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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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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4.29 23:21

노동자 인간 선언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1987년 여름, 노동자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투쟁하였는가. 다양한 요구가 있었지만 노동조건 면에서는 임금인상, 조직적으로는 민주노조 쟁취가 가장 큰 요구였다. 무엇보다 큰 요구는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것이었고 이는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당당하게 선언한 것이었다.

 

나에게 빵을 달라! 배가 고프다!

1987728일 현대중공업 노동자 17천여 명이 회사 종합운동장에 모여 농성에 들어갔다. 노동자의 요구를 즉석에서 수렴한 결과 100여 개 넘는 요구안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임금인상을 포함한 20여 개 안으로 회사 측과 협상을 시작했지만 결렬되었다. 현대중공업은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사측이 어용노조를 설립하였고, 이에 맞서 11인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 투쟁을 이끌었다. 728일부터 31일까지의 농성투쟁으로 대책위원회 인정 등 요구조건을 쟁취하였다. 당시 현중노조개편대책위원회가 교섭 보고를 위해 만든 유인물의 내용에 그 요구조건이 정리되어 있다.

 

<8시간 노동하여 생활임금 쟁취하자>

 

나에게 빵을 달라! 배가 고프다!

임금 인상 25% 고가차등제 폐지(상여금차등 폐지)

안전재해자에 대한 목욕탕, 이발소 운영권 인계

안전재해자 평생 생활대책 보장

출근시간 아침 8시로 실시(춘하추동)

식사 처우 개선

작업전 체조, 작업시간 인정 및 중식시간 체조를 1시에 실시

훈련소 출신과 공채 입사자의 임금격차 해소

두발자율화

34일의 유급휴가 소급 실시 


87년 노동자대투쟁은 강요된 희생(선성장 후분배)에서 벗어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한 투쟁이다. 1987년 대투쟁 이후 1988년 여름까지의 임금상승률은 15.5%였고(생산성 증가율 14.3%, 소비자물가 상승률 7.1%) 제조업 노동자의 임금인상률은 이보다 높은 19.6%였다.[<분기별 노동동향분석>, 한국노동연구원, 1990.10.20.]

그렇다면,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을까. 투쟁의 결과로 노동자들의 절대 임금이 꾸준히 상승했지만, 이와 나란히 상승곡선을 그린 물가 인상, 노동생산성 등을 감안하면 실제 생활 임금은 늘지 않았다. 특히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는 저임금 대상의 확대, 임금격차의 심화, 복지의 지속적인 감축 등으로 이어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수준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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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도 인간이다" (좌) "어용노조 물러가라"(우)  [사진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노동자라는 이름을 되찾기까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가장 큰 성과는 노동자들이 자기 이름을 되찾고,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이~, 김씨~대신, ‘미스터 리, 미스 김대신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공돌이, 공순이로 자신을 비하하던 노동자가 대투쟁 이후 노동자라는 자신들의 이름을 당당하게 내세웠다. 작업복을 입고 시내에 나갈 수 있었고 미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름 뿐 아니라 관리자들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복종하던 작업장 문화를 바꿔 노동자가 주도하는 작업장을 만들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두발자유화, 구타금지가 들어있었고,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지하철은 군대가 아니다”, 사금함(출근 시 주머니에 있던 돈을 다 내놓고 퇴근 시 되찾아가는 업무 규정. 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매우 악질적인 규율이었다.) 폐지 요구가 들어있었다. 군사정권 아래 군 출신들이 임원으로 간 사업장들의 군사문화 철폐를 요구하였다. 그동안은 작업장에서 만연한 폭력을 감내해야만 하는 질서나 관행처럼 여기던 노동자들이 이제는 노동인권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30년이 지난 오늘날, 이 또한 자본은 다른 양상으로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최근에는 호칭이나 구타 문제는 상대적으로 잦아든 반면, CCTV를 통한 감시, 위치 추적, 핸드폰 등을 통한 업무 감시 등 현대기술의 발전을 등에 업은 자본이 매우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노동인권을 침해한다. 더 심각한 것은 노동자들이 이러한 통제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는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생존권과 인권을 위해 투쟁해왔으며 앞으로도 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8시간 노동하여 생활임금 쟁취하자!’,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19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노동자가 투쟁으로 쟁취하고자 했던 요구는 30년이 지난 현재에도 노동자의 절실한 요구이자 투쟁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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