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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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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10.02 15:33

줄점팔랑나비

 

텃밭에는 배초향 꽃이 한창이다. 심지도 가꾸지도 않은 배초향이 쑥쑥 자라 무더기 무더기 꽃 피고 있다. 배초향 꽃에는 호랑나비, 흰줄표범나비 서너 마리가 앉아서 꿀을 빨다가 사람 기척에 놀라 커다란 날개를 펴고 다 날아가 버렸다. 가까이 가서 보니 꿀벌, 꽃등에, 노린재 같은 작은 벌레들이 바글바글하다. 배초향은 벌레들에겐 풍성한 한가위 잔칫상 같다. 이 잔칫상에서 가장 바쁜 건 줄점팔랑나비이다. 꼭 나방처럼 생긴 줄점팔랑나비가 이꽃 저꽃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꿀을 빨고 있다.

줄점팔랑나비는 가을 텃밭 둘레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비이다. 텃밭 옆 고랑을 뒤덮은 고마리, 여뀌 꽃에도 줄점팔랑나비가 보인다. 숲 가장자리에 무리지어 꽃 핀 꽃향유에는 여러 마리가 앉아 꿀을 빨고 있다. 줄점팔랑나비는 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계절에 맞춰 길가에 심어 놓은 국화 앞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볼 수 있다. 공원이나 개천가 산책길에 핀 만수국이나 백일홍 꽃에도 볼 수 있다. 줄점팔랑나비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크기도 작고 색깔도 거뭇해서인지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줄점팔랑나비가 몇 해 전부터 벼 해충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줄점팔랑나비 애벌레는 벼, 보리, 강아지풀, 억새 같은 벼과식물을 먹는다. 애벌레는 잎을 여러 장 겹쳐서 둥글게 말아 집을 짓고 낮에는 그 속에 숨어 있다. 밤이 되면 기어 나와 잎을 갉아먹는다. 벼에 피해를 주지만 방제를 할 만큼 피해가 크지 않다가 가끔씩 수가 늘어 벼 잎을 싹 갉아먹어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2015, 2016년에도 남쪽 지방에 큰 피해를 입혔는데 줄점팔랑나비가 늘어난 것은 이상 고온과 가뭄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중부 지방에까지 피해가 늘지 않고 있다.

줄점팔랑나비는 한 해 세 번 발생한다. 줄점팔랑나비는 잎을 말아서 만든 집 속에서 애벌레로 겨울을 난다. 겨울은 난 애벌레는 봄에 번데기가 되었다가 5, 6월에 첫 번째 어른벌레가 된다. 이 첫 번째 어른벌레는 중부 지방에서는 볼 수 없다. 중부 지방에서는 추위 때문에 겨울을 나지 못하고 다 죽기 때문이다. 봄에 낳은 알에서 자라난 애벌레는 7, 8월에 두 번째 어른벌레가 되고 세 번째 어른벌레는 9, 10월에 나타난다. 중부 지방에서는 여름이 되어야 줄점팔랑나비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을이 깊을수록 수가 점점 늘어난다. 9, 10월쯤엔 서울 도심 국화 화단에서도 줄점팔랑나비를 흔하게 볼 수 있게 된다. 지구온난화로 중부 지방에서도 겨울을 날 수 있게 된다면 줄점팔랑나비는 점점 더 벼 해충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팔랑나비과에 속하는 나비는 몸집에 비해 날개가 작다. 그래서 큰 날개를 가진 호랑나비처럼 우아하게 날지 못한다. 그래도 작은 날개를 쉬지 않고 팔랑팔랑거리며 빠르게 날아다닌다. 팔랑나비라는 이름을 지은 곤충학자 석주명은 나비가 나는 모양이나 행동이 몹시 까불까불 해서 팔랑나비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줄점팔랑나비도 석주명이 이름을 지었는데 뒷날개에 흰 점이 줄 지어 나 있어 그렇게 이름 붙였다. 나비 이름은 조선시대까지도 흰나비, 노랑나비, 범나비 같이 몇 개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산 나비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엔 일본 이름으로 불리다가 해방이 되고 나서 1947년에 석주명이 대부분 지은 이름이다. 석주명은 언어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교과서와 사전을 만들어서 에스페판토어 보급에 힘썼고 제주도 지방 말을 모아서 제주도 방언집을 펴내기도 했다. 언어학자이기도 했던 석주명이 지은 나비 이름은 그래서인지 그 나비에 참 잘 어울린다.

북한에서는 팔랑나비를 희롱나비라 부른다. 팔랑나비와 같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마치 꽃을 희롱하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줄점팔랑나비는 한줄꽃희롱나비라 불리는데 이 이름 역시 날개에 찍힌 무늬를 보고 지은 이름이다. 통일을 준비하면서 남북이 달리 부르는 생물 이름을 통일시켜 나가는 것은 중요한 일 일게다. 대개 북한말에는 어려운 한자 대신 우리말이 잘 살아 있다. 그런데 희롱나비 이름은 왜 한자말로 지었을까? 통일된 나비 이름은 희롱나비보다 팔랑나비가 더 낫지 않을까? 한줄이라는 이름도 줄이 한 개 있는 것 같이 들린다. 줄점이란 이름이 더 나비에 어울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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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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