아먹기도 하는데, 피해가 그다지 크지 않은지 해충으로까지 알려져 있지는 않다. 잡아서 키울 때는 동물식과 식물식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한국의 딱정벌레>,김정환, 교학사]인데, 자연 상태에서는 무얼 먹는지, 한 살이가 어떤지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방아벌레 가운데 몸 전체가 붉은 대유동방아벌레와 이름처럼 꼭 녹슨 색을 띄는 녹슬은방아벌레는 숲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방아벌레도 더러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청동방아벌레다. 청동방아벌레 애벌레를 철사벌레라고 하는데, 농작물 특히 감자에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대부분 방아벌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얼마 전 산림청 국립수목원에서 국내에 사는 것으로 밝힌 광릉왕맵시방아벌레는 소나무재선충병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 천적이라고 한다.

이런 벌레를 아는 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지금 당장 쓸모 있는 것만을 찾는다면 지금의 세상을 넘어설 수 없다. 지금 쓸 데 없는 곳 속에 미래가 숨어 있다. 방아벌레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비밀을 간직한 벌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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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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