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노동조합과

정치적 노동운동의 만남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일반화된 노동조합과 의식적 활동가들의 만남

87년 노동자대투쟁은 자연발생적이었다는 평가, 투쟁에 의식적 노동운동가들이 결합하지 못하였다는 평가가 많지만 노동자대투쟁은 그 이전부터 이어진 크고 작은 투쟁이 또 다른 투쟁에 영향을 주면서 터져나온 것이었다. 그 촉매 역할을 했던 한 축은 학생운동 출신으로 현장에 투신한 이들이었다. 80년 광주항쟁을 중요한 운동의 저수지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한국사회 지식인들이 마르크스를 만나고 계급을 만나는 계기였기 때문이었다. 광주의 좌절은 지식인들에게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현실분석과 전망을 요구했고 지식인들은 그 전망을 마르크시즘에서 찾았다. 대학에는 수많은 의식화써클이 생겨났고 학생회 부활 이후에는 학생회 대중 조직으로까지 마르크스와 레닌 학습이 퍼졌을 정도였다. 당시는 소련의 교과서를, 그것도 대부분 일본어로 번역을 거친 것들이 주로 읽혔다. (이후 교조주의, 권위주의 세대를 만든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학생운동 진영에서는 투쟁과 조직을 둘러싸고 야비-전망 논쟁, 깃발-반깃발 논쟁, 변혁론을 둘러싼 CNP논쟁, NL-CA논쟁, NL-PD논쟁 등이 이어졌다. 이런 학습과 논쟁을 통해 의식으로 무장한 학생들은 노동현장으로 눈을 돌렸고 학생운동 -> 노동현장 투신은 기본 코스가 되었다. 위장취업자’, ‘학출노동자들은 신분문제로 조합 활동의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조합 지도부를 도와 밑으로부터 조직력을 강화하는 활동을 하거나 상담소나 연구소를 통해 노동조합 건설에 기여하는 활동을 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은 노동자에서 조합원으로, 조합원에서 활동가로 성장해갔다.

학출노동자들의 활동이 관념적이었다, 현장노동자들과 충분히 동화되지 못한 채 지도세력으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개량주의자들의 행위로 비난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들이 노동자들의 계급적 진출에 미친 영향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구로동맹파업, 87년 노동자대투쟁은 이러한 활동과 노동자들의 만남에서 시작된 투쟁들이었으며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그 만남은 더 공고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서노협 임투.JPG

정치적 의식화의 매개로 임금인상 투쟁을 조직하는 활동이 88년 이후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사진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88년 임금인상 투쟁의 의식적 조직화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노동자가 계급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운동은 질적 변화를 맞게 된다. 노동자는 사회의 주인임을 선언하고 자신이 어떤 계급인지 인식하는 출발을 하게 된 셈이다. 노동현장에 투신했던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도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실천에 들어갔다.

그 움직임은 88년 임금인상 투쟁을 준비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활동가들은 그동안 현장 활동을 통해 경험했던 임금인상 투쟁 조직화 사례를 분석하여 최저생계비 쟁취라는 목표 속에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을 보여줄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분석해 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지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석하며, 임금인상을 반대하는 자본가의 논리를 분석해 현장활동 지침을 마련하였다. 임금인상 투쟁을 위해 투쟁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사업장 현황 분석, 계획 수립, 선전선동 및 교육 활동 지침, 탄압에 대한 대응, 파업 프로그램, 교섭 방법, 가족 조직화, 투쟁 마무리 방법, 투쟁 후 역공에 대비하는 준비 등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에 대한 지침서를 마련하였다. 88년부터 이런 지침서가 공식 출판물로 발간되었고 이후로도 몇 년간은 임투 지침서가 전국의 사회과학서점에서 판매되었다. 대학가 서점에서는 임금을 받아본 적 없는 학생들도 이런 책을 사 읽었을 정도였다. 이러한 의식적 지침은 실제 노동현장에 영향을 미쳤다. 가령 88년 임금 요구를 정률인상이 아닌 정액인상으로 하여 노동자적 관점을 부여한다거나 임금인상투쟁을 통해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설명하며 정치의식을 높이고, 연대투쟁 성과로 지역조직을 결성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 등을 볼 수 있다.

노동자대투쟁의 분위기는 88년과 89년을 거치며 더욱 확산되었다. 이때는 옆 사업장은 이런데...”가 임금인상 요구안이었고 이에 대해 사측이 한 마디라도 토를 달 경우 그 자리에서 파업을 선언하고 농성에 들어가는 방식이 보통이었다. 중소사업장에 노조가 속속 생겨났고 자본가들이 구사대를 조직하면 노동자들은 정당방위대를 조직해 대응했다. 여성사업장이 투쟁할 때는 남성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와 밤새 파업 대오를 지키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러한 경험은 선진노동자를 만들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연대조직 건설, 전국조직 건설로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진출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저절로 이뤄진 일은 없다. 의식적 노동운동 세력이 현장 노동자와 만나 현장 자체에 의식성을 부여하려고 했던 활동, 임금인상 투쟁을 조직하면서도 그 속에 평등사상을 실현하려고 했던 노력들은 이후 전노협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운동을 변혁적 노선으로 자기 정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