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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의 자율성’, 

추악한 비리를 덮는 가면


허운┃학생위원회



대학이란 무엇인가? 

보통 통용되는 비유로는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대학가를 보면 과연 이 공간을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별칭으로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켜켜이 쌓인 사립대학 비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 ‘사립유치원 사태의 확장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학은 썩은 추태를 드러내고 있다. 사학재단을 포함해 

대학의 지배자들이 낭비하는 그 돈의 출처는 바로 

학생들의 주머니와 국민 세금이다. 

하지만 저들은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회적 통제를 거부하면서, 자신들의 부패와 낭비를 

‘신성불가침’으로 포장하고 있다.



비리의 온상, 사립대


지난 6월 18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발표한 바로는, 국내 293개 사립대학이 개교 이래 횡령이나 회계부정 등으로 적발된 비리 건수가 모두 1,367건, 액수로는 무려 2,624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만약 이 돈을 실제 교육 지원에 활용했다면, 수많은 학생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비리의 내용을 살펴보면, 재단과 대학 운영자들이 사립대를 현금 인출기 정도로 간주하고 있었음이 잘 드러난다. 지난 7월 3일 교육부 사학혁신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친인척에게 금전상 이익 또는 채용 특혜를 제공한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한 사립대 총장은 교비로 골드바를 구입해 전·현직 이사들과 나눠 갖기도 했다.



‘사학의 자율성’, 그 뒤에 있던 추악한 실체


애초 문재인 정부는 사학 비리나 부실 사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기된 ‘공영형 사립대’라는 대안을 공약으로 받아들인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마치 공영화라는 방안을 검토한 적도 없다는 듯 사립대학에 대한 감사를 강화하는 정도로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 교육부가 발표한 방침의 요지는 연간 종합감사 대상 사립대 숫자를 3개에서 5개를 거쳐 10개까지 늘리고, 아직 종합감사 대상이 되지 않았던 사립대학을 우선 감사하겠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사립대학의 심각한 비리 실태가 드러난 상황에서 감사를 강화한다는 방향 자체는 매우 상식적이다. 문제는 그에 대한 일각의 반응이다.


예컨대 <한국경제>는 “문재인 정부가 본격적인 사학 개혁에 나서기 전 사립대들의 ‘군기’를 잡기 위해 대규모 감사 카드를 꺼내든 것 아니냐”라고 썼다. 그리고 익명을 요구했다는 한 사립대 관계자는 “교육부가 사학 개혁을 추진하기 전 대규모 종합감사 계획을 발표한 것은 사립대를 길들이기 위한 의도가 아니겠느냐”며 “비리 대학 감사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모든 분야를 터는 식의 종합감사는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감사가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발언은 부정이 만연한 사학의 민낯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궤변에 불과하다. 진정 떳떳하다면, 감사가 무슨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사학 운영 수입 대부분은 국고와 학생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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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는 ‘누구의 것’인가?


저들이 운운하는 ‘사학의 자율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립대학이 교비 대부분을 등록금과 국고보조금으로 충당하면서도, 어떤 사회적 통제도 받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결국, 교비의 과반을 등록금으로 채워주고 있는 학생들, 그리고 국고보조금의 원천인 세금을 내는 국민들 위에 사립대와 재단 이사회가 계속 올라서 있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자율성’이야말로 사학 비리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대학을 투명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운영하려면, 대학의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교육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사회의 통제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립대학에 대한 통제권은 언제나 재단과 이사회가 독점하고 있었다. 교육적 책임을 방기하더라도 그저 수입을 유지하기만 한다면(그리고 계속 돈을 빼낼 수만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사립대를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방치하는 것, 바로 대학의 소유‧운영 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다.



사학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시작할 기회


사학 비리의 연이은 폭로는 사학재단과 기존 운영자들에게 자격이 없었음을 드러냈다. 지금이 바로 그들의 권한을 박탈하고 대학 구성원, 지역사회, 국가가 대학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나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정부는 감사를 강화하는 정도에 머무르며 그 기회를 날려버리려 한다. 사립대학의 운영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문제는 언제고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감사를 확대해 일시적으로 비리가 감소하더라도, 정부 정책이 느슨해지면 문제는 다시 심각해진다. 사회적 통제가 없다면, 그들은 감사를 교묘히 빠져나갈 궁리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사립대에 대한 통제권을 일부나마 되찾은 사례들을 알고 있다. 이화여대에서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총장직선제를 실시한 순간, 그리고 상지대에서 비리 재단에 맞선 투쟁이 결실을 본 순간은 각각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자. 비리를 저지른 사학 재단의 운영권을 박탈하고, 사학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 구조를 만드는 싸움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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