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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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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7.30 13:05

더욱더 확장해야 할 권리, 

“재생산 권리”


나래┃사회운동위원회 여성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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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노동은 끝나지 않는다." [사진: See Red Women's Workshop, 1974년]



코로나19, 

여성에게 전가된 재생산의 위기 여실히 보여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특히 가정과 일터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돌봄 영역이 휘청거렸다. 정부는 집단 감염 사태를 막고자 지난 2월 27일부터 학교와 보육시설, 복지관 같은 주요 공공‧사회복지시설 운영을 중단했다. 이후 약 2~3주 간격으로 반복해 휴원 조치를 연장하기도 했다.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겠으나, 자녀를 비롯해 여러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겐 힘겨운 시간이었다.


당장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부모로서의 ‘나’의 역할이 충돌했다. 한편에선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자식으로서의 ‘나’의 역할이 충돌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펴낸 <젠더리뷰> 2020년 여름호에 실린 글 “이슈브리프: 코로나19와 아동 돌봄의 쟁점”을 보면, 올해 3월 말 초등학교 3학년 이하 자녀를 둔 주 양육자(부 또는 모)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관을 다니지 않고 주로 가정 내 양육을 하고 있다’는 응답이 73.3%에 달했다. 그다음으로 ‘조부모나 친인척에게 도움을 받은 경우’가 24%로 나타났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직접돌봄이 우세했고, 조부모‧친인척의 도움과 긴급돌봄 이용이 주요한 지원체계로 작동했다.


반면, 직장에서의 지원 체계는 너무나 협소하다. 돌봄 지원제도의 사용 비율은 상당히 낮았다(육아시간 지원 18.3%, 가족돌봄휴가 15.8% 등). 이와 달리 재택근무는 36.1%, 무급휴가도 22.4%로 나타나 돌봄 공백을 메우는 노력이 여전히 개별 가정에, 특히 주 양육 부담자인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돌봄 노동자 대다수는 여성이다. 이번 코로나19가 부각시킨 위기는 돌봄이 필요한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았다. 다양한 돌봄 기관이 작동을 멈추자, 사회 전체가 위기에 봉착했다. 그제야 비로소 사회가 돌봄의 가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돌봄을 담당하고 있는 돌봄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고용‧임금‧건강 문제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수준이다. 팬데믹 와중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긴급돌봄교실을 운영하는 것 역시 여성 노동자의 몫으로 남았다. 가정에서의 재생산도, 사회에서의 재생산도 여성이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닥친 재생산 영역의 위기는 여성에게 전가된 형태로 나타났다.



재생산의 시장화


사회에서 생산이 문제없이 이뤄지려면 인간의 노동력이 안정적으로 재생산돼야 한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의식주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성장시기마다 필요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고 관리하는 것은 물론, 청결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잠도 자고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생애 주기에 맞춰 필요할 때 적절한 교육도 받아야 하고, 건강이 나빠지거나 나이가 들었을 땐 치료나 병간호도 받아야 한다.


이처럼 주거‧영양‧교육‧의료 등 적재적소에서 모든 요소를 잘 갖춰야 인간의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다. 재생산 노동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수행된다. 이런 재생산 노동이 이뤄지는 곳을 재생산 영역이라 하는데, 이를 주로 전담하고 있는 게 바로 여성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재생산 노동의 책임과 부담은 여성이 짊어지고 있다. 이는 ‘여성의 (신체적) 특성’이라는 미명하에 성 역할로 규정된다. ‘어머니’란 이름으로, ‘아내’의 이름으로, ‘딸’의 이름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재생산 노동은 어떤 형태로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한편 재생산의 위기에서 중대한 문제 중 하나는 인구 감소다. 노동 가능한 인구가 감소하면 총자본의 입장에서도 이윤이 줄어든다. 인구 고령화와 저출생 심화는 자본에 직격탄이다. 지난 2019년 통계청이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2017년 ‘고령사회’에 들어선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며, 약 50년 후인 2067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47%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한다. 저출생 문제와도 연동해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2067년에 45.4%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재생산의 위기는 자본에도 위기이기 때문에, 소극적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저들도 알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2년 대선을 전후로 복지 담론이 활성화됐다. 돌봄을 개인 책임으로만 미뤄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생산 가능 인력은 어떤 식으로든지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게 해야 했다. 이를 위해 무상급식, 보육비 지원, 장애인 활동지원, 노인요양보험 등 아동‧노인‧장애인처럼 돌봄이 필요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국가 지원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렇듯 돌봄을 사회화하는 과정은 철저히 시장주의적으로 이뤄졌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여성 노동자를 시간제로 고용하거나 불안정 일자리로 채용하고, 민간 중개기관을 둬서 ‘수수료’ 명목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떼어가기도 했다.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해 지자체가 운영을 책임지는 방식을 시도한다고 하지만, 과제가 산적하다. 일단 몇 개 지역으로 제한돼 있으며, 이조차 민간기관의 힘이 막강한 상태다. 또한 시장화 방식을 고수하며 돌봄이 필요한 이들과 노동자들에게 비용과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여성의 임신출산에 대한 통제


이와 함께 살펴봐야 할 문제는 여성의 주요 재생산 영역인 임신과 출산을 과연 누가 통제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를 가능케 할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의 임신‧출산을 통제하려 한다. ‘여성’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의 필요에 따라 임신과 출산 영역을 재단하고, 그 과정에서 여성의 노동권과 건강권은 무시된다. 철저히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통제된 것이다.


가령 1960~70년대에는 인구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가족계획사업’을 정부가 이끌었던 반면, 2000년대 들어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화하자 그간 사문화됐던 ‘낙태죄’를 부활시켰다. 낙태 단속을 시행하는 한편, 임신중절시술 의료인에 대한 고소고발 운동까지 벌어졌다. 지금도 여전히 국가 인구 정책에서 여성의 건강과 노동 문제는 배제되고 있다. 그 결과 건강과 생명에 대한 위험의 부담은 온전히 여성이 짊어지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의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1월 정부는 “범부처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 2기(지난 2019년 1기 TF를 구성한 바 있음)를 꾸려 ‘생산연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겠다며 △청년‧여성‧외국인 인력 활용 방안 △고령친화산업 육성 방안 △지역사회 유휴 인프라 활용 방안 등을 중심으로 대책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오히려 저출생 상황의 핵심 원인이 무엇인지를 감춘다.


게다가 청년‧여성‧고령‧이주노동자 상당수가 저임금-불안정 일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여성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은 외면하면서 ‘값싼 인력’으로 치부하며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관점이 바뀌지 않는 한, 저출생 상황은 개선될 수 없다.


게다가 낙태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4월, 형법의 임신중지 처벌 조항이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21대 국회에는 아직 이 결정을 뒷받침할 형법 개정안이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그 사이 여성의 건강권 및 성과 재생산의 권리는 계속 침해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무허가 중국산 낙태약을 구매한 사람이 300여 명에 달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거나 양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임신을 유지하도록 강요받고, 그게 아니라면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불법 수술을 선택함으로써 위험에 노출되는 동시에 범법 행위까지 하게 되는 비자발적 선택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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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페이스북]



가정에서 일터까지,

재생산 권리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몸이지만, 정작 권리와 자율성 모두 박탈당한다. 월경, 피임, 임신, 임신중지, 출산, 육아와 같이 여성의 삶과 몸에 근거해 이뤄지는 모든 과정에서 여성 스스로 자기 몸에 대한 선택권으로부터 소외된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 육아는 여성에게 ‘당연한 의무’로, 성 역할로 강제된다. 이처럼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 본인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은 여성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선택권과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


한편 ‘여성의 역할’로 규정된 임신과 출산, 육아를 이유로 노동시장에서의 차별도 강화되고 있다. ‘경력이 단절됐기 때문에’, ‘그전보다 생산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여성이 원래 하던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등등 온갖 이유로 차별이 당연시된다. 사회적으로 재생산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재생산 위기는 계속해서 ‘사적인 문제’로, 특히 여성의 책임으로 치부될 것이다. 이는 노동 시장에서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의 가치 인정 문제와도 연동되기 때문에 핵심적인 사안이다.


이와 더불어 재생산 노동을 개별 가정이나 여성 개인의 부담으로 짊어지우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재생산 노동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며, 따라서 이를 사회가 어떻게 함께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


재생산 노동은 우리의 일상과 노동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해주는 핵심적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생산 권리는 더 진전해야 하고, 모두를 위한 권리로 재구성해야 한다. 그 영역을 일터까지 확장해야 함은 물론이다. 여전히 월경, 피임, 임신, 임신중지, 출산, 육아 문제를 마치 일터와는 분리된 문제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곧 ‘여성의 특수한 문제’나 ‘개인의 책임’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성별분업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의 생애주기와 관련된 요소들은 여성의 몸과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 재생산권은 여성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위한 권리로서 다시금 논의돼야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여성이 수단이나 대상이 아니라, 재생산 노동에 대해 필요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주체로 설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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