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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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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6.15 17:08

눈싸움

<투쟁의 돛을 높이 올리며>, <강철! 금속연맹>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어린 친구들이 까르륵 웃으면서 하얗게 눈이 쌓인 길 위에서 눈싸움을 하며 어딘가로 뛰어간다. 그 뒤를 어린 꼬마가 형아를 부르면서 뒤뚱뒤뚱 거리며 쫓아가다 넘어진다. 앞서가는 형아를 놓치면 안 되는데, 맘이 바쁜 꼬마가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나 뛰더니 또 넘어진다. 꼬마의 옷 때문이다. 옷을 너무 껴입어서 뒤뚱대느라 뛰지를 못한다. 미치겠는데, 뒤에선 젊은 엄마가 손에 옷을 들고 이름을 부르며 뛰어온다. 아이가 추울까봐 뛰지도 못할 정도로 껴입혀놓고서 그래도 걱정이 돼 옷을 챙겨 나온 것이다. 엄마의 따뜻한 마음에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영화 속 이야기다.

 

다툼으로 지새운 일 년

아파트 부엌 작은 창문으로 보인 밖은,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나는 아예 눈이 온 세상을 확 덮어버려 이 아파트 안에서 영원히 갇혀 있으면 했다. 이 날은 노뉴단 이사하는 날이었다. 당시 노뉴단은 전노협과 함께 한 지난 몇 년간 활동이 상당히 안정화되어서 초기 9명에서 시작하다가 3명까지 줄었던 것이 이쯤에 다시 9명이 됐다.7년간 활동의 성과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국제교류의 성과로 서울국제노동영화제로 발전하게 될 해외노동영화들을 국내에 소개했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제작강좌도 시작했다. 고 김진균 교수님이 우리의 후원회장을 자처하셔서, ‘노뉴단 후원회의 밤을 갖기도 했다. 말하자면 전노협이 해산되던 96년에, 노뉴단 안에는 뭔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좋은 시절이라면 좋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96년 내내 시간만 나면 싸웠다.

당시 9명의 구성원은 이랬다. 넒은 의미에서 창립 멤버라 할 수 있는 선배가 2명이었고, 노뉴단 창립 3년 내에 들어와 활동이 한 3년차 정도 되는 친구가 2명이었고, 활동을 시작한지 1년 정도 되는 친구가 3명이었고, 싸우느라 바빴던 그 해에 들어온 친구가 2명이었다. 선배 2, 3년차 1, 1년차 1명 이렇게 4A팀과 3년차 1, 1년차 1, 신입회원 2명 이렇게 4명이 B팀이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편을 오가지 않고 1년 내내 싸웠다. 1년까지 끌고 가지 않고 좀 더 빨리 매듭지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1년차 중 이편도 저편도 속해 있지 않은 한 명이 있었다. 캐스팅 보트가 된 그 녀석은 말은 세게 해도 마음은 너무 여려서 AB팀이 나뉘어 표결을 할 때면 어김없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녀석의 착한 마음씨 덕분에 A-B팀의 싸움은 조금 더 길어졌을 것이다. 아마도.

일 년 내내 9명이 굳은 얼굴로 회의실에서 싸워댔고, 각기 나뉜 편으로 각자의 지인들을 찾아 하소연을 했고, 그들에게 신의 훈수를 구걸했으나 뜻대로 되진 않았다. AB의 싸움에 자의반 타의반 훈수 두는 사람들 대부분이 캐스팅 보트였던 그 녀석처럼 마음이 모질지 못하거나 AB를 겹쳐 알기 때문에, AB든 어느 한쪽이 한쪽을 제압해서 끝내는 훈수를 두기 보다는 AB의 아름다운 화해를 위한 훈수를 두었다. 그러니 싸움이 끝날 리가 없다. 백약이 무효했다. 훈수 두는 사람들이 모두 두 손 두 발 들고 나가 떨어졌을 때 즈음, 같이 사무실을 쓰고 있는 백서팀에서 서로 골치 아프고사무실 계약도 얼마 안 남고 했으니 이사 가는 게 어떨지 제안했다. 이사는 A팀이나 B팀이나 서로 마지막을 예감하며 A팀은 강행했고 B팀은 저지에 나섰다.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또 다른 작업

눈 오는 날, 바로 그날 아침. 이사를 가려는 A팀과 이사를 막으려는 B팀이 건물 앞마당에 소복이 쌓인 눈 위에서 죽을 듯이 싸웠다. A팀과 B팀이 실랑이를 벌이다 누군가 미끄러운 눈 위에서 넘어지고, 분함에 통곡을 하고, 아수라장이었다. 그 광경을 누군가는 촬영을 했다. 이사가 불가능해 보였지만 짜증이 난 이사 트럭 기사가 트럭을 출발시켰다. A팀은 B팀을 창신동 눈길에 남겨두고 한강을 건너 봉천동을 향해 도망치듯이 갔다. 이 날도 캐스팅 보트의 그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 싸웠지? 너무 오래된 이야기가 돼 버렸다. 나의 시원찮은 기억이 B팀에게 본의 아니게 분통을 터트리게 할 것 같아 안 쓰는 것이 좋겠다. 다만 당시 내가 소속된 A팀은 겁이 무척 많았다는 것은 말하고 싶다. 우리는 봉천동의 조그만 오피스텔에 짐을 풀었는데, 그곳에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까지 B팀이 사무실에 나타날까봐 긴장했다. B팀은 나타나지 않았고 캐스팅 보트의 그 녀석은 나타났다. 왜 싸웠지? 그것은 마치 눈 오는 날 눈싸움을 하듯이, 노뉴단이 만들이 낸 7년의 성과와 한계를 놓고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싸움이지 않을까? 아무리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도 눈싸움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

이해에 우리는 지난해 민주노총의 건설과 전노협의 해산을 다루었듯 또 하나의 조직 해산과 결성에 관한 작업을 했다. 해산은 조선업종노동조합협의회(조선노협)이고 건설은 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연맹)이다. 조선노협의 해산은 <투쟁의 돛을 높이 올리며>(19962/45)에 담겨있고, 금속연맹의 건설은 <강철! 금속연맹>(19961/75)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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