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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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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희망의 동의어로 급부상한 

미국의 중간선거

 

정용경사회운동국장




제가 민주사회주의자라고 할 때, 저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면, 제가 인류의 역사상 가장 부유한 국가에서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면 한 시간에 최저생활비인 15달러는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1인당 의료비를 평균 두 배씩 더 내는데도 불구하고 보건의료를 모든 사람에게 권리로서 보장하지 않는다는 국제적인 치욕을 청산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청년들의 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명의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가족의 임금수준에 발이 묶여 대학에 갈 수 없거나 빚을 산더미만큼 떠안고 졸업하는 게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인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공립대학의 등록금을 전면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지금 미국에서는 3명의 개인이 미국 전체 민중의 하위 50%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상위 1%1/10이 미국 전체 민중의 하위 90%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요.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하루에 25천달러씩 벌어들이지만 그가 고용하는 노동자들은 푸드스탬프* 와 메디케이드** 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임금을 받아요, [...] 사람들은 윗선의 탐욕과 권력에 질릴 대로 질렸고, 상위 1%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정치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2018815, 미국 방송시장 점유율 31%로 총규모 2위에 달하는 HBO방송사의 한 심야 오락 토크쇼에서, 버니 샌더스는 자신의 신념을 위와 같이 풀어냈다. 트럼프에 대한 대중적 저항을 풍자와 코메디로 풀어내는 부담 없는 프로그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샌더스는 재작년부터 꾸준히 펼쳐온 바와 다름없는 화술과 논증법을 보여준 것이었다. 2016, 유사한 내용으로 진행된 샌더스의 연설은 지금, 다른 어느 때보다도 우리 혁명의 때가 왔다라는 제목으로 조회 수 250만을 돌파하기도 했다.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는 통계와 미국의 현실이라는 조건을 부각시키며 자신이 민주사회주의자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런 방식으로, 버니 샌더스는, 2016년 봄 하버드 케네디스쿨 정치연구소Institute of Politics에서 통계를 진행한 존 델라볼페에 의하면, “단순히 하나의 정당을 왼쪽으로 살짝 밀었던 게 아니라, 아예 한 세대를 -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신세대 집단을 - 전체적으로 좌측으로 견인해 갔다”.

 

버니 효과의 배경

어떻게 이러한 사회주의의 대중화가 신자유주의의 아성인 미국 땅에서, ‘성공한 억만장자 사업가라는 이미지를 팔아 당선된 방송인 코메디언 트럼프의 정권하에서 가능했을까?

첫째, 버니 샌더스는 기층 민중의 분노가 사회주의라는 해답을 갈망하고 있었음을 간파하고 그것을 모아 냈다. 20119월부터 이어진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을 통해 대중화된 상위1%와 하위99%의 대결구도를 활용하여 일상적으로 노동하는 일반 사람들everyday working people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들을 착취와 횡포의 대상으로 삼는 상위 1%를 비판하기 위해 구체적인 통계들을 마련하여 발언 기회 때마다 활용했다.

둘째, 샌더스는 이러한 현실 규탄에 이어, 청년층과 소수자들의 경제적 불안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공화당 및 자본주의 체제의 책임을 엮어 해설하며, ‘대안이 필요하다. 대안은 우리의 손으로 구축 가능하다는 희망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버니 효과, 날로 격화하는 반트럼프 저항운동의 기류 속에서 증폭되며, 11월로 예정된 미 중간선거 예비선거 과정에서도, 50년 이래 가장 괄목할만한 사회주의담론의 주류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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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이민세관집행국의 폐지를 요구하며, 국경을 넘은 난민 자녀들을 수용하는 시설 앞에서 

시위하는 오카시오-코르테즈의 모습.

 


사회주의키워드의 부활과 DSA의 약진

이런 방식으로 2016년 미국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는 18세에서 29세 사이의 청년 유권자 사이에서 54%의 지지율을 보이며 버니 효과Bernie Effect’, ‘Feel the Bern’*** 등의 신조 유행어와 표현들을 낳았다. 이어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공천을 받아 트럼프에게 패배했고, 트럼프에 대한 거센 저항의 흐름 속, 버니 샌더스의 선거캠프에서 활동하던 29세의 히스패닉계 여성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뿐 아니라 줄리아 살라자르, 로라 개비 등, 지역 활동과 노조 활동 등에 기반을 둔 젊은 소수인종 여성들을 필두로 한 청년층 민주사회주의자들이 이 지형을 활용하고 있다. 그간의 정치적 통념을 뒤엎고, 사회주의를 내걸고 연일 승전보를 전하는 중이다.

지난 10년간 상원의원에서 버몬트주를 대변해 온 샌더스는 미국발 신자유주의를 정치적으로 진두지휘하는 두 정당 중 상대적 진보를 자칭하는 민주당과 항상 복잡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샌더스는 민주당 경선을 치루었지만 소속 자체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고,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칭했지만 미국민주사회주의자 정당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소속으로 출마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는 민주당에 대한 미 좌파진영의 오랜 정치적 의존도를 비로소 지워 없애는 데 성공했다. 오카시오-코르테즈는 DSA소속 후보로 공식 출마했고, 뉴욕 지역구에서 10회 하원의원을 연임한 민주당 조셉 크로울리를 상대로 올 6월 압승했다. 1971년 미 사회당 SPA(Socialist Party of America) 내부의 의견그룹에서 시작된 이래로 2016년까지 평균 5,000명~10,000명을 오르내리는 당원 수를 유지하던 DSA는 오카시오-코르테즈의 승리 당일 하루에만 천 명이 넘는 가입당원을 확보했고, 2018828일 현재 DSA 당원은 총 45,000명에 이른다. 20개 주에서 42명이 현재 DSA의 공식 후보로 연방 정부, 주 정부, 지역 정부 차원의 후보로 출마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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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니 샌더스 선거운동 당시 "사회주의자에게 표를 던집시다"라는 문구로 유세하던 DSA 당원들 모습.



DSA의 전술의 의의와 한계

DSA는 민주사회주의 구성위원회Democratic Socialist Organizing Committee와 신미국운동New American Movement1982년 합병으로 공식적으로 구성되었으며, 2017년이 되어서야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SI(Socialist International)을 탈퇴했다(주지하듯, SI는 제2인터내셔널의 해산 이후 창설된 개량적 사회주의정당의 국제연합으로, 코민테른을 견제하며 반공산주의를 내걸다가 근래에는 제국주의, 독재국가 및 신자유주의적 경향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2018년 현재, DSA는 현재 미국 상원의회를 전면 폐지할 것, 미국이민세관집행국을 전면 폐지할 것 등의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착취에 대한 유보적인 입장 표명으로 비판을 받는 등,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DSA는 민주사회주의라는 큰 우산아래 포섭할 수 있는 이들을 그러모으며 대중의 분노를 조직하는 역할을 일임하고 있다. 이들이 활용하는 전술의 의의와 한계가 미국의 상황에서 지니는 의미는 - 비약을 무릅쓰고 정리하자면 - ‘사회주의에 대한 미국 대중의 희망을 다시금 고취시키는 정도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들의 지향적 한계를 감안하고서라도 우리가 지금 한국 땅에서 어떠한 전술을 택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참고함 직한 것으로 여겨진다.

 

* food stamp : 미국의 대표적인 저소득층 식비 지원 제도로서 정부가 지정한 소매업체에서 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쿠폰이나 전자카드.

** medicaid : 소득이 빈곤선의 56% 이하인 극빈층에 연방 정부와 주정부가 공동으로 의료비 전액을 지원하는 의료부조제도.

*** Feel the Bern : ‘따끔한 맛을 보여주마정도의 뜻으로 유행한 표현인 ‘feel the burn’에서 ‘burn’의 철자를 샌더스의 이름에 맞게 각색하여, 상식과 통계를 이용해 토론 상대를 초토화시키는 샌더스의 발언 스타일을 높이 평가하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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