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조건준 사건이 드러낸 것

 

백종성집행위원장

 



65일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는 삼성그룹의 노조와해 공작을 총괄한 혐의로 구속된 삼성전자서비스의 최평석 전무에 대해 석방탄원서를 제출한 행위를 사유로 금속노조 경기지부 집행위원 조건준을 면직, 즉 해고 처분했다. 해당 결정은 금속노조 사무처 운영과 업무처리 기준을 명시한 금속노조 처무규정에 근거해 이루어졌다.

제명이 가능한 상벌규정을 적용하지 못하고 면직이 최고 수위인 처무규정을 적용한 이유는 금속노조 상벌규정상 조합원 징계는 해당 조합원이 속한 지부에서 발의하게 되어있고, 조건준이 속한 금속노조 경기지부 임원진이 진상조사 없는 징계 결정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진상조사를 제기한 금속노조 경기지부 임원진 입장은 단지 징계절차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왜 탄원서가 나오게 되었는가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표명, 사실상의 징계반대 주장이었다. 논란거리가 되어서도, 될 수도 없는 상황이 논란거리가 된 상황은 참담하다.

 

고려의 가치도 없는 해명

돌아보자. 515, 금속노조 경기지부 집행위원 조건준이 삼성전자서비스 최평석 전무를 위해 탄원서를 제출했음이 알려진 이후, 조건준은 삼성전자서비스 직고용을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정규직화를 위해서는 교섭이 잘 풀려야 하고, 교섭담당자 구속은 교섭에 악영향을 미치며, 그래서 최평석이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평석이 누구인가? 1981년 삼성전자 입사 후 줄곧 무노조 경영실무에 관여해 온 자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2013년부터는 없던 전무 자리를 만들어 회사 2인자로서 노조대응을 총괄했으며, 노조대응 조직인 종합상황실실장을 맡아 소위 그린화작업을 기획·총괄했다. 노동조합은 곧 해고라는 공포를 조성하고자 서비스센터 4곳을 폐업하고 사장들에게 수억 원을 건넸고, 2014년 염호석 열사 장례를 가족장으로 마무리 짓고자 열사 부친에게 6억 원을 건네기까지 했다. 물론 모든 노조파괴 비용은 삼성 노동자의 피와 땀이다.

물론 이는 부차적이다. 최평석이 쌓은 죄업이 크건 작건 본질은 같으며, 조건준과 그를 두둔하는 사람들 역시 최평석의 범죄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조건준은 소위 삼성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근거로 무고함을 주장했다. 그 말대로 탄원서 제출이 교섭전술이라면, 그 특수한 노사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조건준과 같은 소수일 것이다. 그 소수는 대중에게 공개되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대중을 위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해명대로라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노조파괴 범죄자가 책임지는 교섭을 통해서만 정규직이 될 수 있다. 이는 최종범 염호석 열사에 대한 모독임은 물론, 전체 노동자에 대한 모독이다.

 

조건준, 이재용의 도구

최평석과 같은 노조파괴범죄자가 교섭을 진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무노조 정책을 끝낼 수 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황당하다. 이재용 구속은커녕, 노조파괴 실무책임자조차 다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무노조정책이 폐기될 수 있단 말인가?

조건준은 최평석을 활용해 노동자들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드러난 실상은 어떠한가? 자본이 조건준 같은 거간꾼을 활용해 민주노조를 통제할 뿐이며, 그 과정에서 이익을 얻는 것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조건준 자신이다. 이들은 심지어 교섭 장소도, 교섭 시간도, 교섭 주체도 알 수 없는 기괴한 교섭도 노동자를 위해 필요하다고 했지만, 2014년 조건준의 블라인드 교섭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합법적 비정규직이라는 규정을 안겼을 뿐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바로 삼성자본, 그리고 노조파괴 최종책임자 이재용이다. 탄원서 사태는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조건준 면직은 사태를 바로잡는 시작일 뿐이다. 정상적 노동조합이라면, 조건준과 같은 이들을 제명으로 추방해야 한다. 조건준 면직 결정 이틀 후, 또 하나의 비리가 공개되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전 부지회장 박성주가 협력사 사장에게 요구해 퇴직을 대가로 거액 위로금을 받아냈고, 거간꾼은 조건준이었다. 이것도 특수한 노사관계에 근거한 전술인가.

 

필요한 것은 협상전문가가 아니다

노조파괴범 이재용 구속을 전 민중의 요구로 만들어야 할 중대한 시기에, 정작 노동조합 내부 비리가 연달아 터졌다. 사태가 드러내듯 민주노조에 필요한 것은 사측과 비공식 교섭을 열 수 있는, 필요하다면 노조파괴범에 대한 탄원서도 제출할 수 있는 협상전문가가 아니다. 총회 민주주의가 민주노조의 원칙인 이유는, 단지 누가 그런 규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만 민주노조가 민주노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삼성전자 서비스노동자들은 재벌도 공범’, ‘이재용 구속을 광장 전체의 요구로 만들어내고자 싸웠다. 염호석최종범 열사처럼 목숨을 잃지 않아도 노동조합 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함께 싸우자고, 그 시작이 이재용과 같은 범죄자의 처벌이라고 외쳤다. 6천 건에 달하는 노조파괴 문건이 세상에 드러나자마자 삼성이 직고용을 발표한 이유는 조건준이 회사 관계자에게 직고용을 요구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런 투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교섭전문가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자본과의 투쟁,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