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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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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기울어진 법제도 바꾸려면

폭넓은 지지와 연대가 절실해요

노동3권 침해하는 손배가압류는 악마의 제도

손배 취하 조건으로 소송 포기, 희망퇴직 종용하는 사례 부지기수

 

 발레오만도, 상신브레이크, 쌍용차, 유성기업, 현대차비정규직, 동양시멘트... 지금껏 자본의 손배청구는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무력화하고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그래서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해고 폭탄, 구속 폭탄에 이어 손배가압류 폭탄이라는 삼중고를 겪는다는 얘기가 언젠가부터 공식처럼 굳어졌다.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손잡고는 노동자들에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42월 결성된 단체다. 노동이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민들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손잡고윤지선 활동가를 <변혁정치>가 만났다.

 

Q 먼저 손잡고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손잡고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모임이에요. 원래 손잡고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모금을 통해서 피해자들을 직접 지원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손배가압류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니까 우선 제도개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전문가들, 학계, 시민사회가 한자리에 모이게 된 거였죠. 마침 주간지 시사인의 독자 한 분(배춘환 손잡고 회원대표)47억 배상판결을 받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소식을 기사로 접하고, 47천 원과 함께 손편지를 시사인 편집부로 보내왔죠. 처음에는 이 47억이라는 배상금을 10만 명이 47천 원씩 모으면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사연과 함께 돈을 부치신 거였는데, 이게 노란봉투캠페인으로 진화한 거예요. 이 캠페인이 많은 사람들의 호응 속에 잘 진행됐었고, 이후 아름다운재단과 시사인, 그리고 저희(손잡고)가 공동사업의 관계를 맺고 손배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손잡고가 캠페인 기금을 받아서 사업을 계획할 때, 배상금을 갚아주는 것으로 이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있었죠. 그리고 사실 갚을래야 갚을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고요. 어쨌든, 이 캠페인의 취지가 손배가압류로 인한 피해 노동자들을 지원한다는 데 있었기 때문에, 기금의 상당액은 피해자 지원 쪽으로 갔죠. 피해자를 지원하려면 저희가 모금운동을 꾸준히 진행했어야 하는데, 이제 저희 활동이 법제도 개선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진 못했어요.

  

부당한 판결로 인한 손배, 갚을 수도 없고 갚아서도 안 돼

Q 사실 세간에서는 손잡고가 손해배상 판결액을 갚는 단체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A , 아무래도 그런 인식이 있죠. 피해자를 지원하는 건 손잡고가 여러 가지 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인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손해배상금을 대신 갚아주는 것은 아니에요. 어쨌든 생계가 끊어지는 부분들, 예컨대 가압류가 들어오면 당장 병원에 가고 싶어도 통장에서 돈을 꺼낼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을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들이 처음에는 기금을 받아서 피해자들에게 지원할 때 어떻게 기준을 정해야 하나, 굉장히 고민이 많았어요. 손배가압류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해고자도 있지만, 임금이 압류된 분들도 있었고, 또 임금압류는 아직 진행되지 않았지만 회사가 손배가압류를 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에 놓여진 분들도 있었고요.

이런 문제들을 확인하면서, 저희 나름대로 정한 원칙들이 있었거든요. 일단 첫 번째로 이 사안들을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려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봤어요. 손배가압류를 통해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힌 이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시민들이 이렇게 모금과 편지를 통해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고 있음을 저희가 대신 전해야 했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말 그대로 긴급처방이었어요. 저희가 이렇게 모금을 전달하는 건 일시적인 것이라서, 실제 피해 노동자들의 일상이 회복되는 데에는 크게 영향을 미칠 수가 없어요. 아주 메마른 땅에 잠깐 분무기로 물 뿌리는 정도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당장 곤란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와 가족들에 대한 긴급생계비, 의료비 등의 지원을 우선적으로 하게 된 거죠.

 

Q 손배가압류 피해자에 대한 긴급 구제 요건에는 노동조합이 아닌 개인으로 대상을 정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지원대상을 특정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A 저희가 개인이나 조합의 구분을 두지 않았을 뿐이지, 개인만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기금 자체는 개인에게 간 게 맞고요. 개인을 배제하고 조직만을 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건데요. 노동3권이라는 건 결국 단체행동을 통해 구현되는 거잖아요. 쟁의는 단체행동의 결과인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물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게 설령 노동조합의 간부라 하더라도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흔히 손해배상가압류를 악마의 제도라고 부르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잖아요. 그 핵심적인 이유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여러 장치들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리고 손배가 그런 쪽으로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같은 노동조합 안에서 우리가 같이 파업을 했어요. 그런데 누구는 손배 책임이 있고, 누군 없어요. 그건 누가 결정을 하느냐? 회사가 결정하는 거죠.

손배 청구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게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어떤 분들은 노동조합이 투쟁을 잘 하면 이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세요. 하지만, 이 손배라는 게 돈이 걸려 있고, 그게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내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이 걸려 있고, 또 내 가족들의 생계비로 지출돼야 하는 생계비 통장이, 내 월급통장이 당장 걸려 있는 거잖아요. 그러다보니, 자본 입장에서는 개별 조합원들을 회유하기가 아무래도 쉽겠죠. 확약서를 들이밀면서 손배 빼줄테니, 대신 네 권리를 포기해라.”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포기하게 만들고, 희망퇴직에 동의하게 만들고, 이런 식으로 말이죠. 손배라는 게 개인의 생존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회사의 회유에 응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밀어붙이는 거더라고요. 결국, 노조가 회사와 타협을 선택했을 경우 끝까지 남게 된 개인이 손배가압류 책임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거죠. 이런 현실의 문제 때문에, 노동조합만을 지원대상으로 특정하기 어려웠던 거죠.

 

소수의 문제로 치부돼 안타까운 마음도

Q 손배 문제로 탄압받고 있는 사업장 실태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A 먼저 KEC의 사례로 설명 드릴께요. 지금 KEC 조합원들을 상대로 임금 압류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3년 동안 30억을 갚을 때까지 최저생계비 정도의 금액만 제외하고 전부 임금 압류를 해요. 그게 벌써 9개월째인데,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이탈을 유도하려고 3노조가 설립되느니 마느니 이런 소문까지 돌고 사람을 불안에 떨게 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등장하거든요. 초기에는 사측이 노동조합을 상대로 301억의 손배소를 청구했어요. 301억 배상금이 만약 그대로 선고가 나면 88명이 1/n을 해서 갚아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88명의 조합원 중에 이탈자가 발생하게 되면, 사람이 줄어든 만큼 금액이 줄어들지는 않거든요. 연대책임이라고 해서 배상금은 그대로 남은 상태에서 사람만 줄어드는 거죠. 한 사업장의 테두리를 넘어서 시야를 더 확장해보면, 민주노총에 가입한 노동조합이 대략 1천여 곳이 넘는다고 해요. 그 중에 손배가압류로 고통받고 있는 사업장 수는 저희가 파악키로는 작년 20, 올해 집계로는 25개 사업장이 있어요. 이렇게 수치만 보았을 땐 손배가압류가 소수의 문제로 돼버리는 거죠.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하이디스는 손배가 3건이 들어왔는데, 이상목 지회장님 첫마디가 그거였어요. “내가 진짜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을 만한 쟁의다운 쟁의라도 했으면 억울하지 않다.”는 거예요. 회사가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에게 27억 원의 손배청구와 30억 원에 달하는 가압류를 걸었거든요. 그런데, 그 이유가 너무 황당했죠. 하나는 대만 원정투쟁 당시에 경영진 사진에 신발을 던졌다고 모욕죄로 1, 두 번째는 배재형 열사의 죽음으로 사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사장이 죽였다.”고 말해서 명예훼손으로 4, 마지막 세 번째는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회사 로비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 22억을 청구한 거예요. 이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재판들이 계속 진행되고 재판부는 결국 사측의 막무가내식 손배 청구를 받아들여서 유죄판결이 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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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금속노동자> 김경훈'


사법부와 기업 압박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노력이 중요

Q 손배가압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한 상황인데요. 법제도 개선을 위해 모색하고 계신 방안은 무엇인가요?

A 이게 보통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면, 누구나 내적인 갈등에 직면할 수밖에 없잖아요. 돈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나의 정당한 행동까지 위축시키고 조직을 떠나게끔 등떠밀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아무리 제도를 바꾸려 애쓴다 해도, 사실 이걸 어디까지 해소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최근에는 모금운동을 재개해야겠다는 계획을 잡았어요. 왜냐하면 초기에는 긴급생계비, 의료비를 집중적으로 지원했는데, 막상 활동을 해보니 법률비용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2015년도에 손잡고에서 인지제도와 재판청구권에 관한 국회 토론회를 열었는데요. 가령 노동사건의 경우엔 인지대 납부 부담 때문에 상고를 포기하는 일이 빈번해요. 손배청구 금액이 커질수록 행정비용도 같이 늘어나는 거죠.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중에는 90억 배상 판결이 났는데, 예상 인지대가 거의 1억 원에 달해서 결국 항소를 포기해야 했어요.

이러다보니 자본이랑 싸운다는 게 정말 돈이 많이 드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근본적인 대책들을 찾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다방면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당장 저희가 돈 없이 뛰어들 수 있는 게 법제도 개선이다보니까, 지금으로서는 활동을 갈아넣어서할 수밖에 없는거죠. 그럼 법제도 개선이 과연 근본적인 방안인가 하면, 이것도 결국 반쪽자리 방안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법이 제정된 시점부터 적용되기 때문이에요. 그 이전에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이미 법적 판단이 종료된 사업장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들이 또 남는거죠.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저희가 대중에게 손배 문제를 알리는 작업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라도 법이 바뀐다면 재판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테니까요. 그래서 사법부나 기업들을 압박하는 사회운동적 방식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인터뷰=임용현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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