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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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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인정을 넘어 

노동자 알 권리 확대와 건강권 쟁취로

 

이종란반올림 상임활동가



724일 반올림과 삼성전자는 조정위원회의 중재를 수용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로써 끝이 없을 것만 같던 1,023일간의 반올림 농성을 마무리했다. 중재안에는 새로운 보상안 마련’, ‘반올림 피해자 보상’, ‘삼성전자의 사과’, ‘재발방지 및 사회공헌의 내용이 담긴다. 8월 중 세부안이 마련되고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최종 중재안에 대한 합의서약 수순이 남아 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삼성이 이미 다 해결한 일이라고 덮어버린 직업병 협상이 긴 농성 끝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점은 끈질긴 투쟁의 결실이었다.

 

당사자의 끈질긴 투쟁과 연대의 힘으로 이끌어낸 결실

합의에 이르기까지 농성기간만 1,023일이나, 삼성전자와 반올림 간의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의 시작은 54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황유미 님의 백혈병 산재인정 판결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인정이 되는 것을 우려한 삼성전자가 20133월에 공식 협상을 제안한 것이다. 그때부터 따진다면 꼭 54개월 만에 합의에 이른 것이다.

삼성이 진정성을 가지고 책임을 다하는 협상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황상기 아버님이 중재 합의할 당시에 눈물을 훔치며 말씀하신 바와 같이 돈 없고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작업현장에서 화학약품에 의해 병들고 죽어간 문제를 10년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섭섭한 일이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삼성과 정부가 외면해 온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반올림과 피해자 가족들은 굽힘없이 최선을 다해 싸워온 것이다. 삼성전자는 단지 소송 원고 8명 혹은 그에 해당하는 질병 사례만 제한적으로 보상하고 마무리 지으려 했던 것을, 그간 제보되었던 여러 암과 희귀난치성 질환까지 삼성전자가 책임져야 할 피해자들을 확대하기 위해 반올림과 피해자들은 버티고 또 버텼다. 그 결과 삼성이 2015년 자체보상안에서 배제한 피해자들이 이번 중재안으로 수용 가능하게 될 것이다. 2015년에 비해 공식적으로 산재인정을 받은 질병 사례도 늘어났고 동종업계인 SK하이닉스와 LG디스플레이의 지원보상체계도 마련되어 실시되고 있는데 조정위는 이렇게 변화된 지점들, 개선된 점을 반영하기로 하였다.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 같은 삼성전자가 이번 중재안을 수용하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당사자들의 끈질긴 투쟁이 있었다. 다만 2015년의 암울했던 상황에 비해 2018년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다. 2015년에는 삼성전자가 제멋대로 자체 보상위원회를 만들어 직업병 협상과 조정을 중단해버렸는데, 당시 대다수 언론은 삼성이 주장하는 대로 직업병 문제가 다 해결된 듯이 보도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 하에서 삼성은 국민연금까지 동원해 경영세습을 완성하던 시기라서 오만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던 때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611월부터 시작된 촛불 정국은 정경유착으로 위태로웠던 한국사회에 희망을 보여주었고, 부패하고 오만한 최고 권력자들이 줄줄이 감옥에 들어갔다. 삼성의 이미지는 추락했다. 더 이상 주요 언론을 쥐고 흔들 수도 없었다. 2018년 삼성전자는 국민들과 시민사회의 비판 여론을 더욱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 놓였던 것이다. 그 결과 직업병 문제 해결 또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까지 주체들의 끈질김과 연대의 확산이 있었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많은 이들이 이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 건설해 나갔다. 어떤 타협도 하지 않을 것처럼 버텼던 삼성전자가 마침내 중재안을 수용하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삼성이 노동자나 시민사회를 배제의 대상으로만 여겨오고 그렇게 행동을 해도 문제가 없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삼성전자가 사회적 변화와 압력으로 직업병 중재안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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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동 삼성사옥 앞 농성 1,023일 만인 지난 7월25일 반올림 농성 마무리 문화제. 농성장 지킴이들이 감사의 인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 점좀빼]



아직 끝나지 않은 반올림과 피해노동자들의 싸움

반올림은 오는 9월 말·10월 초에 있을 최종 중재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고, 이후 제3의 보상기구에 의한 보상 및 재발방지 등 이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편, 이번 삼성전자와의 합의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일 뿐, 모든 문제의 완전한 해결(종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산재인정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전자의 비반도체 사업부문 등에서도 유해화학물질 사용에 의한 직업병 피해사례들이 많은데, 이들에 대한 공식적인 산업재해 인정, 기업에 의한 보상, 또한 여타 다른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보상과 예방, 건강권 쟁취라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삼성전자와의 싸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삼성전자는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마저 영업비밀, 국가핵심기술이라는 논리로 비공개하며 유해화학물질 등 정보에 대해 알 권리를 가로막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되는 1,000여 종의 화학물질정보의 50%는 영업비밀로 가려져 있다. 무엇보다 아직도 노동자들은 백혈병에 걸리고 뇌종양 등에 걸려 투병 중이고 죽어가고 있다. 왜 죽는지, 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알 권리도 막혀있고, 산재인정의 문턱도 여전히 높다. 한순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지라도 반올림은 반도체 전자산업노동자들의 건강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연대의 힘을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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